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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칙칙폭폭 Aug 01. 2021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왜 중요한 건데?

연극 <렁스> 리뷰

요즘 인기 있는 성격유형의 검사 mbti에 관해 sns상에서 떠돌아다니는 컨텐츠들을 보다가  infj에 대해 '착한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함, 실제로도 착한 사람'이라는 뉘앙스의 글귀를 봤다. 연극 렁스는 infj가 만든 걸까?


뿌리가 뒤집힌 나무의 모습, 양갈래로 뻗쳐 아래로 향하는 가지는 폐의 모습을 닮았다. 연극 렁스의 포스터이다. '70억 인구로 포화상태인 지구에서 아이를 낳는 게 옳을까?', '재활용을 하고, 장바구니를 쓰고, 대형 프랜차이즈 대신 작은 카페에 가고 양치할 때 물을 틀어 놓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한다. 뉴스와 다큐를 보고, 좋은 책을 읽고, 투표를 하고 시위에 참여한다' 나는 이 문구들을 보고 환경문제에 민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했다. 소개에 분명 '사랑, 환경, 인생에 대한 거대하고 엄청난 대화가 다시 시작된다!'라고 적혀있었건만, 왜인지 사랑과 인생은 쏙 빼놓고 환경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다.


임신에 관한 젊은 커플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극은 단연 페미니즘, 환경운동, 사랑, 인생 모든 게 녹아있다.  1시간 30분 동안 같은 내용을 영화로 풀어내라고 한다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이게 바로 연극의 힘인가? 심플하기 그지없는 무대와 조명은 오히려 좋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두 배우의 대화의 정보에 집중하게 되고 극장 안은 배우들의 연기로만 가득 차게 된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탄소발자국처럼 여자와 남자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에 놓여지는 발자국 역시 극에 큰 인상을 남긴다.


'지구를 위해서라면 자살하는게 최선일지도 몰라' 흥분해서 쏟아내는 여자의 대사 속에 이런 뉘앙스의 것이 있었다. 조금 극단적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내가 혼자 살면서 재활용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한 번, 10리터의 쓰레기를 버리러 가며 현관에서 한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나와 비슷한 가치관의 친구 입에서도 들었던 이야기기도 하다. 실제로 남자와의 티키타카하는 대화 속에서 여자가 뱉어내고 번복하는 혼란들은 정확히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이 대사들이 복잡한 상태를 정리하기 위해, 상대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침묵시킨 뒤, 소리 내서 생각하겠다고 한 뒤 이루어진다.


극에서 다루는 고민들은 유별나 '보일 수' 있는 문제들이다. 당연시 사용되는 플라스틱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출산의 문제에 대해 여자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배려하고 생각하고 고민해보려고 한다면 기본값에서 어긋나버리기 때문이다. 기본값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정도의 차이는 중요치 않다. 다시 말해, '얼마만큼 줄였는가.', '얼마만큼 실천하는 사람인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계속 생각하고 염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생각은 마치 해안의 물결 같기 때문에, 노 젓지 않아도 단지 타고 있는 것만으로 그가 타고 있는 뗏목을 망망대해 속으로 끌고 가 버릴지 모르는 것이다. 여자의 번복과 혼란, 뱉어내는 거친 언행들은 자기가 있었던 해안과 전혀 다른 모습의 언제 떠나온지도 모르게 떠나와버린 망망대해 속에서 외치는 막막함과 당황스러움이 담겨있는 게 아닐까.


나는 왜인지 희한한 부분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도 잘 안 읽고, 뉴스도 잘 안 봐. 생각 없이 산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일에 신경 쓰지 않으니 좋아' 이전의 신경증과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 평화로워 보이는 얼굴로 내뱉는 대사가 나를 흔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는 컨텐츠를 본 적 있다. 이는 내가 노력해도 자꾸만 늘어나는 확진자 소식과 좋아지지 않는 상황들로 인해 비롯된다는 내용이었다. 코로나 역시 환경문제에 소홀하여 나타난 '터질게 터진' 인재(人災)라는 시각도 있으니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과 무관심 그 어느 쪽이든 신경증과 무기력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초래하게 된 국면에 이르렀나 싶다.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바꾸어보려는 시도는 하기 전에 생각해야 하고, 미리 계획해야 한다. 몸이 편한 대로, 길이 나있는 대로 움직여버리면 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주인공들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은 탓일까, 예상치 못한 일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한다. 그것마저도 나에게 '이게 인생인 것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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