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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칙칙폭폭 Aug 01. 2021

혁명과 사랑, 뜨겁고 뜨거운 것 혹은.

뮤지컬 <라 레볼뤼시옹> 리뷰

어쩌다 보니 뮤지컬을 많이 보러 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나를 뮤덕이라고 소개하기엔 아직 응애하다. ‘회전문’을 4개월 전에 경험하고, 한 공연을 8번을 관람했다. 내가 진정 뮤덕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일까? 여러 공연을 관람하고 있지만 계속 반신반의하다. 뮤덕이라고 하기에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첫 회전문의 작품은 8번 다 본진 배우의 공연을 보았으며, 같은 역할의 다른 배우도 궁금하였으나 … 예매 때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한정된 총알을 어김없이 본진에게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틈만 나면 뮤지컬 표를 보러 다니는 ‘산책’을 하는 걸 보면 예비 뮤덕 정도는 되는 것일까?




그렇게 산책을 하다 공연 전날 좋은 자리를 줍게 되어 ‘라 레볼뤼시옹’을 보러 다녀왔다.


주관적 좌석정보: 티켓팅에 참고로 왼쪽 블럭(F06) 앉았는데, 바로 정면에 배우들이 많이 머무르는 탁자가 있어서 매우 좋았다.


홍규/레옹- 고훈정
서도/마리안느- 임예진
원표/피에르- 구준모



극은 갑신정변과 프랑스혁명이라는 두 가지 사건을 엮어 장면들이 번갈아가며 전개된다. 각 이야기의 전환은 배우들의 의상과 무대 일부의 변화를 통해 나타난다. 실내의 공간이 표현된 무대에는 신전의 기둥, 비너스와 같은 석고 조각상들과 동양식 고가구가 섞여있는데, 여기에 무대의 창살이 동양의 창호지와 유럽식 창문으로 변화하며 이야기의 전환을 표현한다.


액자식 구성을 보이는 이 극은 조선시대에서 시작한다. 보빙사를 다녀오고, 신문물과 개화사상, 혁명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첫 장면부터 각 캐릭터의 성격과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그리고 신문물을 전해주는데 가장 중요했던 책, 여주인공이 들고 등장하는 책 한 권 <레옹의 죽음>이 바로 출연배우들이 다른 이름을 갖게 되는 프랑스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는 다리가 된다.


이 책에 대한 캐릭터들의 태도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해 암시하는 듯 하다. 서도는 혁명과 사랑이라는 뜨거운 두 가지에 대해 감탄하지만 홍규는 위대한 혁명을 사랑이야기로 바꾼 잡설로 취급한다. 그리고 서도를 좋아하는 원표는 그저 중간에서 난감해한다.


두 이야기 속에서 혁명과 사랑에 대한 캐릭터들의 입장은 유사하다. 그러나 3일 천하로 실패한 혁명인 갑신정변과 성공한 혁명인 프랑스혁명, 위로부터의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개혁, 이 두 이야기에 엇나가는 지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원표/피에르는 여주인공을 짝사랑한다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각각의 인물들이 홍규와 레옹을 대하는 입장이 극명하게 나뉜다. 애초에 원표는 무언가 바꾸려 시도한 입장이고 피에르는 바뀌지 않길 바랬다. 원표는 홍규를 본인의 방식대로 소중히 대했고, 피에르는 레옹을 죽도록 싫어했다. 이러한 피에르의

감정은 화가 가득 찬 넘버들로 표현된다. 개화기 양복을 입고 세상 젠틀해 보이는 짝사랑남 원표가 질투의 화신으로 바뀌어 등장해 불같이 화를 내는 캐릭터의 변화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액자식 구성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면, 장면의 변환 횟수는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는 확실히 내부의 이야기 즉, 프랑스혁명을 다룬 소설이 중심이 된다. 넘버 역시 이를 위주로 짜여진 것 같았다. (혹은 그 넘버들이 내 인상에 더 남았던 것일까…?)


갑신정변과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기반하는 만큼 실제 역사 사건과 날짜가 빔프로젝트로 제시되었는데, 다소 설명적이어서 교육프로그램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학생들 보러 가세요~)


프랑스혁명을 표현하는 장면의 연출들이 화려했는데, 강렬한 드럼 사운드와 함께 지르는 넘버들이 연이어 몰아쳐서 귀가 조금 힘들기도 했다.. 프랑스혁명을 나타내는 장면에서 배우들은 프랑스지만 한번 더 의상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여자 배우는 프랑스혁명의 상징하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을 연상시키는 옷을 입고 나온다.  피에르 역할의 배우도 그 그림 중에 심부름꾼(?) 소년(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도 톡톡한 역할을 맡는) 복장을 했다.


커다란 깃발을 휘두르며 장엄한 혁명에 굳건한 의지를 지닌 민중의 모습을 연출하고, 여러 대형으로 몸으로 표현한 혁명의 장면이 인상 깊었다. 또,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장면을 손수건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다른 곳에서도 본 연출이기도 한데 이 손수건을 뽑아낸 뒤 현대무용 같은 안무는 뮤지컬에서 이런 연출도 하는구나 싶어 신선했다.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돌아가지만 극은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독립군의 장엄한 세 사람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짓는다. 계속되는 혁명을

계보로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그렇지만 청의 정치적 속박에서 벗어나고 혁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일본의 도움을 청했던 갑신정변의 내용이 나온 뒤에 같은 배우들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마지막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이 다소 이질감이 들긴 했다. 게다가 갑신정변과 독립운동은 혁명의 내용면에서도 크게 달라지니 마지막 장면은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든다.


극의 디테일들을 되돌아보며 혁명과 사랑, 뜨겁고 뜨거운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은 계획적이고 실수가 있으면 안되는 거사와 감성적이며 운명의 장난 같은 것에 대해 논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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