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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칙칙폭폭 Dec 15. 2021

엄마와 최애극 관람하기

졸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해외여행의 코스로 ‘뮤지컬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리 잡혀있었던  같다. 엄마와 뉴욕 여행을 가게  나도 그런 생각으로 ‘라이언킹 봤다. 영어를  모르는 엄마를 위해 스토리도  법하고 직관적일 콘텐츠를 나름대로 고른 것이었다.


극에 대한 기호도 있을 테지만 바깥에서 1월의 추위에 덜덜 떨다가 도착한 극장, 컴컴한 내부, 시차 적응,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에 엄마는 꾸벅꾸벅 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후에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가 생기고, 예전에는 구하지도 못했을 좋은 자리를 구해 엄마와 관극을 갔다. 우스개 추억으로 ‘라이온 킹’ 때처럼 졸지 말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곳에서도 졸았다. 내용으로 치면 엄마가 좋아하는 시대극 장르의 사랑이야기였고, 아는 배우가 나오는데도 졸았다. 시차 적응도 없었고,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도 아니었다. 그래도 다른 이들의 후기에서도 간간히 ‘지루했다’, ‘살짝 졸았다’ 등의 이야기도 본 터라 그냥 웃었다.


다만, 내 최애 배우가 앞에서 노래 부르는데 졸았냐는 것만 짚고 넘어갔다. 엄마는 아니라고 했다. 사실 나도 엄마가 살짝 조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조용히 티 나지 않게 엄마의 다리를 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문득  글을 쓰며 ‘라이이전에 국내에서도 ‘시카고’, ‘모차르트등의 뮤지컬을 그리 좋지 않은 자리에서 보았었는데, 그때도 엄마가 졸았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10년도   이야기긴 하다이런 내용으로 쓰려던 글제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감성 에세이가 되는 느낌이다.


그리 짠했던 것만은 아니다. 최애 배우가 무대 제일 중앙 앞에 나와 애드리브를 치는 부분에서 코로나라 조용히 관극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는 아줌마의 연륜(?)으로 웃음소리를 내었다. 우리 자리는 무대와 가까웠기 때문에 엄마의 웃음소리는 최애 배우의 귀에도 들려 스스로도 자신의 애드리브가 말도 안 되는 웃긴 이야기였음을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최애 배우는 관객석을 바라보지 못하고 한쪽 어깨로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을 뜨지 못하고 잠시 웃었고 무대와 객석의 팽팽한 집중과 긴장이 슬쩍 느슨해져 한 템포 쉬어갈 수 있었다. 뭔가 우리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몇 개월이 지나고, 나는 엄마에게 두 번째 최애 배우극을 드밀었다. 재즈풍의 넘버에, 내가 본 그 어느 극보다 밝은 조명 연출을 쓰고, 심지어 관객석까지 그 조명을 비추는 ‘하데스 타운’이다. 연석을 구할 수 없었기에 떨어졌지만 엄마는 중앙 블록의 좋은 자리를 주고, 난 배우를 보러 op석으로 갔다. 엄마의 자리는 나도 이제까지 가본 적 없던 좋은 자리였다.


주로 혼자 보러 다니다가 최애극을 누군가와 동행하면 두근거림과 함께 내 공연도 아니지만 내가 배우가 된 것 같은 긴장과 설렘이 든다. 괜히 배우들의 컨디션과 연기를 체크하게 된다.(내가 체크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웃음) 그리고 인터미션에 감상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인터미션에 만난 엄마에게 제일 첫 물음은 역시 “졸았어?” 웃음 섞인 말투였다. 또, 조금 졸았다고 한다. 웃었다. 어떻게 내 최애 배우가 나오는데 졸 수 있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역시나 온도 변화와 깜깜한 실내환경을 이유로 들었다. 자리가 좋았냐는 물음에 “좋았다”라고 하길래 그 자리가 좋은 이유를 들며 생색을 냈다.


인터미션에 몰아닥친 나의 공격(?)에 엄마가 갑자기 반격했다. “봤지? 키스신?”쓰고 있는 지금도 웃기다. 엄마가 최애 배우가 상대역과 하는 키스신을 무기로 들었다. 극이 끝나고 집에 가는 내내 세부 질문들로 엄마의 감상평을 들었다. 나와 성향이 다른 엄마에게 그리 세세한 감상평을 들을 순 없지만 가끔 새로운 관점도 제시하기에 흥미롭다. 특히 이번 키스신 공격은 따끔하면서도 아주 귀여웠다.


나는 다음에도 엄마에게 세 번째 최애극을 들이밀 것이다. 그때는 엄마의 조는 모습도, 최애 배우의 멋진 모습도 직관할 수 있는 좋은 연석 자리를 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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