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독일인 차별? 이 더러운 기분을 나만 느낀 게 아니었어.
*이 글의 차별에는 작은 물음표가 붙는다. 뭐 어쨌든, 나는 무언갈 느꼈고 그 찝찝함은 다르게는 설명하기 어렵다.
서머타임이 끝나는 일요일 새벽,
친구들과 할로윈 파티엘 갔다.
파티를 하는 클럽(?) 앞은 비바람이 몰아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이게 뭐지, 싶어 일단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 봤으나 그들도 영문을 모른 채 그저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을 뿐이었다.
나와 일행들은 어찌어찌 사람들 틈에 파묻혀서 밀리면 밀리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다 보니 티켓을 확인하는 곳 앞까지 밀려오게 되었다. 아이고, 드디어 입장이구나(근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사람들이 점점 더 세게 밀기 시작했다.
나는 맨 앞이었기에 티켓 확인을 기다리며 버티고 서 있는 수밖에 없었다. 티켓을 검사하는 사람은 한 명으로, 핸드폰 카메라로 입장 티켓의 QR코드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아주 느긋하게 사람들을 입장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자꾸 내 옆사람들(아마도 독일인들)만 계속 입장을 시키는 게 아닌가? 내 앞뒤로는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다른 백인 여성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했다.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같이 끼어있는 처지에 약간의 동질감이 형성된 우리들은 흔들리는 눈빛과 애매한 표정을 주고받았다.
"쟤들 자꾸 독일인 먼저 입장시키잖아?
우리가 독일인 아니라고 차별하는 거야, 지금???"
내 앞의 여자애가 친구에게 말했다.
"응, 그런 것 같아 -_- 쟤들 뭐야?"
그러고서 화가 난 그 친구는 영어로 욕을 내뱉기 시작했고 다른 친구는 저 자식들이 알아들으면 어떡하냐며 그녀를 말렸다. 나도 그 자식이 이 친구가 영어로 내뱉는 욕설을 알아듣고 그녀에게 위협적인 뭔가를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되던 참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밀릴 수 없는 최전방에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백인+금발+파란 눈의 (아마도 독일인) 체격 좋은 가드는 거칠게 맨 앞 줄 사람들을 뒤로 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사람을 '미는'지라 그의 압력을 직접적으로 받는 사람들은 몹시 아플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나 역시 뒤는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밀리고 앞은 가드 팔뚝에 가로막혀 있었고 아프고 짜증이 났다. 그 가드의 팔뚝이 몸에 배기는 게 몸을 틀었다. 그랬더니 그 자식은 눈을 부라리며 뭐라 뭐라 지껄였다.
지금 내가 글로 묘사하는 상황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전달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순간이 정말 무서웠다. 그 순간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내내 그 공포가 가시지 않고 글로 그 상황을 묘사하는 지금도 몹시 불편하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 자식이 지금 우리(비독일인)를 '차별'하고 있는 게 느껴지는 데다가 폭력적으로 나오기까지 하니. 게다가 그 폭력을 직접 마주하고 나니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많은 공연을 보러 다니며 이런 '끼임'과 '밀림'은 수도 없이 겪었다. 한 콘서트장에서는 정말 실신할 뻔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런 육체적인 고통은 금세 잊힌다. 내 머릿속 깊이 새겨지는 공포는 늘 가드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이었다.
나는 불안장애가 있고 증상이 심해지는 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한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처방받은 비상약을 가지고 다닌다. 요즘 이런 증상들이 심해지는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평소보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걸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질병적인 특성을 제쳐두더라도 이는 분명한 폭력이었다.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압력은 1 기압씩 증가한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갈수록 수압 때문에 우리의 몸은 더 많은 압력을 받고 장기는 쪼그라든다.
거주 외국인 비율이 30%라는 International city 베를린에서조차 '외국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깊은 물속에서 허우적대는듯한 기분이 든다. 백인들의 나라에서 아시아 여성으로 살아가며 위축되어 있는 내게 직접적으로 가해진 성인 남성의 위협을 '그러려니'하고 넘겨버리기엔 아직 공력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