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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쉬탕가 요가를 하는 이유

by Nara Days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인 요가원을 다닌지 6개월, 요가원의 영업에도 지칠 뿐더러 여러모로 너무 쉬워 내게 더 이상 모티베이션이나 자극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될 무렵 검색을 통해 현재다니는 요가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필라델피아에서 요가 강사 겸 ux 디자이너로 생활 중인 사촌동생이 한국에 왔을 때 수련했던 곳.


아쉬탕가 요가를 집중적으로 하는 현 요가원은, 오전에는 셀프 수련을 할 수 있는 마이솔 클래스를 진행을 하고, 오후에는 빽빽하게 채워진 스케줄들이 다 “아쉬탕가 클래스”이다.


움직이는 명상이라고도 불리우는 아쉬탕가 요가수련의 세가지 중요 요소는, 호흡(우짜이 호흡) , 반다(잠금), 드리스티(응시점)이다.


우짜이 호흡은 코로만 숨을 쉬고, 복부를 고정시키며 하는 호흡인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특히나 나처럼 저혈압과 빈혈이 심한 사람은 호흡을 잘못 했다가 팽하고 넘어지기 일수 (프라이머리 시리즈를 하면서도 몇 번 휘청했다), 정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다.


요가를 잘 하는 편은 아니더라도 20대 초반부터 밴쿠버에서의 비크람을 비롯해 홍대에 나름 유명한 ㅇㄱㅋㄹ 등 꾸준하게 요가원을 인앤아웃은 해서 나름 “금방 따라 잡겠지” 라고 한 것은 나의 크나큰 오산. 아쉬탕가 요가는 나에게 매일 챌린지를 주었고, 스스로 넘어야 하는 과제들을 선물하고 있다.


특히 아쉬탕가 요가를 하면서 나는 “매트 위의 나의 모습이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게 되었다.


요가 시작 전, 그리고 후에 기본적으로 매트를 잘 정돈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떠한 아사나에 얼만큼 전적으로 임하고 조금 더 푸쉬를 해 스스로가 세팅한 한계점에 도달하고 넘는가, 옆 사람 매트를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내 수련에만 집중하는가 등이 내가 삶을 사는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왜 나는 임의적으로 혼자 “이 정도면 됐어” 라고 생각을 할까, 내 한계를 스스로 정하고 지레 겁을 먹을까, 왜 나는 순간순간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의식하는가 등의 의문들이 있었고, 의도적으로 그러한 나의 모습을 고쳐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쉬운 것 같지만, 흐트러지면 온 몸 전체가 흐트러지는, 그리고 수련의 이미가 없어지는 발바닥 전체를 매트에 잘 붙이기, 손가락을 잘 뻗기 등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은, 마치 내가 살면서 가장 기본적이고 사소한 것이지만 귀찮은 것들, 가령 아침마다 침대 정리를 하는 것이나 치실로 양치 후 구석구석 정리를 하는 것, 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평소에 잘 해서 나름 자신감이 있는 쉬운 아사나도, 내가 집중을 하지 않고 딴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는 새에 흐트러져 있었고, 너무나도 쉬운 다운독 자세에서도 등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 등의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나는 아쉬탕가 요가 덕에, 스스로를 정돈하고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매일매일 가장 기본적인 것에 얼마나 충실한지, 내 삶을 어떠한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대하는지, 나 스스로를 어떻게 대접하고 더 나아가 이끌어내는지에 대한 값진 시간을 선물 받았다고나 할까,


나는 요가를 하다가 종종 우는데, 나는 아직도 그 눈물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요가를 하며 울 수 있다는 것 자체, 그 시간에 감사하며, 오늘도 요가원을 갈 생각에 설렌다. 밖에 미세먼지가 어떻든, 내가 일을 하며 얼마나 괴로웠든 상관없이 오롯이 매트 위의 나에게만 집중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고마운 요가.


올 해 말 쯔음엔 모든 아사나와 시리즈를 외우고, 시르사아사나를 하며 마이솔 클래스에도 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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