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에서 처음 살아보는 갓생, 그리고 금쪽이 산모가 된 이야기
임신을 하고 임신 기간에 보았던 드라마 중에 가장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박하선, 엄지원 주연에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였다. 배우들의 연기도, 스토리 구성도 재미있어서 즐겁게 보았는데 나중에 여러 후기에서 산후조리원의 여러 부분이 현실 고증이라는 후기를 보며 어디까지가 실제일까 했다. 동시에 모든 산모들이 같은 옷을 입고, ㅇㅇ 엄마라고 불리며 같은 국을 마시고 같은 마사지를 받고 같은 코스를 (?) 밟는 문화가 참으로 기이하다 못해 웃기다고 생각을 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지만 산후조리원 내에서는 정보력도 제일 없고 나이도 많은지라 '꼬리칸 엄마'로 불리는 엄지원의 캐릭터가 그저 웃기기만 했다.
나 역시도 임신을 하고 남편에게 제일 먼저 받은 임신 선물은 산후조리원이었다. 한국에만 있는 문화라고 하는 산후조리원은 언제부터인가 출산을 하면 응당 가야 하는 곳처럼 되어버린 것 같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리원을 ”조리원 천국“이라고 불렀다. 그러한 천국(?)을 남편이 먼저 발빠르게 예약을 해주어 고마웠다. 서프라이즈로 예약을 한 것 같은데, 산후조리원 측에서 예약문자를 내 핸드폰 번호로 잘못 보내서 서프라이즈는 귀여운 실패(?)로 돌아갔다.
임신 5주 차에 예약을 한 산후조리원에서는, 자사몰을 홍보하는 문자와 더불어 출산 3개월 전쯔음엔 "이 달에 결제를 하면 얼마 할인이 들어간다"라는 안내가 담긴 스파 안내 문자도 매일매일 열심히 보냈다. 이미 산후조리원 비용 자체도 적지 않았지만, 산후조리원에서 마사지를 열심히 받아 임신 기간 동안 찐 몸무게가 다 빠졌다는 여러 글들을 봐왔던지라 마사지를 열심히 받아야지!라고 다짐을 했고 만원이라도 할인을 받아 결제하고 싶은 마음에 남편에게 결제 요청을 했다. 남편은 결제를 하며 조리원에 "조리원에 들어가서 더 싼 프로모션이 있거나 지금과 같은 금액으로 결제가 가능한 건 아니겠죠?"라고 문의를 했더니 그쪽에서 말을 얼버무렸다고 했다. 꼭 그 달에만 제공되는 스페셜 프로모션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여하간 나는 1회 마사지가 얼마인지는 당시 몰라지만 제공되는 패키지 중 제일 저렴한 200만 원짜리 패키지를 결제를 했다.
해당 조리원은 강북권에서는 좋은 곳 중 한 곳으로 꼽힌다고 하는데, 남편 출퇴근이 가능하며 (코로나를 핑계로 불가한 곳이 꽤 있다), 전 객실 모션베드에 스위트룸부터는 산모와 남편 공간이 널찍하게 분리되어 있는 점, 그리고 스파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 했다. 여러 연예인 협찬도 하는 것 같았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조리원 앞에 위치한 병원과 오너가 같다나? 뭐라나.. 그래서 여러 혜택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러 글에서 이야기해 왔던 것처럼 나의 임신 과정은 순탄치 않았기에 보통의 임산부처럼 조리원 천국을 엄청 기대하는 상황은 되지 못했다. 나는 원래의 예정일에 비해 한두 달 일찍 출산하게 될 것 같아 조리원을 취소해야 할지, 아기가 NICU에 있게 되어도 나 혼자 먼저 가야 하는지, 아니면 아기가 퇴원을 할 때까지를 기다렸다가 같이 갈지를 매일 고민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무릎 부상으로 인해, 남편의 조리원 입소마저 불투명해져 아이와 남편 없이 조리원에 입소를 한다는 생각 자체로 나는 쉽게 우울해졌다.
고위험산모 집중치료실에 입원을 하며 이 부분에 대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나는 조리원으로 전화를 했다. "6월 13일에 출산 예정인 태나라산모인데요"라는 나의 말에 하이톤의 응대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는데, "제가 고위험산모 집중치료실에 있어서 그런데요"라는 말에 상대방은 "네? 어디요?"를 몇 번이나 연거푸 물었다. 병실이라 내가 크게 통화를 못해서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가 싶어 "중환자실에 있다고요. 아기가 일찍 나올 것 같은데, 기다렸다 아기랑 같이 들어가는 게 나을지 해서..." 했더니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아 네 산모님, 그래도 산모님은 오셔서 마사지도 받고 하셔야죠~"라고 응대를 했다. 이 놈의 마사지... 마사지... 지겨운 마사지... 취소할 생각은 일도 없었으나 그 순간 정말 오만정이 다 떨어져 당장이라도 취소를 하고 싶었다. 내가 묵을 예정인 방은 올해 정가 기준 2주에 800만 원짜리 방이었는데, 아기가 동반 입실 하지 않으면 하루에 25,000원만 차감된다는 것도 황당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내 남편 역시 본인이 부상 및 수술로 함께 입실을 하지 못하기도 하고 내가 계속 아픈 상태기에 본인 대신 동반 입실하는 사람을 친정 엄마로 지정할 수 있는지 몇 차례 문의한데 있어 조리원에서 상황에 대한 공감이나 이유에 대해 설명이 없이 기계적으로 "보호자는 남편만 돼서 안된다"라고 되풀이하는 것에 화가 나서 컴플레인을 했다고 한다. 쉽사리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의 사람이 윗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화를 내어 우리는 아마 입실 전부터 꽤 금쪽이 부부로 찍혔을 것 같다. 남편이나 나나 아마 일차적인 응대 (공감만 들어갔어도)가 좋았다면 그냥 아쉬워도 입실하여 잘 지냈을 사람들일 텐데 전화할 때마다 우리를 너무 <돈>으로만 보고 있는 것 같은 응대 방식이 많이 기계적이라고 느껴졌다. 결국 조리원의 원장님이 나를 밀착케어 하겠다는(?) 사과전화를 받았고, 나는 밀착케어는 괜찮으니 남편이 입실하지 않는 부분 (남편의 식사 비용 등)을 샴푸 서비스 2-3회 정도로만 바꿔줘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입실을 한날, 조리원 원장님은 나를 보고 "산모님이 예쁘게 생겼네. 그래서 남편분이 엄청 사랑하나 보다. 엄청 걱정하시더라고요."라고 하셨고, 나는 그녀의 '칭찬'이 많이 불편했다. 우리가 왜 그 과정에서 기분이 나빴는지를 전혀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유난 떠는 애처가 남편의 컴플레인"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응대 방식에 있어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할지, 어떻게 고객을 대할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배웠던 것 같다. 여하간 조리원 원장님은 남편이 식사하지 않는 부분에 있어 기저귀 두 박스를 대신 주겠다고, 본인이 다 어레인지 해놓겠다고 했으나, 퇴실날 신생아실에 문의하니 그런 부분은 전달받은 적이 없다며 나에게 그런 게 있음 그 전날 미리 이야기하지 그랬냐고 현장에 있는 직원분이 몰려있는 퇴실의 압박 때문인지 약간의 짜증(?)을 내시는 모습에 당황했다.
(기저귀 두박스를 받고 집에 와서 잘 썼다만) 내가 먼저 요청한 적 없는 밀착케어는 나를 벙 찌게 만들었다.
작년에 결혼, 올해 출산을 겪으며 웨딩업계나 출산업계 모두 다 신부와 산모는 정말 "돈"으로 치환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돈 쓴 만큼 편한 것은 정말 사실이다. 또한 결혼이나 출산을 매번 하는 게 아니고, 돈을 바짝 쓰는 특정 시기의 특정 인물들이기에 우리가 더더욱 그런 대상으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응당 이해를 하면서도, 공감 없이 기계적인 응대는 열린 지갑도 닫히게 만들 수밖에 없다.
나의 아기는 출산 후 약 2주간 NICU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조리원을 퇴소하기 사흘 전이 되어서야 조리원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전까지 나는 유축모를 배달하기 위해 유축을 하러 깔때기와 젖병을 가지러 신생아실에 올라갈 때마다 직수 (직접 아기에게 모유를 주는 행위)를 하고 있는 엄마들을 보면 나 자신이 작아지고 심지어 샘까지 났다. 아기를 빨리 낳아 같이 오지 못한 내가 꼭 부족한 엄마가 된 것 같았고, 아기에게 젖을 주며 콧노래를 잔잔하게 흥얼거리는 엄마들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눈부시기까지 했다. 남편과 함께 다니는 엄마들이 너무 부러웠고, 내가 제왕절개 수술을 한 병원에서 바로 무릎 수술 후 고생을 하는 남편이 너무 보고 싶었다. 매일 오후 한 시 반, NICU와 하는 영상 면회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고 그 시간만 오매불망 기다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리원 생활동안 나는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던 것 같고, 나야말로 진정한 '꼬리칸 엄마' 같았다. 그 어떤 것보다도 나의 자존감이 꼬리칸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내가 자부심(?)을 느끼고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유축이었는데, 나는 고탄력 치밀 유방 (이라고 불러주셨다)을 지닌 모유가 많은 산모였다. 밤에 자고 일어나면 패드를 덧댔음에도 불구하고 속옷 위로 넘쳐흐른 모유 덕에 시트가 잔뜩 젖었고, 샤워를 하러 들어가면 물을 채 틀기도 전에 벗은 내 가슴에서 모유가 청승맞게 뿜어져 나왔다. 유축기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메델라 기기가 각 객실마다 비치되어 있어서 나는 알람을 맞추고 규칙적으로 유축을 했다. 정말 나의 존재의 이유가 '젖을 짜내기 위해' 있는 것 같았다. 여담이지만 육아용품의 세계에 많은 것들이 'ㅇㅇㅇ계의 에르메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내게 에르메스 물건이 하나도 없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무 촌스러운 것 같다.
또한 나는 남편과 아기가 함께 입소하지 않은 것 외에도, NICU에 있는 아기를 위해 얼린 유축모를 아이스박스로 나르고, 폐의 염증과 폐수종을 치료하러 외래에 다니느라 많이 힘들었다. 제왕절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채, 무거운 아이스박스를 들고 외래 방문이 너무 힘든 와중 (A동-B동을 오가며 피도 뽑고 엑스레이도 해야 하고 등) 이뇨제 및 항생제 처방으로 초유를 당분간 버리게 되어 속상한 마음에 강북삼성병원 앞에서 엉엉 울다 NICU 간호사분이 퇴근하다 나를 발견해 나를 위로한 적도 있었다. 그때 그녀가 영상 면회에서만 보았던 내 얼굴을 알아보고 와서 위로해 줄 때 얼마나 창피하면서도, 서럽던지.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 앞에서 서럽게 훌쩍댔다. 돌아보니 순간순간마다 그러한 천사 (나는 보살이라 부른다) 같은 분들이 힘든 시점에 짜잔 하고 나타나 나를 위로해 주고 힘을 낼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산모들과 같은 핑크색 옷을 입고 조리원이수 2주 동안 지내며 좋았던 점 역시 많았다. 우선 굉장히 규모가 크고, 시설이 좋은 곳이라서 조직적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진 것이 좋았다. 이 부분에 있어 왜 이 조리원이 가격대가 높은지 알 수 있었다. 정말 말 그대로 '갓생'을 조리원 가서 처음 살아보았다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하루 세 번 똑같은 시간에 주는 식사와 세 번의 간식, 그리고 매일매일 잡혀있는 스파 프로그램, 세 시간마다 해야 하는 유축 등 촘촘하게 짜준 일정 속에서 나는 통잠은커녕 군대처럼 생활을 했고 자연스레 “엄마”로 입문할 준비를 했다. 또한, 락테이션 (모유수유를 도와주는 곳)이나, 신생아실의 선생님들이 많이 전문가처럼 보였고 일부 선생님들은 닫혀버린 내 마음을 녹게 만드는 따뜻한 분들이었고 전문적인 지식 역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스파 역시 소문대로 좋았고, 특히 첫날 만나게 된 관리사분이 정말 좋았다. 알고 보니 나와 동갑내기였던 그녀는 나의 말들에 경청하고 조곤조곤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며 사람의 마음을 여는 스킬이 아주 훌륭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관리 스킬 역시 많이 뛰어나서 조리원 기간 내내 가급적 지정으로 그녀의 관리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스파 층에는 상시 할 수 있는 골반 교정기와 파라핀이 있었는데, 과거에 했던 파라핀보다 훨씬 더 뜨거운 온도라 처음에 손을 넣자마자 굉장히 놀랐었는데 나도 조리원 퇴소 즈음엔 내가 첫날 보고 놀랬던 똥머리를 하고 손을 훠궈 익히듯 능숙하게 뒤집는 엄마들처럼 손을 지지고 있었다.
해당 조리원의 밥은 듣던 대로 맛이 있었고, 하우스키핑을 해주시는 분들 역시 매우 꼼꼼하게 해 주셔서 신뢰할 수 있었다. 내가 이미 입실 전에 '금쪽이'로 찍혀서 그런지, 프런트 스태프 분 역시 내게 안부라도 한번 더 물어주시려고 했다. 그래서 초반에 그런 불편 안 응대 부분만 없었다면, 그리고 나 역시도 아기와 남편과 함께 입실을 했더라면 더 만족했을 수 있었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마사지'를 받고 얼마나 빠졌냐고? 내 몸무게는 조리원에 있는 이주일 동안 약 4kg 남짓 빠졌다. 출산 후 병원에서 빠진 4kg와 합하면 총 8kg, 내가 찐 23kg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나의 스파관리를 도와주던 직원분은 내가 너무 빨리 몸이 냉기가 돌아 부기 빠지는데 정체가 있다며 걱정을 했고, 내게 목디스크와 척추 측만증까지 걱정되니 각별히 관리를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근래 들은 것 중에 제일 무서운 이야기였다.
그래도 육아를 하며 당분간 누리질 못할 최고의 호사를 집약적으로 누리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이제 와서야 생각한다. 다시 한번 조리원 예약을 해준 나의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