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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 Days Jun 27. 2023

제왕절개 후불제 패키지에 포함된 것들은요

제왕절개 후 여러 미션 달성 후 맞이한 그것 

5월의 어느 화창한 날,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내 뱃속에서 아홉 달 동안 품고 있던 아기가 나왔고, 나는 배 위의 영광의 상처와 주렁주렁 단 링거들과 함께 병실로 복귀하였다. 


우선 오후 4시경 수술 이후 마취가 점점 풀리며 나에게는 제왕절개의 통증이 조금씩 왔고, 그날밤 10시쯔음부터 점점 강해지는 통증에 정신 못 차리게 아팠다. 이미 수술일 자정부터 물 한 모금 먹지 못해 24시간가량 금수 상태였고, 머리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먹은 게 없고 피부, 근육, 장기를 째며 수술까지 했으니 기력이 딸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남편은 긴장이 풀린 탓에 너무나도 달게 잠을 자서 내가 부르는 소리를 하나도 듣지 못했다. 그땐 그게 야속하기 이전에 그냥 웃겼고, 남편이 자는 모습이 짠해 보였다. 


수술하고 약 12시간 즈음 지났을 때, 나의 요도에 꽂아놓은 소변줄에서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간호사분들이 몇 번 들어와 나를 옆으로 굴리며 흔들어댔고 나는 그 통증이 너무 아파 눈물이 찔끔 나오다 못해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물론 70kg 넘는 나를 옆으로 굴리며 소변을 빼내는 게 힘들었겠지만, 간호사분의 신경질적인 대처와 동료 간호사가 왔을 때 "아까 내가 이 짓을 혼자 했다니까?" 라며 짜증을 부리는 것을 보며 나는 졸지에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이짓'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귀를 뀐 다음에 물을 마실 수 있던 예전과 다르게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도 시간이 지나면 물-미음-죽 순서대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방귀가 나와야지 가스통도 (배속에 가스가 가득 차서 찌르는 듯한 통증) 줄고 회복이 빠르다고 하여 다음날 아침까지 나는 방귀를 분출하는데 사력을 다해 집중을 했고, 수술한 다음날 점심즈음 영광의 '뽕'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36년 전 제왕절개를 했던 나의 엄마는 닷새동안 방귀를 뀌지 못해 물을 마시지 못하고 결국 링거통이 "물이 담긴 샴페인잔"으로 보이는 환각까지 경험했다고 한다. 


방귀를 뀐 이후에는 소변줄을 빼고, 배 위에 얹어놓았던 묵직한 모래주머니를 제거한 후 직접 두 시간 안에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라는 미션이 주어졌는데, 소변줄을 빼는 것보다 모래주머니를 없애는 게 더 무서웠다. 뭔가 내가 잡고 있던 동아줄이 얇아진 느낌이랄까. 나는 애꿎은 무통주사 버튼만 계속 눌러댔고, 배에 튜브로 연결된 페인버스터가 얼마나 남았는지 몇 번씩이나 확인했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침대를 조금씩 올리고 (밤새 발가락이랑 발을 움직이는 연습은 했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순간 정말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 뭐랄까, 누군가가 회를 써는 칼로 오장육부 속에서 막 후비는 느낌이랄까? 아니, 이 상태에서 어떻게 화장실을 가라는 거지? 싶었지만 어찌어찌 화장실을 다녀왔다. 나의 입원과 출산 후 과정 속에서 남편은 내 몸속에서 나온 모든 것들 (소변, 대변, 오로 등등)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씻지도 못한 나에게 계속 뽀뽀를 해주고,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아, 부부는 의리공동체가 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정말 나는 이 남자를 평생 사랑할 수밖에 없겠구나 (출구는 없다), 근데 그 사랑의 형태가 달라지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샴페인 버블같던 연애시절을 지나, 정겹고 시원한 소맥 같은 신혼 시절을 거치고 걸쭉한 막걸리 같은 사랑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하나씩 주어지는 미션을 끝내고 나는 매일매일 걷기 연습을 했다. 걷는 것보다 침대에서 오르내리는 게 더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몸을 틀면 오는 통증 때문에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적어도 2-3분은 걸렸던 것 같다. 너무 아플 때는 남편의 목덜미를 붙잡고 그대로 일시정지 상태로 머물러있기도 했다. 많이 움직일수록 회복이 빠르다 하여 정말 허리와 배를 부여잡고 나를 트레이닝시키는 남편에게 말 그대로 난생처음 뱉는 육두문자를 하며 (아픈데 열심히 하라니까 짜증이 났다) 열심히 걸었다. 남편이 야속했지만 동시에 고마웠다. 사실 그렇게 빠른 재활에 목을 맸던 이유는 아기가 NICU에 있다는 이유가 제일 컸다. 


매일 오후 한 시마다 NICU에 있는 아기와 영상면회 및 소아과 교수님과 면담을 했고, 영상 속 본인의 몸보다 큰 호흡기를 달고 여러 바늘과 관을 달고 있는 아기의 모습에 엉엉 울었다. 미숙아의 경우 NICU에 있는 것은 당연하고, 호흡이 온전치 못한 아이들이 금방 회복하여 나오는 것도 일상다반사이며 나의 아이의 경우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렇게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NICU에는 1kg대의 아기들도 많다) 나는 몇 주간 참아왔던 입원의 설움, 제왕절개의 후불통증, 남편도 곧 무릎수술을 해야 한다는 먹먹함, 아기가 저렇게 아프다는 속상함이 다 함께 밀려와서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상심도 잠시, 나는 얼른 회복을 하겠다고 마음을 굳세게 먹고 정말 이를 악물고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열심히 회복을 하던 중, 수술을 하고 셋째 날 아침 나는 악몽을 꾸며 호흡 발작을 일으키고 엉엉 울면서 깼다. 꿈에서는 NICU에 있는 아기를 만나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탔는데, 같은 칸 안에 코로나 확진자가 있어서 내가 화를 엄청 내는 꿈이었다. 아기를 보러 갈 수 없단 생각에 꿈에서 너무 서러웠고, 코로나 확진이 된 것 마냥 숨을 쉴 수 없고 가슴이 답답해지다 못해 아프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울어서 남편이 놀래며 나를 깨웠고, 나는 꿈에서 깨자마자 호흡도 울음도 진정이 안되어 엉엉 울었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으며 가슴 통증이 너무 심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젖몸살이라는 것을 맞이하게 되었다. 


붓고 튼 나의 발 
아기 사진을 계속 들여다보는 남편 
필사적 걷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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