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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 Days Sep 05. 2024

프랑스와 한국 사이에서 자라 세계를 탐험 중입니다

한국, 파리, 캐나다, 필리핀에서 자란 후 보르도에서 거주 중인 최유나님

유나는 나의 중학교 동창이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고 알 수 없는 것이, 나는 분당에 있는 모 중학교에서 약 3개월 정도의 중학교 2학년 생활을 끝으로 다시 해외에 가게 되었는데 그 3개월 동안 너무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 계속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 그중 두 친구는 나의 결혼식에도 와주었고, 연락을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그 외 친구들도 링크드인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서로의 소식을 알고, 안부를 주고받으며, 응원을 하고 있다. 


그중 한 친구는 유나이다. 유나는 당시 나에게 "프랑스어를 잘하는 친구" 였는데, 당시 어떤 이유로 프랑스에 가게 되었고 몇 년을 살다 왔는지 몰랐지만,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잘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신기한 동시 매력적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유독 화창함과 발랄함을 잔뜩 담은듯한 경쾌한 입꼬리, 그리고 쾌활한 성격이 인상적이었던 친구였고, 나의 중학교 때 앨범을 보면 교복을 입고 교실에서 함께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있다. 


Third Culture Kid에 대한 인터뷰를 시작하며 여러 사람들이 내 기억 속에서 떠올랐고 그중 하나가 유나였다. 나는 유나가 그 당시 어떻게 그렇게 프랑스어를 잘했는지, 지금 보는 유나의 현재도 굉장히 글로벌한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연락을 취했는데 유나는 나의 글들을 잘 보고 있다며 너무나도 고맙게도 선뜻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인터뷰를 연재하며 약 한 달 정도 방학을 가지려고 했던 것이 석 달로 늘어났지만, 그만큼 인터뷰를 탈고하면서도 너무나도 재미있었던 만큼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그녀의 쾌활하고 긍정적인 명랑동화 같은 삶과 매력이 와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1. 안녕하세요, 본인을 간단하게 소개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최유나이고 나이는 올해 한국 나이로 만 36살입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필리핀, 캐나다 등에서 성장하였어요.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서울에서 태어나 만 5세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약 7년간 거주 후 한국으로 귀국, 약 10년 정도 거주 후 성인이 되어 다시 프랑스에서 5년, 필리핀에서 2년, 캐나다에서 2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현재 다시 프랑스에서 거주 중입니다. 


하는 업무는, 첫 커리어로는 리테일 마케팅용 그래픽 디자이너로 시작하여 8년 동안 패션회사에서 근무 후 전자제품을 주력으로 다루는 광고 에이전시에서 2년간 리테일 마케팅 디렉터로 2017년까지 활동을 했어요. 


그 후의 시간 동안에는 재능기부, 봉사, 프랑스에서의 아트 테라피 공부, IT 회사에서 필요한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공부를 하며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보다 많은 자유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 여행을 하며 스케치와 페인팅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전시회에서 


2. 유나 님은 성장을 하며 프랑스, 캐나다, 필리핀 등 다양한 나라에 거주하셨어요.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다채로운 환경에서 자라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저희 어머니는 어렸을 때 제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프랑스로 이주를 결심하셨다고 했어요. 여러 나라 중 콕 집어 프랑스였던 이유는, 제가 추측하기에 아마 당시 작은 이모가 프랑스에 거주 중이셨어서 그랬을 거예요. 


커가면서 점점 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마 엄마의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저 자체도 보는 세상이 넓은 아이 었고 또 그만큼 넓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시선을 저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여기서 넓다는 것은, 다양한 것을 수용하고 품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뜻해요. 


제가 태어난 지 7개월쯤 되었을 무렵,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 당시 한국사회에서 “아빠 없는 아이” “남편 잃은 과부”에 대한 시선은 지금과 많이 다르고 곱지 않았어요. 


프랑스에서 유년기 시절을 보내고 가족의 사정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가 사는데, 프랑스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학업을 마친 후 다시 돌아가서 살게 되었어요. 다만, 해외살이를 하면 한 번쯤은 겪는 뫼비우스의 띠 현상 같은 워킹비자의 문제로 프랑스를 또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헤드헌터의 제안으로 필리핀에 있는 회사와 면접을 본 후 필리핀으로 떠났어요. 


그때 헤드헌터분은 여자가 혼자 살기에 필리핀이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에 필리핀을 추천하는 것을 주저했지만, 내가 어디든 좋다고 말씀드리고 막힘없이 필리핀도 좋다고 답을 했을 때 아주 놀라셨다고 해요. 


여담이지만 이 필리핀 회사로 가는 최종 면접을 온라인으로 본 날 (프랑스 생활을 청산하고 떠나기 한 달 전), 현재 제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바짝 데이트를 하고, 필리핀에 있는 2년 동안 3개월에 한 번씩 여러 나라에서 만나서 3주간 데이트 겸 여행을 다니며 롱디를 이어나갔죠. 그러다 남편이 같이 살자고 필리핀까지 와서 조르길래 결국 캐나다로 같이 가게 되었어요. 남편이 일본이나 한국 등의 국가에서도 일을 하기 위해 면접도 다 보았는데, 모국어 구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다 탈락이 되어 캐나다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마침 저 역시도 캐나다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함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게 되었어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2년 동안 살면서 남편이랑 결혼도 하고, 여행도 정말 같이 많이 했어요. 그런데 또다시 프랑스가 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남편과 심도 있는 상의 끝에 2019년에 프랑스로 복귀했고, 지금은 처음에 저희 둘에게 모두 생경했던 도시인 보르도에서 살고 있어요. 그 도시를 고르는 것은 거의 뽑기 수준이었고요. 이제 보르도에서 자가 집까지 구매해서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요. 


어릴 적 엄마와 여행 간 벨기에에서, 유년 시절은 주말마다 엄마와 여행을 다닌 기억으로 가득하다 
최고의 여행메이트, 남편과 함께 


3. 유나 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 편의 명랑소녀 동화 같아요. 그 와중에 멋진 남편분까지 만나 여행과 모험을 함께 이어나간다는 게 참 멋져요! 궁금한 게 그럼 불어와 한국어 중 어떤 언어가 더 편하신가요? 


둘 다 편한 편인데 불어가 조금 더 편한 것 같아요. 한국어를 할 일이 거의 없고, 남편과는 불어로 소통을 하니까요. 하지만 가장 편한 것은 불와 한국어 둘 다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에요. 각각의 언어로만 표현이 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4. 유년기를 프랑스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지내셨는데, 자라면서 정체성 혼란 등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정체성 혼란은 분명 유년기시절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정체성 혼란”이었다는 것은 결국 나이를 먹고 나서 깨달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혼란들이 오늘날의 저를 만든 것이어서, 딱히 어떤 것이 좋았고 불편했고를 구분해서 말하기가 어려워요. 


당연 다른 언어, 저의 다른 생김새, “당연하다”라는 스테레오타입등이 저의 다름으로 인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때, 역으로 저의 행동이나 반응에 대한 이해를 못 한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등등.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5. 혹시 두 문화를 오가며 자랐기에 생긴 에피소드 등이 있으신가요?


4번 질문이랑 조금 비슷한 맥락에서 더 이야기하자면, 우선 제가 파리에 처음 가서 살았을 때가 90년대 초반이었어요. 프랑스를 비롯하여 많은 유럽국가들이 그랬듯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알지 못했죠. 


저의 소개를 하면 여러 반응이 왔는데, “중국에 붙은 나라” “그럼 너는 중국인이냐” 등의 차별적인 말들이 많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도 아는 것이 없으니 그리 물은 거겠지만 어린 나이에 제게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운 반응들이었어요. 그때와 다르게 지금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을 보면 재미있어요. 


하루는 저희 엄마가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동네 사람들이 “김치 냄새가 난다고” 문을 한참 두들겼어요. 제 입장에서는 웃겼던 게 치즈 냄새는 더 독하거든요. 또 어떤 사람들은 “내 친구 아빠가 한국에 출장 갔는데, 공항에 내리자마자 김치 냄새가 진동을 하더래” 등의 차별적인 이야기도 하고요. 그 당시 해외에서 거주 중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받은 질문이었겠고, 저는 아직까지도 받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한이야 남한이야?”를 그렇게 사람들이 물어봐요. 


어릴 적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6. 저도 겪었던 에피소드들과 너무 비슷하네요. 그럼 혹시 프랑스인인 남편분과의 사이에서도 느끼는 문화차이가 있나요?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저는 남편과의 문화차이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분들과 문화차이를 더 느껴요. 하지만, 프랑스인인 남편과도 느끼는 부분이 있죠. 


아무래도 모든 TCK가 그렇듯, 두 나라에서 스펀지 같은 유년기 시절을 보냈으니 대체적으로 문화차이나 생각의 차이 등을 잘 감지하고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라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종종 던져요. 늘 제 주변에는 저와 같은 길을 걸은 사람이 없으니, 물어도 제 맘을 잘 몰라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잘 없었어요. 


제 남편이랑 살면서 문화차이를 느꼈을 때는 “저”라는 사람과의 차이보단 저희 가족과의 차이를 느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 저는 양쪽 다 이해를 하는 입장이 되죠. 


결혼식에서 남편과 함께 


7. 두 문화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시고 계시군요. 그럼 좀 더 개인적인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국제 커플들의 저녁 식탁이 궁금해요! 보통 어떤 것들을 해 드시나요? 


저희는 집밥을 많이 먹는 편이에요. 시아버님이 호텔 셰프셨어서 남편이 조금 요리를 하는 편이에요. 저는 주로 한식을 만들고, 남편은 양식을 만들어요. 남편이 한국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제가 잘 안 하던 요리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웃기게도 남편의 최애 음식은 순댓국이에요. 그래서 저도 레시피를 보며 어떻게든 만들어보지요. 여행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을 찾고, 여행하다가 한국음식점을 보면 꼭 먹자고 하는 남편 덕에 한국음식을 더 자주 먹는 것 같아요. 


8. 최근에 남편분과 한국을 방문하시고 여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남편분이 보시는 한국의 문화나, 특별한 부분이 어떤 게 있나요?


남편은 대리운전기사 문화가 너무 대단하다고 하더라고요. 왜 프랑스엔 없을까라며 아쉬워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분명 한국이니까 가능한 것이고, 보르도에서 대리운전사업을 하면 그만큼 수요가 많지 않아 망할 것 같다고 덧붙였어요. 


또한,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 몸에 비해 아주 많이 먹는다고 놀라더라고요. 먹방 같은 것을 보는 것도 신기하고, 어른들의 칭찬이 먹는 것에 연결된 것 - 예를 들면 “아이고 잘 먹어서 예쁘네” 가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유행을 바로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 다 똑같이 입고 다니는 것 역시 재미있다고 했어요. 누군가가 나와 같은 스타일의 옷이나 가방을 착용한 것에 대해 불편해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단 말과 함께, 사람들이 잘 보이기 위해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나 튀는 것보다는 집단 속에서 남들과 닮고 묻히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남녀노소 등산을 좋아하는 것 역시 인상적이라고 해요. 끝까지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2022년, 남편과 한국 여행 중 찍은 사진 


9. 현재 거주하시고 계신 보르도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요. 저는 와인으로만 익히 알고 있는 곳인데, 그곳의 문화는 프랑스의 다른 지역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보르도는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도시예요. 보통 대학교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사회초년생들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았던 도시고, 다른 지역사람들을 배척하는 곳이라고도 알려져 있긴 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프랑스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 보르도를 테스트 지역으로 삼고 있는 편이에요. 또한, 좋은 파도를 지닌 바다를 지닌 덕에 (약 1시간 거리) 서핑을 하러 오는 젊은이들도 많은 편이랍니다. 스페인이랑 바스크와도 가까워서도 좋은 것 같아요. 


보르도는 아주 평평한 평지의 도시로 유명한데, 바로 아래 험한 피레네 산맥도 있어서 어찌 보면 자연적으로 이래저래 다 갖춘 도시가 아닐까 싶어요. 말씀 주신대로 와인 역시 유명한데, 사실 와인도 취향에 따라 기호가 있고, 또 프랑스는 다른 곳에도 와인이 유명한 곳들이 많아서 보르도 하면 프랑스인들은 바로 와인을 떠올리진 않아요.


프랑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는데, 프랑스 동쪽에 알프스 산맥이 있다 보니 그쪽 사람들은 지형에 따라 성격도 세고고 꽉 막힌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해요. 그에 비해 다른 지형을 가진 보르도는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무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또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도 하지요. 


10. 일전에 국내 모 월간지 피터 디렉터님과 이야기할 때, 한국 지방의 지형과 관련 사투리 그리고 그 지방 사람들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것이랑 너무 일맥상통해서 신기하네요. 진짜 그런 게 있나 봐요! 그럼 다음 질문을 드릴게요. 유나 님이 생각하시는 TCK로 자라는 것의 장점은 무엇이고, 반면 아쉬운 점 혹은 본인이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TCK로서 자라는 것의 장점은 정말 세상이 방대하게 넓다는 것을 몸소 배우고 보고 느끼는 것인 것 같아요. 반면 아쉬운 점은, 어느 집단에서 온전하게 이해받는 것이 어려운 동시 유년시절과 사회초년생 시절 느꼈던 어려움이지요. 


11. TCK가 취업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TCK로 자라면, 성격적인 메리트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기질적으로 활발한 편이지만, 다이내믹한 성장배경이 저를 더 활발하게 키워준 게 아닐까 싶어요. 어느 사람을 만나도 잘 어울리고,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고 한 부분이요.


언어 역시 장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여러 언어를 자연스레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 해외지사나 해외기업들이랑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언어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오는 문화적인 이해도 있으니 이것 역시 플러스인 것 같아요. 


12. 현재 TCK로 자라고 있는 10대들에게 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나요?


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많이 보고 듣고 배우고 무엇이든 궁금해하고 경험하고 즐겨라!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것이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본인만의 자산이 될 테니 말이죠.  


13. TCK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TCK라는 개념이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 있어도, 결국 그냥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 1이라고 생각을 해요. 다만 조금 다른 사람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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