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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칙칙폭폭 Aug 12. 2021

자극적 '사실'보다 '허구'의 귀중함

뮤지컬 <메리 셸리> 리뷰

지금 공연 중인 뮤지컬 중 '메리 셸리'와 '레드북'은 모두 과거 글을 쓰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때 그들이 지나온 고난과 역경에 대한 '여자의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 극들이다. 소재 외에도 뮤지컬 <광화문 연가>에서 차지연 배우의 젠더 프리 캐스팅도 현재 뮤지컬계에 이는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관객의 성비에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보니 출연배우 중 남자 배우의 비율이 높은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티켓 판매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중문화로서의 뮤지컬은 '여성을 위한' 극이 만들어지기 쉽지만 '여성의', '여성에 의한' 극을 만들어지긴 쉽지 않아 보인다.  


메리셸리- 최연우
폴리도리- 송원근
퍼시셸리- 기세중
바이런- 김도빈
클레어- 정가희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이다. 사실 이것도 뮤지컬 정보 소개에서 보고 알았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이긴 하지만, 이미 유명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있기 때문에 저자의 삶에 대해 더 초점을 맞춘 극을 기대했다.


주관적 좌석 정보: 공연장인 상상마당 대치홀은 대극장이 아닌 데다가 극 중에 2층 무대를 많이 활용하기에 굳이 앞좌석을 고집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G열 18번 좌석에서 관극 했는데 2층 무대도 적당히 잘 보였으며 이보다 앞으로 갈 경우 목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메리 셸리'를 흥미롭게 보면서도 내내 아쉬운 생각이 든 것은 그녀의 목소리를 생각보다 많이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삶은 퍼시 셸리, 폴리, 바이런에 의해 설명되고 이끌려가고, 극의 후반부(극에 인터미션은 없지만 대략적으로 전후반부를 나누어 설명하려고 한다)에 가서야 비중이 조금 더 생기지만 그 마저도 반은 폴리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어쩌면 이러한 분배는 여성의 역사를 충분히 고증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건 극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녀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긴 시간 동안 소외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뮤지컬 <메리셸리>의 포토존


전반부의 막장 같은 자극적은 이야기는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를 모르고 관극 했던 나로선 '진짜 그런 일이 있었던 거야?', '아니 도대체 그래서 걔가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와 같은 애매모호한 지점들을 남겼는데 후에 구글링으로 찾아보니 모두 다 사실이었으며 오늘 관람한 뮤지컬의 내용과 똑같이 적혀있었다.

나무위키는 모든 걸 알고 있다…!(출처-나무위키)
메리의 여동생을 제외하고 모두 글을 쓰는 네 사람의 관계도는 둘둘 짝을 지어 닮아있다. 바이런의 재능에 눈이 멀어 주치의로서 괴로운 삶을 사는 폴리와 자신의 재능에 기대는 퍼시와 힘겨운 사랑을 하는 메리. 이 둘은 자신이 마주하기 두려운 자신의 모습을 괴물로 여기고 이를 두려워하고 죄책감을 느끼다가 글로 써 내려간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문학적 재능을 갈망하는 주체가 되느냐 대상이 되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막장 같은 '사실'들은 그 자체로도 자극적인 데다가, '바이런 산장에서 있었던 일들' 혹은 '폭풍우 치던 밤, 산장에서'와 같은 제목의 뮤지컬에서 다루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메리가 자신 안에 괴물을 만들 수밖에 없던 과정들을 메리의 목소리로 들을 순 없었을까. 여러 일을 겪는 동안 메리는 어떤 생각을 하며 자신 안에 괴물을 만들었을까. 그것이 증명할 길 없는 '허구'여도 다큐멘터리가 아닌 뮤지컬에선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자극적 '사실'들보다 증명할 수 없는 '허구'가 간절했다.


메리가 괴물을 만드는 동안 내가 메리의 목소리로 전해 들을 수밖에 없었던 건 '괴로워!', '힘들어!'와 같은 일차원적 감정표현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배우의 연기력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저 배우의 저 연기력, 목소리 톤, 가창력으로 단순히 저런 일차원적 감정 전달만을 시켰던 것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관극이었으며 100분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그런데 아쉬움을 토로하다 보니 부정적 후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메리 셸리 이야기를 알게 되니, 그녀가 더 궁금해진다. 구글링 해보니 영화도 최근에 제작된 듯 보이는데 시간 날 때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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