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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칙칙폭폭 Feb 17. 2022

‘오르페우스의 등잔 밑 자리’

하데스 타운 오블 자리에 대한 단상

하데스 타운 막공 표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가 없더라도  배우의 마지막 공연을 팬들이 얼마나 보고 싶어 할지는 짐작할  있을  같다. 이제 가면 (같은 캐스팅으로) 언제 오나? 기다리면 오긴 오나? (물론 하데스 타운은 대구 공연이 이어지긴 한다.)


공연의 마지막이 다가옴과 별개로, 오미크론의 확산세로 인해 좋아하는 배우의 캐스팅이 변경된다던지, 공연이 취소된다던지 하는 이유로 남은 공연의 티켓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거기다 오미크론이 사람을 가려서 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일하는 사무실의 선생님의 확진 소식에 듣자마자 내가 들고 있던 일주일치 표를 놓았다.


계획했던 관극이 몇 차례나 물거품이 되고, 모든 것이 불투명해도 유일하게 확실했던 나의 관극 계획마저 불확실해지니 절박해졌다. 어디든 내 자리만 있다면 가고 싶었다. 그러던 중 당일 공연 취소표가 생기면서 캉르페우스(박강현 오르페우스)를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오른쪽 블록의 OP석. 하데스 타운의 왼쪽과 오른쪽 무대를 굳이 나누자면 헤르메스와 오르페우스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의 팬들이라면 가까운 자리가 최고겠지만, 거기서도 선택지가 있다. 물리적으로 매우 가깝지만 옆, 뒷모습을 보는 자리로 갈 것이냐, 전자보단 떨어져 있지만 얼굴 정면이 자주 보이는 자리로 갈 것이냐로 취향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오른쪽 블록은 그 전자에 해당한다. 그중 OP석은 단연, ‘오르페우스의 등잔 밑 자리’라는 명명이 가장 적합하다. 가깝다는 이유로 오르페우스 팬들이 많이 앉지만 또 너무 가까워서 오르페우스 시야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보러 가기 전에도 그럴 거라는 예상을 하고 갔고 1막 내내 ‘오르페우스 등잔 밑 자리’를 되뇌며 보고 있었다. 작곡에 골똘한 오르페우스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긴 하지만 가장 사이드가 아닌 애매한 오른쪽이었던 나는 무대 양 끝을 보고 싶을 때 고개를 최대한 돌리고도 곁눈으로 봐야 왼쪽 끝과 오른쪽 끝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장 한 회, 한 회의 공연이 소중했기에 내 머릿속에 다각도 영상을 만들어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도록 열심히 눈에 담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헤르메스 역 배우의 팬이 앉으면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2막에는 조금 달랐다. 내가 크게 생각지 못했던, 이전에는 간과했던 장면의 얼굴 표정들을 볼 수 있었다. ‘뒷모습만 보였던, 혹은 옆모습만 보였었는데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구나’ 그래도 공연 내내 여전히 오르페우스가 챙겨야 할 구석구석이 많았고 공연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하데스 타운의 마지막은 배우들의 인사와 함께 오르페우스의 기타 연주에 맞춰 마지막 넘버를 부른다. 지난번 글에 쓴 적 있지만, 캉르페우스는 무사히 기타 연주를 시작 한 다음 찾아와 준 팬들의 구석구석을 다시 한번 살펴준다. ‘뭐 어찌 되었건 가까운 데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오르페우스가 자신의 등잔 밑을 확인한 순간이.


아주 뒤쪽만 아니라면 모든 자리에는 장단이 있고, 취향 차이로 선호도가 바뀔 수 있다. 이제 하데스타운은 기호에 따른 자리의 선택이 사치일 정도로 서울 공연을 몇 차례 남겨놓지않고 있다. 공식 막공 날짜가 잡혀있고, 내 표도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내가 자체 막공을 하게 될지, 공연 취소로 뜻밖의 막공을 맞이할지 모르는 풍전등화 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더 애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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