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릴 때 눈물이 너무 많은게 컴플렉스였어"
지금도 걸핏하면 잘 우는 엄마가 갑작스런 고백을 했다.
엄마는 뜬금없이 갑자기 내게 얼마나 미안한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도, 본인의 부모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아빠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콧등이 붉어지는 사람이다. 함께 디즈니 영화를 볼 때 우스갯소리로 크리넥스 티슈를 한 통 들고 봐야하는 사람이다. 불쌍한 누군가를 봐도 잘 울고,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도 잘 운다. 고마운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눈에 눈물부터 고인다.
재미있는 것은 엄마는 동시에 매우 강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 닥치면 우리 집 네 식구 중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불굴의 집중력과 의지력을 발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웃기고 슬픈 것은, 내가 그러한 엄마를 정말 꼭 빼닮았다.
나 역시도 세상 만사가 감동적이고 슬프고, 내 옆에 사람들을 떠올리면 걸핏하면 뭉클하고 애잔하고 감사한지라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지는 "눈물고질병" (내가 막 갖다 붙임)이 있는 편이다. 아니, 나는 정말 있는 편이었다. 워낙 내가 생각해도 여린 (혹은 유약한) 감수성에 쉽게 공감하고, 쉽게 감명 받고, 더 애잔한 것은 남들의 두 배로 상처받고 힘들어하며 우는 타입이었는지라, 물리적으로 자주 옮겨 다니며 자랐던 나의 유년 시절은 나에게 항상 베갯잎을 흥건히 적시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먼저 이별을 고하고도 미안한 마음에 눈물 속에서 고사를 지내는 타입이었고, 사람에게 정을 뗄 때도 나는 유달리 큰 홍역을 치르기 일수였다. 감정의 깊이가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감정의 굴에 빠질 때면 유달리 큰 아픔과, 큰 애정, 큰 무엇들에 빠져 허우적 거리기 일수였고, 태생적으로 초연함과 거리가 먼지라 여러모로 우습게 부은 얼굴로 등교를 하거나 출근을 하기 일수였다.
나는 이렇게 감수성이 예민하고 눈물이 많고, 우습게도 웃음 역시 많은 내 모습이 너무 싫어, 내 마음을 들키기 싫어 정말 부단히도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노력을 하는 과정의 일부도,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니지만 여하튼 내 인생을 크게 뒤바꾼 어떠한 일을 마주하며 이겨냈던 시간은,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몇달을 눈물독에 빠져 살았기도 했었다. 눈물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있어야했었던 배움의 과정이었을까. 나는 그 시기를 지나며 일전에 의도하고 노력했을 때 보다 더 단단해졌고, 눈물 역시 많이 사라졌다. 감정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법을 본의 아니게 터득했고, 스스로의 스위치를 크고 끄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 나는, 슬퍼도 슬픈 티를 내지 않는,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얼굴 근육에 힘을 주거나 심호흡을 하고 시선을 돌려 눈물을 참는, 몇 방울 이어질 것 같은 눈물을 한두방울로 끝내고 감정과 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터득한 사람이 되었다.
요즘은 스스로의 눈물샘이 많이 말라버려 아주 가끔 나 자신에게 서운하기도 하지만, 눈물이 날 것 같은 상황에서 매몰되기 이전에 그 감정에서 무릎을 떼고 조금 다른 곳을 바라보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이라는 감정은, 나이와 상관없이 버겁기도 하고, 또 달갑지 않은데, 참 익숙하기도 하다.
어쩌면 말라버린 눈물샘은 슬픔이라는 감정에 둔해진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우는 법이, 슬픔을 애도하는 법이 달라져버린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슬프면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심호흡을 한다. 그러면 내 옆구리를 칭칭 감싸고 있던 슬픔은, 조금, 아주 조금 강하게 힘을 주고 있던 손의 힘을 푸는 것 같다. 그래, 결국은 우는 법이 달라진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