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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Oct 24.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7장: 페미니즘이 내게 남긴 것

페미니즘과 기독교, 페미니즘과 성교육,  그리고...페미니즘과 나

[7장: 페미니즘이 내게 남긴 것]


중,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다시 대학교..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아직도 트랜지션에 대한 얘기가 안나와서 답답하신 분도 있으려나? 그도 그럴것이 나의 정체화에는 페미니즘이 크게 영향을 줬고, 그렇다보니 정체화 얘기를 하기전에 페미니즘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름 읽어줄만한 이야기일거라 믿고 계속 이어가 보겠다.

뭐 그렇게 대학때 페미니즘을 접하고, 인문학 모임이라던가 시민사회단체라던가 하는 활동들도 이것저것 했다. 사실 그전까지는 사회문제나 인권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페미니즘으로 인해 세계관이 바뀐 것이다. 여성인권으로 시작한 관심이 노동권,장애인인권,성소수자인권 등으로 확장되었다. 뭐 특히 성소수자 관련해서는 원래 LGBT 까지밖에 몰랐는데 더 다양한 유형들도 있다는걸 알게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기독교인인데, 내 주변 기독교인들은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없거나 적대적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당시 활동하던 대학 선교단체에서 떠들고 다녔다. 동성애가 교리적으로 죄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같은 사람이고 이웃인데 차별하면 안되는거 아니냐, 사랑으로 포용하는게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 정신 아니냐고 공개적으로 말했다가 ‘왜 그들을 옹호하느냐’라고 비난을 받았다. 나는 2016년도에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봤는데 사실 이전까진 성소수자 이슈에 크게 관심은 없었고 보수적인 기독교 배경에서 신앙생활을 해왔기에 처음엔 다소 낯설고 생소하긴 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고했던건 어떤 사람이던 차별과 혐오로부터 안전해야 한다는 것. 설령 교리적으로 죄에 해당한다고 해도 우선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권리가 보장된 이후에 논의해볼 문제라고 생각했다. 기독교 안에서도 성소수자를 배척하지 않는 기조에 대해서 공부하며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선교단체 간사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성경을 네 멋대로 해석하지마라’ 였다. 나는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여 중년남성이었던 그 간사와 대판 싸웠다. 그는 스스로 ‘십 몇년동안 사역하면서 가장 크게 학생한테  화냈던 일’ 이라고 했고 나도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2주간 신경성 장염을 앓았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성소수자 이슈를 얘기할때는 주로 동성애자를 떠올렸던 것 같다. 동성커플은 결혼을 못한다는게 일단 직관적으로 크게 와닿았고,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행해진다고 하는 이른바 ‘교정강간’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기독교인들이 동성애가 죄라고 그렇게 부르짖지만 이성애자들이 저지르는 죄는 왜 지적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이 때 화가 많이 나있었나보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 나는 이 두 가지 모두가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당시엔 조금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지금은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해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이 두 가지는 당연히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 또한 나의 ‘믿음’이다.      


나는 졸업한 뒤 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성교육 강사로 위촉이 되었다.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강의시연을 했는데 내가 1등을 하게 되었다.  

강사는 대부분 4-50대 여성분들이었으니 20대 남성이었던 나는 완전 신기한 존재였다. 아마 센터에서도 나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위촉장을 준 것일 터였다. 강사단은 초·중·고등학교와 지역아동센터 및 (장애인)주간보호센터 등을 다니며 강의를 했다. 아동청소년 대상이고 워낙 민감한 주제다 보니 강의안 하나하나 만들때마다 고역이었다. 나는 강의에서 최대한 페미니즘을 반영하려고 노력했고, 남학생들은 시큰둥했지만 여학생들은 환호하였다. 초등학생 대상으로는 주로 안전이나 폭력, 불법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중·고등학생 대상으로는 데이트폭력이나 성적자기결정권,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남성과 여성 이항대립이 아니라 남녀간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성별위계였다. 단순히 ‘차이’ 만을 얘기하는 것은 오히려 성별이분법을 공고화시켜 남성권력을 더 두텁게 한다고 보았다. 나는 그놈의 정자와 난자는 이제 그만 만나고, 정말 실생활에서 중요한 생생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이 성관계를 한다고 했을 때 각각 무엇을 고민하고 신경쓸 것인가에 대한 질문.


남성이 저런 고민을 할 때 여성은 성폭력,임신, 사회적 시선에 대해 걱정한다는 내용.  


그때는 힘들긴 했는데 반응은 좋았던 것 같다. 뿌듯.



여기서 나의 얘기가 끝났더라면 나는 그냥 모범적인  ‘남성 페미니스트’,‘퀴어 엘라이’로 남았을까..?

안타깝게도(?) 나의 고민도 그때쯤 시작되었다. 맨 처음에는 성별정체성보다는 성적지향에 대한 고민에 가까웠다. 나는 줄곧 나를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 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당시 나는 여성인 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미묘한 지점이 있었다. 스킨십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보통 사회적으로는 남성이 더 성적 스킨십을 원하는걸로 알려져있는데, 오히려 그 친구는 원하는데 내가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많았다. 사실 나 자신도 당혹스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연애경험이 별로 없었어서 이런 나를 발견할 기회도 잘 없었다. 뭐지..? 왜지..? 나 어디가 문제 있나? 병원 가봐야 되나? 심각하게 혼란스러웠던 와중에, 나를 구원해준 한 단어를 발견했다. ‘무성애자(Asexual)’.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 아, 그럼 나는 무성애자인가? 그렇다는건..나도 퀴어? 흐엑 내가 퀴어라니. 나는 항상 지지하는 입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 자신이 소수자성이 있다니. 안도감과 동시에 살짝 불안감도 들었다. 페미니즘을 알고나서 가부장적이지 않은, 무해한 남성이 되고 싶었는데, 어찌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거 같아서. 그러니까, 전형적인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 에서는 벗어나게 되는거니까. 워낙 오랜시간 정상적인 범주의 남성됨을 동경하며 살았던 맥락 탓에 그런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물론 받아들이고 나서는 마음이 편했다. 억지로 정상성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 그렇게 내 안의 남성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다운 남자가 아니다’에서 ‘나는 남자가 아니다’ 로의 이행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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