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결혼식을 올리다 - 1

결혼식 전날, 그리고 당일 아침의 모습

by Nara Days

4월 10일 일요일 낮 12시, 우리는 강남에 있는 모 웨딩홀에서 예식을 올렸다.


처음에 잡을 때 오지 않을 것 같이 아득했던 그날이 왔다. 지난 늦가을 상견례 자리에서 5월 전에는 식을 올리면 좋겠다는 양가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4월에 뽑은 길일 중 유일하게 프라임 타임 (12시, 1시 등)이 남아있던 날, 4월 10일. 정할 땐 아득했는데,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함께 산지 석 달, 혼인신고를 한지 한 달 째라 그런지 솔직히 말하면 별로 큰 감흥은 없었다. 축가를 준비 중이라 그런지 떨려하고 싱숭생숭해하는 남편과는 달리 나는 얼른 무사히 끝내고 신혼여행을 갈 생각뿐이었다.

너무나도 무덤덤한 나를 보며 남편은 내심 서운해하며 "떨리지 않냐"라고 계속 물어보았다.


식 전날, 나는 식사를 하고 가지 못하는 손님들을 위한 답례품을 포장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반면 남편은 본인의 차를 웨딩카로 꾸미겠다며 대왕만 한 리본을 나도 모르게 다른 동네에서 당근을 해 오는 데다 답례품 포장용으로 동대문 종합시장에 가서 사 온 리본까지 가져갔다.


우리 커플은 종종 이러한 상황을 마주한다. 남편은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나보다 로맨틱한 구석이 꽤 많은 사람인데, 정말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에 몰두하는 나보다 '기분을 내고', '꽁냥꽁냥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내가 기분이 좋을 때는 그게 정말 귀엽고 스위트해 보이지만, 내가 날카로울 때는 "꿱! 지금 뭐 하는 거야!"가 먼저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들이 나를 향한 사랑으로부터 비롯되어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난 이후부터는 나도 그의 무드를 깨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가내수공업 중인 귀여운 나의 남편
귀엽고 위풍당당한 핑크 리본
그리고 그의 귀여움을 목도한 더 귀여운 나의 친구들
귀여움이 나부낀다

식 당일 오전 7시까지 도착한 헤어메이크업 샵에서도 나는 '침착하고 담담한 신부'였다. 책까지 펼치고 읽는 나를 보며 헤어 선생님은 놀라셨고, 나의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에 플래너님도 재미있어하셨다. 속눈썹을 붙인 내 모습은 다소 낯설었고, 늘 비대칭의 눈썹으로 다니기에 오래간만에 대칭이 되니 더 어색해진 양쪽 눈썹마저도 우스꽝스러웠다.


머리와 메이크업을 하고 나는 미리 골라둔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나의 결혼 준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인 나의 본식 드레스. 쉬이 찾기 힘든 5부 드레스에 레이스 비즈 드레스였다. 노출이 많지 않되 무겁거나 고루한 느낌은 싫었고, 적당히 우아하되 고상한 것은 또 싫었으며, 맑은 느낌이되 가볍지는 않았으면 했다. 솔직히 말하면 30대 중반의 신부지만, 적당히 사랑스러우면서도 우아했으면 했다. 조금이라도 '사랑스러우려고 한 노력'이 보이거나, '우아해 보이려고 한 노력'이 보이면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내가 막연하게 바라던 느낌의 드레스와 조우를 할 수 있었고 본식에 그 드레스를 입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나의 아름다운 웨딩드레스 (웨딩드레스 - 시그니처 엘리자베스, 메이크업 - 김청경 헤어페이스)

여담이지만 나는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피부가 빨갛게 일어나는 편이다. 드레스 피팅을 하며 이미 이 부분을을 된통 겪은지라 식 당일 아침, 드레스샵 실장님의 조언에 따라 알레르기 약을 먹고 가서 드레스를 입는 것에는 부담이 없었다. 분명 안 먹고 갔다면 옷과 살이 닿는 곳이 전부 빨갛게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결혼식이 12시인지라 우리는 10시를 조금 넘기고 샵에서 떠났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지만 메이크업 샵은 정말 '신랑 신부 공장' 같았다. 일하시는 스태프 분들도 대부분이 넋이 나가있었고, 남편의 예복을 세 번이나 떨어트리며 사과를 한 번도 하지 않아 조금 언짢기도 했었다. 우리처럼 7시부터 메이크업을 시작하면 얼리스타트 비용이라는 게 있는데, 내가 갔던 샵은 55,000원이었다.


샵과 식장은 가까워 15분 정도 걸려 식장에 도착했다. 얼른 메이크업을 한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을 만나고 싶었으나 신랑 신부는 호락호락하게 식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통성명조차도 하지 못한, 나중에 나의 웨딩 담당 포토 실장님이란 것을 알게 된 분들의 지휘에 따라 우리는 남편이 꾸민 깜찍한 웨딩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눈은 부셨고, 드레스는 불편했으며, 이미 하객들이 도착하기 시작하여 (플라워 샤워를 해주는 동생들이 너무나도 일찍 와서 이 모습마저도 찍어주고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사진을 다 찍고 2층으로 향했다. 우리는 웨딩홀마저도 처음 본 웨딩홀로 바로 정할 만큼 크게 고민 등을 하진 않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무리 좋은 곳이어도 지하에서는 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바람대로 나는 따땃한 봄날, 2층에 위치한 식장에서 식을 하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은 이미 도착을 하신 상태였고, 나는 부리나케 아버지 손을 잡고 리허설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덤덤했던 내 마음에 뜨끈하고 묵직한 파도 같은 것이 밀려온 것은.


스킨십과 애정표현이 많은 가족임에도 불구, 버진로드에서 아빠 손을 잡는 것은 너무나도 뭉클한 경험이었다. 아빠의 얼굴을 보니 아빠 역시 눈물을 참고 계신 모습이었고 나는 결혼식 준비 시간 내내 보여주었던 담대함과는 다르게 눈물을 참기 바빴다. 버진로드 입장에서 나와 같이 발걸음을 맞추고 계신 아빠 역시 울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시는 모습이었다. 아, 어떡하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적당히 눈물을 훔치고 들어간 신부 대기실, 그때부터 정말 정신없이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기 바빴다. 약 30-40분가량 몇 팀과 사진을 찍었을까. 만삭인데도, 일이 바쁜데도, 부산에 사는데도, 아이가 있는데도 달려와준 사람들이 고마웠다. 열심히 스냅사진을 찍어주시던 실장님이 나에게 말을 했다. "와, 신부님 밖에 줄 진짜 길어요. 저 신부 대기실에 줄 이렇게 긴 거 처음 봐요. 신부님 성공한 인생 사셨네요."


밖이 어떤 모습인지 알리가 없던 나는 그의 말에 정신없었고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친척, 친구, 동료들과 사진을 열심히 찍었고 아마 평소보다는 다소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표정을 계속 지었던 것 같다.


양가 어머님을 모시고 중간에 앉아 '까르르'스러운 표정도 지었고, 갑작스레 다 함께 들어와 누가 누군지 알리 없었던 전 직장 동료들과도 급하게 사진을 찍었다.


너무나도 고운 양가 어머님들을 모시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을 무렵, "신부님 5분 뒤 입장이에요, 이제 마지막 팀 사진 찍을게요!"라는 말이 들려왔다. 언제 그렇게 시간이 간 거지 싶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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