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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칙칙폭폭 Dec 03. 2021

표… 구해줄게!

배려란 상대방의 입장에서 하는 것인데 난 아직 멀었다

뮤지컬에 발을 들이며, 아무래도 가장 달라진 점은 산책을 수시로 다닌다는 점이다. 여기서 산책은 밖을 나가는 것이 아니다, 생각날 때마다 예매 창에 들어가 보는 행위를 말한다. (주요 티켓 예매처가 xxpark이기에 생긴 용어인 걸까..)


어찌 된 연유인지… 나는 표을 줍는 것에 소질이 있다… 그만큼 끈질기고 열정적이게, 매우 자주 산책을 하는 게 아닐까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있겠지만 운도 매우 따르는 편인 듯하다.


주변에 뮤지컬을 즐기지만 나만큼 집착에 가까운 광기를 보이는 사람은 없기에… 나는 호의로 그들에게 내가 주웠지만 가지 못하는 표를 제안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표를 구해주었다.


표를 구해주는 일은 매우 까다로웠다. 내가 그들의 일정을 모를뿐더러, 대략 주말표를 선호한단 이야기를 들어도, 내가 구하는 표의 날짜에 혹시라도 다른 약속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캐스팅, 주로 뮤지컬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겐 특정 선호 캐스팅이 있는데 역시나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사람이기에 구하기 힘든 편이다.


사실 내 표를 구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조건에 맞는 표를 발견하면 생각나서 일단 잡아놓고 물어본다. 몇 번 있었고, 성사되는 건 쉽지 않았다. 물어보는 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치 내가 밥상을 차리면서 하나 더 차리는 것 같은.


그렇지만 이 역시 별 것 아닌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 밥상을 차리면서 하나 더 차리는 것에는 엄연히 에너지가 든다. ‘그게 뭐 일이야~?’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밥상을 차리고 내 밥을 하나 더 퍼달라고 말하고 싶다. 굳이 따지면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 보단 감정의 에너지인 것 같다.


사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단순히 안타까움이 다였다. 그런데 오늘 사건을 겪고 갑자기 급소를 찔린 것 같은 생각이 스쳤다.


회전문을 돌고 돈 뮤지컬의 새로운 티켓 오픈이 다가왔고, 매번 좋은 자리를 맡으려 혈안이 되었던 때와 달리 이번은 잠시 쉬자는 생각으로 주변인들에게 좋은 자리를 잡아주자 싶었다. 때마침 나에게 이야기를 꺼낸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약속이 있었지만 밖에서 안 되는 인터넷에 테더링을 연결해가며 자리를 구했다. 성공하곤 기뻐서 전화도 했다. 그런데 역시 성사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날짜의 문제였기에 그 뒤에 산책하며 바로 다른 자리들이 보여 선점한 뒤 연락했지만, 문제는 날짜가 아니었던 듯싶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 역시 미안한 마음을 연신 내비쳤다. 근데 이해 못 할 상황도 아니었고, 내가 간다면 훨씬 더 좋은 자리를 갈 수도 있었고 이때까지 회전문을 돌았기에, 이번 티켓팅으로 op석을 구할 기회가 날아간 건 아쉬웠지만, 감내할 수 있었다. 상대는 미안한 마음에 “네가 너무 흥분한 것 같아서…”라며 자신이 갈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하려 했던 것 같다.


흥분은 했던 것 같다. 티켓팅의 성공은 매번 짜릿하고, 여간해선 구하기 힘든 자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졌던 웃음, 관심이었을지 모를 “너 대체 몇 번이나 봤어?”라는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


“내 자리도 아닌데 내가 왜 흥분해? 아니, 전혀~ 괜찮은데?” 이 이야기에 기분이 나빴던 건 내가 표를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에겐 그저 내가 좋아하는 그 배우의 팬심에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것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난 내 배우를 널리널리 알리기보다 솔직히 나만알고싶어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사실 방점은 ‘그 배우’가 아닌 내가 표를 구해주려는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을 그 사람은 모르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구한 표에 흥분하고 느꼈던 나의 기쁨이 순식간에 빠순이 기질 같은 것으로 치환된 느낌이었다.


내 호의와 사랑이 비웃음거리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그 어떤 것보다도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걸으면서 이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고, 몇 번이나 배려나 호의는 무엇을 바라서도 안되고, 그 사람한테 아쉬워해선 안되는 거라고 되뇌었다. 내가 자주 되새기는 배려란 나의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하는 것이 진정한 배려라는 말이 머리로는 분명 이해가 가는데 흐트러진 감정은 쉬이 추스러지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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