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기본적인 의미를 넘어서
청첩장을 전달하기 위해 첫 회사의 팀원 분들과 함께 모였다. 내 인생 가장 오래 다닌 회사이기도 하고, 가장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지만 내 눈에는 10여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모습과 똑같았다. 애를 최근에 낳은 선배, 그리고 애 둘 엄마인 동료 역시 내 눈에는 어떻게 아기 엄마라고 볼 수 있을까 정도로 귀엽고 뽀송했고, 11년전 당시 서른살이었던 팀장님 역시 (그 땐 결혼도 하고, 서른살인데도 과장 직급이었기에 우리 눈엔 굉장한 어른처럼 보였다), 마흔이 넘었다해도 여전히 내 눈에는 그 때의 팀장님 같았다.
이야기의 주제는 결혼 준비를 비롯해 일, 그리고 임신과 육아 등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는데 같은 일터에서 함께 일을하며 만난 사이인만큼 어느 정도 일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비슷하단 consensus위에서, 각자 서로 하고 있는 일, 일에 대한 정의, 그리고 각자의 고충 등을 이야기했다. 늘 언제나 우리 팀 안에서 '통통 튀는 솔톤의' 역할이었던 나는, '스타트업이 너무 잘 어울린다'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ESTJ인 팀장님은 누가봐도 멋진 글로벌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지금 출산으로 잠시 육아휴직을 들어갔지만 대기업을 다니며 멋진 기획자 및 커뮤니케이터로 살고 있는 ISTJ 선배,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웃기고 기발하며 PD 준비를 했던 과거까지 있음에도 '기획하고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일이 안 맞아' 갑작스레 9급공무원을 준비하여 일년 안에 공무원으로 전환해 모두를 놀래키고 애를 둘이나 낳고 누구보다 잘 살고 있는 언니까지 - 각자의 이야기 꾸러미를 조금씩 풀어내니 어딜가니 우리가 옛날에 함께 일하던 때가 또 떠올라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나는 나의 마지막 직장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유독 꼼꼼하고 심지어 "타인을 무섭게 만들 정도로 일을 잘 한다"라는 피드백 등을 들어 일부 집단에게는 쉽지 않은 느낌의 사람이었단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데, 사실 나의 첫 직장에서 25살의 나는 실수도 많이하고 덤벙대고, 창의적이다 못해 통통튀는 전혀 정돈되지 않는 탱탱볼 같은 느낌의 사람이었다. 어쩜 그런 아프리칸 정글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나를 씻기고 입히고 사회화 시켜준 것의 팔할은 위 팀에서 배운 덕이라고 생각을 한다.
여하간 그러는 와중 우스갯소리로 나온 (하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우리는 약간의 진심이 담긴 이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 같다) "팀장님은 일을 왜 하세요?" 라는 질문에 또 다시 수다보따리가 늘어졌다. 동료 언니가 "내가 아는 사람 중 팀장님이 제일 부자야" 할 정도로, 팀장님은 많은 것들을 갖춘 분이다. 굳이 우리가 정의를 하는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데, 내 기억 속 팀장님은 늘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야근을 했고, 일을 사랑했고, 일을 불러왔다. 지금 보면 회사의 시니어분들이 팀장님을 많이 아꼈던 것 같고, 늘 주어진 것 이상으로 아웃풋을 내는 그녀를 보며 일을 더 줄 수 밖에 없었던 생각이 든다. 나의 반절정도 되는 체구에 어쩜 그리 많은 일들을 늘 이고 진행을 했는지, 사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팀원으로 일할 때는 범접하기 힘든 존재처럼 보였다. 월급이 조금이라도 오르는 시점에 입금 금액을 기대하는 나를 비롯한 많은 직장인과는 달리 팀장님은 월급이 오른 한참 후에 "통장을 보니 월급이 좀 올랐더라?" 라고 이야기 하시는 쿨한 어록을 우리 사이에 남기셨고, 늘 무언가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단순 노동이나 밥벌이가 아닌 태도를 보여주셨는데 그 태도의 팔할이 '일에 대한 엄청난 책임감과 우아한 프로페셔널리즘' 이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단계별로 형성되는 인간의 욕구에 대해 이야기를 한 심리학자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이 욕구의 단계를 보면 왜 어떤 사람은 먹고 사는 것에 충실하고, 어떤 사람은 어딘가 소속되어 사람들로부터 애정을 받으며 더 나아가 존경을 받으며 자긍심을 느끼는 것을 중요시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각 단계별 욕구가 채워지면 더 고차원적 욕구로 스스로의 욕구는 발전을 하게 된다고 한다.
아마 위에 말한 나의 전 팀장님은 이 욕구 도표에서 존경과 자아실현 그 어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굳이 밥벌이를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그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자부심을 느끼며 더 나아가 목표를 성취하고 자기계발을 하는 욕구의 충족 말이다. 아마 나나 나 이상의 연차를 지닌 많은 사람들 역시, 존경의 욕구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나의 경우는 곧 남편이 될 애인의 벌이로 두 명의 생활 유지는 충분히 가능하겠다만, 그래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더 먹고, 사고 싶은 것을 더 사기 위한 생리적 욕구 충족 역시 분명 나의 욕구 도표에 크게 존재한다. 하지만 웃긴것은 그가 나에게 회사를 다니지 말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살라고 열심히 꼬득였을 때, 눈 앞에 실체로 존재하는게 아닌 나의 자아실현의 욕구가 침범을 당하는 것 같아 그에게 모질게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돈도 벌고 싶지만, 소속감도 느끼고 싶고, 일을 통해 자긍심과 자부심도 느끼고 싶고, 자아실현까지 하고 싶은 총체적 욕구와 욕심의 콜라보인 듯 하다.
구글에서 "노동"이라 치면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경제학에서는, 생산 요소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봄> 이라는 답변이 나온다. 각자의 노동과 일의 의미는 다르겠다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스스로에게 할당된 노동을 해야해서가 아닌 진심을 다 해 보통 이상의 아웃풋을 내는, 그 와중 우아함을 잃지않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멋지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스프레차투라 (Sprezzatura)인데, "가장된 무심함"이라는 뜻이다. 어려운 일을 아주 쉬운 척 세련되고 우아하게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고, 그런 사람들을 존경한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가며 어떤 태도로 내 앞에 있는 일들에 임할 것일까를 종종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나,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간극, 관계의 불균형, 주변의 시기질투, 혹은 초심과는 달라진 나의 마음 등 때문에 마음처럼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만 그래도 나는 내가 스프레차투라를 행하며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한 태도가 개인의 일을 할 때도 똑같이 유지가 될까 궁금하긴 하다.
며칠 전 찾아뵌 나의 전 상사 댁에서 자정까지 일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그 상사분께서 해주신 말씀이 갑자기 뇌리에 스친다. 내가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일하는 어른 중 한 분인 동시, 내가 뵌 시니어 중 나를 가장 잘 아신다고 생각되는 분인데 그 분은 "나라님은 누군가가 나라님에게 준 일은 남에게 피해 주기도 싫어하는 성격이고 굉장히 열심히 그리고 잘 하지만, 스스로의 일이 생각만큼 결과를 못내면 뭐 어때 하실 것 같아요" 라고 하셨다.
아, 역시 나의 스스로에 대한 답 없는 긍정적임이 간파 당했고, 실제 나는 일 외적으로 나 스스로가 내는 결과물에 매-우 낙천적인 편이다. 독기라고는 없는 낙천적이고 즐거운 나... 아마 지금 이 상태로 사업을 한다면... 자선사업가가 되겠지... 아직까지 나의 스프레차투라는... 직장 한정인 것 같다.
그러기에 향후 몇년간도 나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즐거운 노동러가 될 것 같다. 다행히도 난 지금 또 좋은 회사에서 의미 있는 일들을 배워가며 나의 욕구 충족을 위한 시동을 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