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우파를 보며 의지가 갑자기
요즘은 스트릿우먼파이터에 뒤늦게 열심히 찾아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도 새벽 세시 반, 아마 이미 열댓번은 봤을 아이키의 모든 영상을 다 찾아보고, 코카앤버터 영상들도 찾아보고, 립제이의 배틀 영상도 열번 정도 다시 돌려보았다. TV를 잘 안 보고, 넷플릭스에 스트릿우먼파이터가 없어 풀 영상을 보진 못했지만 열정적인 너튜브 검색을 통해 대략적인 서사 및 엑기스 영상들은 계속 보는 편이다. 집에서는 애인과 서로 댄스배틀을 하며 녹화를 하며 노는데, 층간소음으로 아랫집이 올라올까 무섭다.
공교롭게도 나의 동생은 왁킹, 걸스힙합 등을 하는 실용무용과를 졸업했고 실제 대학교 때 본인의 크루의 리더로 있었던 댄서이다. 해외로 K-pop을 가르치러 나가기도 했었고, 국제적인 무용 대회에서 의전 및 통역으로 출국한 적도 몇 번 있다. 지금은 현실과 타협하느라 영어 강사 및 교육 콘텐츠 담당자로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말에는 댄스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후배들의 영어 과외도 하고 있다. 하지만 어쩜 단순 오락거리로 스우파를 보는 나와는 달리, 스우파를 보는 동생의 표정을 보면 현생에 너무 바쁜 그녀의 씁쓸함이 느껴진다.
여하간에 춤을 추는 동생 덕에 여러 이벤트를 기획해야 했던 과거의 나는 도움을 받은 적이 몇 번 있다. 사실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5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동생이 춤을 추겠다는 동생을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춤을 잘 추는 동생이 내심 뿌듯했던 적도 있었다.
동생의 대학교 졸업 작품회는 역시 나에게는 새로운 문화적인 경험이었다. 춤 중간중간 아이들이 넣는 추임새가 있는데 (스우파에서 많이 하더라) 동생이 나와서 춤을 출 때 동생이 너무 자랑스러웠던 막내이모와 엄마의 "ㅇㅇㅇ 날씬하다! 몸매 짱이다! 멋지다!" 등의 추임새가 조금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닌데도..
흥미롭게도 동생의 말에 따르면, 스우파의 실제 출연진 중 일부가 동생의 선생님이었고 동생이 여러 미담 및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알려주었는데 (모니카는 실물이 더 아름답고 멋지답니다. 나 울어..) 그 중 하나가 허니제이쌤에 대한 이야기였다.
동생이 대학교 새내기이던 1학년 때, 과제가 다짜고짜 "1세대 댄서의 인터뷰를 기획하여 직접 인터뷰를 해올 것"이었는데, 전형적인 수줍고 조용한 INFP인동시에 가끔 괴이한 힘을 내는 동생이 본인만의 기지를 발휘했다.
** 나의 동생에 대해 조금 더 덧붙여 이야기 하자면, 동생은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다 스무살이 넘어 한국에서 뒤늦게 춤으로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들어왔다. 살면서 단 한번도 한국어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 (우크라이나, 남아공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다 한국에 들어와 불가피하게 서울에 있는 국제학교를 졸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싼 학비를 내고 다닌) 본인이 졸업한 학교가 한국에서 정식 교육으로 인정이 안되는 난관에 봉착을 한다. 이건 정말 한국 사립학교들의 문제가 아닌가... 여하튼 동생은 어떻게든 본인이 사랑하는 춤으로 입시를 하기 위해 밤을 새며 춤을 추고, 1년 안에 중학교 및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았고 합격했으며 찢어진 근육 위에 열심히 주사를 맞으며 원하는 곳에 입학을 했다. 당시 동생이 했던 명언은 "역사랑 국어랑 이런 것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그냥 글을 다 통으로 외웠어"였다. 좀 무섭다.
그러한 동생은 받은 과제를 위해 본인이 좋아하는 1세대 댄서들에게 장문의 DM을 보냈고, 유일하게 답을 준 사람이 허니제이쌤이였다고 한다. (나 같아도 그냥 읽고 무시했을 것 같은데..) 분명 매우 바쁠텐데 동생의 자초지종을 듣더니 본인이 운영하는 공간으로 오라고 초대를 했고, 동생은 용돈을 털어 커피와 스콘 여러가지를 챙겨 갔다고 한다. 허니제이쌤은 동생을 반가이 맞아주며, 분명 여러모로 풋풋하기에 깔끔하지 않을 수 있었던 새내기의 질문들에 친절하게 하나하나 답을 했다고 한다. 커피는 너무 고맙고, 지금 다이어트 중이니 스콘은 학생이 먹어요! 라는 인사와 함께. 당시 동생은 허니제이쌤 덕분에 유일하게 반에서 과제를 완수한 사람이었다고 하며, 그 때의 인상이 너무 좋고 그녀에게 춤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어서 그 후에는 분당에서 합정까자 수강생으로 춤을 배우러 갔었고 지금도 그녀에게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훈훈하고 멋진 (상여자스러운) 허니제이쌤을 비롯해 각자의 매력과 리더십으로 춤 외로도 사람들을 매료 시키는 모든 여성들을 보고, 그 밀어주고 당겨주는 동지애와 전우애를 보며, 승패에 비참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든 깔끔하게 응수하는 화끈한 동시 쿨한 그녀들을 보며 정말 매일 "멋진 여성 뽕"에 취해있는 요즘의 나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이키의 touch my body를 보고 급격하게 입덕 후 현재도 아이키가 원픽이긴 하지만, 각 출연진의 서사와 매력을 알면 알수록 사랑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여하간에 나는 스우파 영상들을 찾아보며 자기확언을 다시 시작했고, 하고 싶은 것들이 또렷해졌으며, 이상하게 여러 의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원래도 의지가 많은 사람이지만, 조금 더 명확해졌다고 해야하나.
자기 밥값을 하는 성실하고 멋진 여성, 나의 팀원들 및 동생들을 잘 이끌어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언니,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가장 정직하고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스우파 덕에 다시 한번 강하게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모든 선택들을 지지해주는 가족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멋짐"이 어떠한 외부적인 지표로 매김을 당하는 것이 아닌, 내가 세운 기준에 부합하여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멋짐이었으면 좋겠고, 그런 멋진 여성들끼리 더더욱 밀어주고 당겨주며 연대하는 그런 사회에서 같이 잘 살면 좋을 것 같다는.. 매우 클리셰하지만 진심을 담은 말로 나의 두서없는 생각들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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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동생 이야기를 하며, 오늘 애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의 엄마 역시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주일동안 밥을 굶고 시위하며 결국 무용으로 서울예고에 진학, 졸업하고 이대 무용과를 나오셨는데, 실력이 좋아 교수님들로부터 석사 권유를 받으셨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서울예고에 다닐 시절, 열심히 기사님이 데려다주는 차로 등하교를 하는 대다수의 부유한 집 아이들과 달리 가족의 반대에 맞서 타이트한 예산 속 정말 무용에 대한 열정과 의지로만 예고에 진학했던 엄마는 매일 만원 버스에서 팝콘처럼 튕겨 내렸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많이 해주셨다. 내 동생의 가끔 무서운 기지가 어디서 온 것인지 너무나도 정확한 것 같다.
여하간에 석사를 하고 싶었으나, 사남매를 키우셨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당시 석사를 지원 해 주시기 어려우셔서 엄마는 결국 석사 진학을 포기를 했고 결국 중학교 무용 선생님이 되셨다는 이야기를 하니 애인은 "나라는 내가 다 지원 해 줄테니까 살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해. 내가 다 지원 해 줄거야" 라고 했다.
물론 결혼을 하고 애를 키우며 실제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들을 마주쳤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돈보다도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것마다 다 할 수 있게끔 지원하고 응원해주는 이 사람의 마음만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큰일을 할 수도 있겠다는 든든한 자신감이 가득했던 오늘 하루였다.
아마 내가 멋진 여성으로 살고 싶다는 의지의 팔할은, 외부를 향한 인정욕구도, 오기도, 혹은 주입된 무엇도 아니라 나의 든든한 자양분 같은 사람들로 빚어진 토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