내가 사랑한 홍콩 영화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틀어주는 영화를 따라 보곤 했던 내가, 처음으로 내 의지로 고른 영화, 그리고 끝까지 스스로 선택해 본 홍콩 영화가 바로 성룡의 프로젝트 A (Project A)였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해적이 나오는 영화라니? 그리고 성룡이 주인공이라니? 하지만 스토리보다도 내게 이 영화를 깊이 각인시킨 건, 어쩌면 성룡의 유쾌하고도 무모한 열정이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19세기 말의 홍콩, 해안가에는 해적들이 득실거리고, 해양 경비대는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부패와 무능, 그리고 육상 경찰과의 알력으로 인해 해안 경비대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결국 해체된다. 드래곤(성룡)은 이 과정에서 육상 경찰로 전속되지만, 해적 소탕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친구들과 손을 잡고 결국 해적들의 본거지로 향하게 되고, 그 뒤에는 부패한 관리들과의 맞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줄거리만 보면 꽤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다. 부패한 권력, 무너지는 정의, 그리고 소외된 정의로운 개인. 하지만 이 영화를 전혀 무겁게 느낄 수 없었던 이유는 단연 성룡의 방식 때문이었다. 그의 코믹하면서도 숨 막히는 액션, 그리고 진심 어린 눈빛과 몸짓이 이 영화를 오히려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시계탑에서 떨어지는 장면이다. 좁은 탑 꼭대기에서 밧줄 하나에 의지해 아래로 떨어지며, 성룡은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온몸으로 스릴을 표현해낸다. 이 장면은 단순한 액션을 넘어서 ‘실제로 했다’는 사실에서 전율을 준다. 대역 없이, 그것도 세 번이나 촬영을 감행한 성룡. 그 광기어린 집념은 관객으로 하여금 숨을 멎게 만들었고, 이후 내가 본 어떤 액션 영화도 이 장면을 능가할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내가 이 영화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성룡, 홍금보, 원표의 조합 때문이다. 단지 잘 싸우는 액션 배우들이 아닌, 마치 찐한 우정과 신뢰가 배어있는 형제들 같았기 때문이다. 성룡이 앞으로 내달리면, 홍금보는 묵직하게 받쳐주고, 원표는 예리한 눈빛으로 틈을 파고든다. 이 셋의 케미스트리는 액션 그 이상이었다. 각자의 개성은 분명히 살아 있으면서도, 함께일 때 가장 빛이 났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영화를 한 번 보고 끝낼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다시 돌려봤고, 볼 때마다 다시 웃고 다시 박수치고 다시 놀라게 되었다. 누군가는 성룡 영화를 가볍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가벼움을 가장한 진지함이며, 유쾌함 속에 숨겨진 강한 메시지가 있는 영화라고.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내 영화 인생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타인의 권유가 아닌, 내가 좋아서 고른 이야기들. 내 감정과 내 판단으로 마주한 스토리들. 그 첫걸음이 성룡의 《프로젝트 A》였다는 게, 지금도 참 기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 A 를 보고 난 뒤, 내 마음속에 이상하게도 성룡은 홍금보, 원표와 끝까지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남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확실히 존재하는 ‘느낌적 느낌’. 아마도 그 셋이 함께일 때 만들어지는 어떤 에너지, 호흡, 케미스트리 때문일 것이다. 용형호제, 복성고조. 쾌찬차를 비롯해 그들이 함께한 다른 영화들에서도 그런 감정은 고스란히 이어졌다. 미국에 진출해 찍은 헐리우드 영화들, 예컨대 《러시아워》나 《쿵푸요가》 등에서는 느낄 수 없던 익숙하면서도 정겨운 따뜻함. 나는 지금도 말할 수 있다. 성룡은,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성룡다웠다. 가장 빛났고, 가장 자유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