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에 다들 와주시고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4월 10일, 결혼식을 올리다 - 1 에 이은 결혼식 당일 이야기
정신 없이 흘러간 포토타임이 끝나고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입장을 하는 곳이면 좋았을테지만 내가 고른 식장은 그런 곳은 아니었다. '버진로드로 가는 길이 아쉬운 식장'이라는 모 카페의 피드백처럼, 나는 식장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버진로드로 아빠, 드레스샵 이모님, 그리고 식장 직원분과 함께 걸어갔다.
버진로드 끝에서 신랑이 먼저 입장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신랑은 유쾌하게 걸었고, 결혼을 해서 신이 난다는 포즈를 주먹을 꽉 쥐고 양팔을 들며 신나게 취했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재치 있는 모습을 보고 모두 귀엽다는 듯 웃었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입장을 하며 보았던 식장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고, 웅성웅성 하는 목소리 속 익숙한 목소리들도 들렸다. 버진로드 옆에 앉은 내 친구들은 나를 찍기 바빴고, 나의 손을 잡은 아빠는 안 그러신 척 했지만 긴장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Elvis Costello의 She 삼중주가 들리며 '신부입장!'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여담이지만 나는 신부입장곡으로 Elvis Costello의 She를 듣는게 너무나도 지겹고 식상해서 나만큼은 그 노래를 사용하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식장에서 보내준 삼중주 옵션은 세가지밖에 없었고 이 선곡이 가장 무난했다. 원하는 노래를 골라 MR로 트는 것은 가능했다만, 이왕이면 삼중주로 하고 싶었기에 나 역시 그 곡을 골랐고 아마 모두가 비슷한 이유 때문에 그 곡을 고르지 않았을까 싶었다.
준비를 하며 익히 들었지만 (우아하게 천천히) 걷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빵빵 차며 걸어야한다는" 말처럼 나름 드레스를 힘세게 빵빵 찼지만 구두 아래로 말려 들어가기 바빴고, 조명은 너무 세게 때려 저 멀리 서있는 신랑은 아득했다. 아빠와 나는 템포를 맞춰 걷고 신랑이 있는 곳에 다다랐고, 아빠는 신랑을 포옹해주신 후 나를 안아주시며 목을 메는 소리로 "잘 살아"라고 이야기 하시며 우셨다. 망했다. 나를 위한 덕담을 쓰시면서도 눈물을 계속 흘리시고, 우황청심환까지 준비하여 드셨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이른 시점부터 우실줄이야.
나는 재빨리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고 결혼식에 몰입했다. 주례없는 결혼식이었기에 나와 함께 일을 하다 현재는 신랑이 일하고 있는 부서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는 동료의 사회에 맞춰 식은 흘러갔다. 여담이지만 사회를 본 친구는 코로나19에 걸려 39도까지 올라가는 고열을 겪고 우리의 식 일주일 전에 격리해제가 되었고, 나의 부케를 받는 친구 역시 코로나19에 걸려 고생하다 우리의 식 사흘 전에 격리해제가 되었다. 모두 정말 의리의 아이콘들이 아닌가 싶다. 살면서 오래오래 갚을 귀한 사람들.
시아버님의 성혼선언문에 이어 반지 교환식이 이어졌고, 그 다음은 우리 아빠의 덕담이었다. 아빠는 우리를 위한 덕담 전 코로나19 시국에 귀한 걸음을 해주신 하객 분들께, 시댁에, 그리고 엄마께 감사를 표했다. 엄마께 감사를 표할 땐 아빠의 친구분들이 정말 찐 방청객 같은 호응을 해주셨다. 나는 짧지만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아빠의 멘트가 너무나도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빠는 우리를 위한 덕담을 시작하며 나의 어릴적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데 아뿔싸, 아빠가 목이 매서 우시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요지는 며칠 전 출근길에 갑자기 3n년전 타이베이에 살 시절, 내가 차에서 내려 유아원으로 들어가며 궁뎅이를 "실룩실룩"하던 뒷모습이 떠올라 갑자기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인데, 아빠는 그 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행복하고 벅차신 것 같았다. 당시 아빠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젊었다. 아빠가 처음인 청년이 처음으로 타지로 발령이 나 새로이 꾸린 가족과 외국에서 생활을 하는 마음이 어땠을까. 나의 아빠에게 아빠가 되는 첫 경험을 선사해 주는 자식이 되어 감개무량했다.
아빠는 나에게 늘 다정한 아버지였다. 돌이켜보면 늘 아빠와 함께 목욕을 하고, 레고를 맞추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낮잠을 자던 기억이 난다. 내가 처음으로 맞이한 세상, 엄마와 아빠가 만들어준 세상은 한없이 다정했고 따뜻했으며 견고했고 건강했으며 늘 안전했다. 그건 내가 스무살이 훌쩍 넘어서까지도, 지금까지도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부모님 두분 다 나보다 한참 작은 모습이라, 이젠 내가 나의 세상으로 두분을 지켜드려야 할 것 같다.
아빠의 덕담을 들으니 나도 눈물이 계속 나서 비싼 화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멘탈이 잡히지 않아 계속 울었다. 아, 정말 울고 싶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내 손님으로 온 하객의 대다수가 아빠의 덕담 때 모두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몰랐는데 나의 신랑 역시 울었다고 했다. 우리 아빠의 비밀작전이었던 것일까. 사람들의 기억 속 아빠는 "세상 제일 스윗한 나라네 아버지"가 되어버린 듯 했다.
아빠의 덕담에 이어 신랑의 상사분 축사가 이어졌고 그 다음에는 나의 동생의 축사가 이어졌다. 여담이지만 내 동생의 축사는 부모님으로부터 열 번 이상의 피드백을 받았던 축사였기에 동생이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쓰게 되어 조금 속상해 했다. 원래는 모두 영문이었던 축사였는데 (동생과 나는 대부분 영어로 대화를 하고, 동생은 한국어보다 영어를 편해한다) 아버지의 꾸지람에 한글로 바꿨는데, 아뿔싸 한글이 조금 어색한 내 동생은 나에 대한 경외심과 감사를 표하며 "언니의 업적을 기리며"라는 표현을 썼고 나는 졸지에 엄청난 위인 (이자 고인 느낌..)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여하간 동생의 축사 역시 감동 포인트가 참 많았고, 나는 나를 무한지지 해주는 가족들 덕에 부족한 와중에도 늘 자신감을 얻고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동생 역시 본인의 축사를 읽으며 울먹였고, 나중에 본식 사진을 받았을 때 축사를 읽는 동생의 얼굴에 인조 속눈썹이 붙어있어 온 가족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동생의 축사 다음으로 이어진 신랑의 축가는 참 귀여웠다. 그가 단순히 노래방에서 연습을 하고 오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시간은 알고보니 그가 "논현역 보컬트레이너"에게 보컬트레이닝을 받았던 시간이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 '윤도현 - 길'의 무수히 많은 고음들을 최대한 담백하고 정직하게 담아내려 무던히도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일등가수가 아니라 더 좋았고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면 어이없어 하지만), 기교가 많지 않아 더 귀여웠다. 그리고 사실은 그가 몰래 연습할 때 얼핏 들었지만 처음 들은척 하며 놀랬던 <감동 나레이션> 역시 너무 귀여웠다. 그가 노래하는 내내 방글방글 웃으니 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신랑이자 남편은 "왜 내가 노래할 땐 감동 받고 안 울었어?" 라며 서운해했다. 휴, 남편은 너무 귀엽다. 여담이지만 식 끝나고 연락을 드린 시어머니로부터 "더 이상 김씨 가문 남자들에게 직접 부르는 축가는 없는게 좋을 것 같다"라는 답변이 왔다. (ㅋㅋㅋㅋㅋ)
그렇게 식이 끝나고 2부 드레스로 갈아입은 후 모든 테이블을 도니 시간이 모자랐다. 3시간 텀이라 넉넉할 줄 알았는데 그 다음 식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는 현장 스탭의 말에 마지막 테이블들은 정말 짧게 돌았는데, 이미 식사를 다 하고 떠난 테이블에 남아있는 나의 플라워샤워 크루이자 전 팀원이었던 친구들이 와인 한병을 비우고 발그레한 모습으로 앉아있어 너무 귀여웠다.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반나절이었지만 그 모든 순간을 채워준 것은 코시국에 먼걸음 해준 고마운 하객분들 (자리가 다 차서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다고 들었고, 신랑 신부측 친구수를 보고 양쪽 어른들이 다 놀라셨다고 한다. 사실 난 늘 내가 인간관계 관리를 너무 못하는 편이라 친구가 별로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좀 감동이었고 너무 감사했다), 축의금을 받느라 고생해준 나의 사촌형부와 사촌오빠, 멋진 사진 찍어준 나의 친구들, 코로나19로 청첩장을 드리지도 못했는데 축의금까지 보내준 분들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 오지 못해도 마음으로 함께 해주고 축하해준 지인들, 모두 민감한 시기에 건강 관리 열심히 하고 좋은 컨디션으로 식장에 나타나준 양가 가족분들, 나의 멋지고 든든한 웨딩플래너님과 현장 포토그래퍼 및 비디오그래퍼 분들, 그리고 바쁜 시기 나의 결혼 준비를 이해해주고 결혼식에 와서 응원해준 고마운 나의 현 직장분들이었다.
사실 미리 혼인신고도 하고 같이 산지 좀 되어 결혼식에 대한 부담이나 설렘이 크게 없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확실히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행사를 치루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기분이 조금 달랐다. 모두 앞에서 공표를 해버린 느낌이랄까. 특히나 우리는 비밀연애였다가 사람들 앞에 '얼굴을 함께 보인 것'은 처음이라 더욱 더 그랬을 수도 있다.
또한 그날 오신 하객분들의, 나의 귀한 친구, 지인, 전 직장 동료, 현 직장 동료 분들의 크고 작은 기쁨들과 슬픔으로 앞으로 계속 함께 챙길 수 있는 사람, 나도 그들과 쭈욱 함께 갈 수 있게 더욱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본식 포토는 언제 셀렉해야할지 모르겠고, 웨딩슈즈는 당근에 팔까 고민 중인 요즘이다. 여하간 식이 끝나 다행이고 다음 화에는 결혼 준비의 여담 및 뒷담화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