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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 Days Dec 17. 2022

딸에게 TCK의 삶을 주기 위해 택한 이민 (2)

미국, 중국, 캐나다의 유학생활을 통해 TCK로 자란 오진주 님

중국, 미국, 캐나다에서 성장 후 충청북도 교육청에서 근무를 하고 결혼 및 출산 후 본인이 겪은 TCK의 삶을 딸에게 물려주기 위해 캐나다 이민을 선택한 오진주 님의 인터뷰의 첫 번째 파트는 여기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7. 결국 진주님의 자녀 역시 TCK로 자라게 될 텐데, TCK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어떤 부분을 중요시하시는지 궁금해요.




저희 딸 이름은 ‘온’ 이예요. 편안할 온. 나 자신이 편안한 아이가 되길 바라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자존감이 높고 단단한 아이요. TCK로 자라면서 제가 겪었던 고민과 똑같진 않아도 비슷한 고민들을 아이 또한 겪게 되겠지요. 제 어릴 적 고민들을 돌고 돌아 찾은 제 답은 자존감이었어요.


자존감이 높으면, 모든 것의 기둥이 탄탄해지고, 내가 어떤 환경에 있든 나는 원래 있는 그대로 모습의 나라는 사실이 쉽게,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겠죠.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그에 비교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내 본연의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아이가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신감만 높은 것이 아닌 자존감이 높은 아이가 되어 남들 또한 본인과 똑같이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이렇게 키우기 위해 저와 남편 또한 아이의 타고난 성향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고, 또 듬뿍듬뿍 사랑해 줘서 아이가 성장해서 여러 힘든 일을 겪을 때 방황을 하더라도, 언제든지 돌아올 단단한 기둥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또 많이 받은 사랑만큼 본인도 남들을 많이 사랑하는 아이가 되면 좋겠어요. 사랑은 받은 만큼 줄 수 있잖아요.


또한 저는 저희 딸이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아이가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사고가 얼마나 재밌는 것인지 알고 즐기는 아이로요.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뭘 그냥 가르쳐주기보다, 아이가 관심을 조금이라도 보이거나, 겪어보지 못했지만 제가 아는 아이의 성향에 따라 아이가 관심을 보일 것 같은 주제가 있으면 일부러 그 주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던져주고, 질문을 많이 해줘요. 딱 아이가 지금 생각하는 수준보다 조금만 더 높게요. 아이가 스스로 답을 하다 보면, 나중엔 자신의 생각을 키우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겠죠. 최대한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자극을 많이 해 줍니다. 지금은 두 돌 밖에 되지 않기도 하고, 아이가 타고난 성향이 저와 매우 비슷해 아이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사실 아이가 크면 어떻게 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8. 궁극적으로 본인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을 하고 싶나요?


저희 딸 이름에 제 염원이 담겨있죠. 저 또한 나 자신이 편한 사람이요.  내 있는 모습 그대로가 편하고, 밉거나 수치스럽지 않은 사람이요. 나의 못난 점까지 모두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럴 수도 있고, 나의 모든 점을 사랑할 만큼 심하게 못난 모습은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네요.

 

9. TCK로 자란 것의 장점은 무엇이고, 반면 아쉬운 점 혹은 본인이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장점은 문화의 다양성 (간단해 보이지만 이렇게 큰 장점이 또 어디 있나요ㅎ), 다른 문화를 편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자세, 새로 접한 문화를 빠르게 공부할 수 있는 통찰력입니다.


아쉬운 점은 모든 TCK 분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저는 한국사람이 보기엔 미국, 중국, 캐나다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고, 또 미국, 중국, 캐나다 사람이 보기엔 제가 살았던 다른 나라들을 잘 아는 사람이지만, 한국사람이 보기엔 한국을 잘 모르고, 미국, 중국, 캐나다 사람이 보기엔 본 국가를 잘 모르는 사람이에요. 전에는 어느 문화든 100% 그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자국민처럼 모른다는 것이 큰 콤플렉스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서 ‘그렇게 몰라서 뭐? 내가 살아온 환경이 이러니 그럴 수 있지.’라고 받아들이니 편해요. 몰라도 창피하지 않고, 모른다고 편안하게 질문하고, 대신 남들이 갖지 못한 시선에서 좋은 생각이나 내용을 전할 수도 있고요.


또한, 내가 태어난 곳의 사람들에게서 ‘넌 이거 안 겪어봐서 모르잖아, 너는 외국에서 쉽게 편하게 유학하며 컸잖아.’라는 식의 오해를 받는다는 것이요?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제 각기 다른 난제를 마주할 뿐이지 쉬운 삶은 없는데 쉽게 살아왔다고 오해를 받고, 또 그 쉽게 한 유학생활 덕분에 쉽게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어요. 제 능력이 아닌 부모 잘 만나서 금수저 까진 아니지만 은수저의 삶으로 쉽게 쉽게 (그들의 기준에서) 성공을 얻어내는 것이라고 오해받는 것이요. 물론 부모 잘 만나서 여러 나라에서 살 수 있었던 큰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사실이지만, 그곳에서의 삶이 결코 쉬웠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내가 신경 안 쓰면 그만,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그만이라  저에겐 큰 단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장점처럼 보이지만 단점이었던 것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얘는 어디, 어디, 어디서 살고 유학하다가 왔어.’라고 소개가 되면 일종의 면죄부?!? 같은 것이 주어지는 게 있어요. 예를 들면 사회생활 하면서도 회식장소에서 숟가락 젓가락을 놓는다던지, 커피심부름을 시킨다던지 하는 것들을 막내들에게 시키는 곳들도 있는데, 그걸 시키는 사람들이 자신이 자신의 잘못된 점을 알고 저에게 이런 일들을 그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들은 다 쉽게 쉽게 시키면서, ‘얘는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애야.’라는 labelling 하나에 이런 일들에서 모두 예외가 되었어요. 처음에는 안 시키니 편해 아무 생각이 없다가, ‘어? 나는 안 시키는데 다른 사람은 시키네?’가 보이게 되고, 저에게 부당한 일들을 시키다가도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애’라는 말을 듣고 태도가 훨씬 정중하게 변하는 사람들을 보았어요.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것이 제가 남들보다 더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아닌데 말이죠. 편안함에 빠져 진실을 못 보게끔, 제가 저 자신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끔 해이하게 할 때가 있었어요. 상대방 딴에는 저를 더 긍정적이게 봐주는 것이겠지만, 저를 제 자신 진짜의 모습으로 공평하게 평가를 해 주면 좋겠어요. 이런 점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다가 저와 비슷한 직급의 (대부분은 아니지만 소수의) 다른 직원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질 때도 있었어요.  


10. TCK가 취업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다른 문화에 적응해 나가면서 터득했던 것들로 어느 사회에서나 더 빠른 적응을 할 수 있다는 것, 다른 문화는 틀린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수용성, 다른 문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의 중심(코어)은 잃지 않고 필요한 부분들은 재빠르게 맞춰 나갈 수 있는 유동성 등 많은 것 같아요.


11. 현재 TCK로 자라고 있는 10대들에게 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나요?


내가 태어난 곳에서든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든 당연하게 통용되고 있는 문화와 나 자신이 다르다고 해서 주눅 들 필요 없다는 것과 어디든 속하지 않고, 달라서 힘들었던 내 모습이, 미래엔 남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된 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도, 저기도 모두 다 내가 속하지 않는 곳이 아니라, 나는 여기도, 저기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12. TCK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리고 제 이름과도 같은 ㅎ) 거친 돌조각을 품고 열심히 다듬어 만들어지는 진주 같은 존재들 같아요. TCK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고 이해가 쉬웠던 부분들이라 고민이나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들을 문화가 다른 곳에서 살면서 몸으로 부딪히며 고민하고 노력해야 얻어내야 하잖아요. 그래도 힘든 만큼 큰 보상이 주어지는 거죠.



진주의 인터뷰를 하며, 나는 앞으로 나의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꼭  TCK의 삶을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나와 똑같은 경험을 꼭 하지 않고도 어떻게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새로운 곳에 유동적으로 적응하며 교류할 수 있게끔 해줄지, 그 속에서 단단하게 맺힌 자존감으로 잘 클 수 있게 할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쩜 이러한 교육과 양육에 대한 고민은, 내가 TCK의 삶에 대해 계속 탐구하고 공부하면서 함께 성숙해지고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시 한번 인터뷰에 응해준 진주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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