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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Oct 26.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9장: 남자는 아닌 무엇

탈출시도

[9장: 남자는 아닌 무엇]


2018년 제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는 퀴어 커뮤니티에 아주 큰 상처를 남겼다. 장소는 동인천 광장이었는데, 기독교 혐오세력들이 전날 새벽부터 우루루 몰려와 진을 치고, 당일에는 아예 광장을 점령하여 축제를 아예 진행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방해했기 때문이다. 퀴어와 앨라이들은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욕설과 저주, 폭력을 감내해야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받았다.

나도 그 당시에 혐오반대 피켓을 들고 참가했다가 혐오세력들에게 빙 둘러싸여 온갖 욕설과 위협을 겪었고, 등짝을 맞기도 했다.

당시 그들이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는 “집에 가!” 였다. 그 짧은 세 글자 안에는 많은 함의가 담겨있었다. 1차적으로는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내 눈에는 띄지마라’는 의미일테고, 인천 수호 운운하는거로 보면 (너희는 인천을 오염시키는 이물질이니) ‘인천이 아닌 다른 곳으로 사라져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를 향해 방언기도하듯 열심히 “주님께로 돌아오세요” 라고 중얼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다들 같은 쪽에서 온 사람들일텐데 누구는 돌아가라 그러고 누구는 돌아오라 그러고 뭐 어쩌라는건가 싶었다. 퀴어는 돌아갈 곳도, 돌아올 곳도 없다. 그저 지금 여기 존재할 뿐이다.             


2019년 제 2회 인천퀴퍼는 모두의 걱정과 달리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그때 화장을 하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채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기사님이 내려준 곳이 퀴퍼장소가 아니라 거기 맞은편인 혐오세력 한복판이었다. 택시에 딱 내리자마자 나에게 꽂히는 무수한 시선들..

빠른걸음으로 지나쳐 가려는데 어떤 사람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를 따라오려고 했다. 어찌나 무섭던지.      

그래도 무사히 도착해서 안전하게 잘 참가하였다. 지나가던 아주머니,아저씨들이 “남자죠? 남잔데 왜 화장했어” 라고 시비를 걸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참가했던 분들 중에서 나를 보고 “예쁘세요” 라고 칭찬해주신 분들도 있었다. 남성으로 보이는 내가 그러고 나왔으니 그분들도 아마 전복적인 해방감 같은걸 느끼셨을거라고 짐작한다.




처음 크로스드레싱 했을때와 인천퀴퍼 때 사진.



그런 시간들을 거치고나서 나는 내가 스스로 더는 남성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바로 ‘나는 여성이다!’ 라고 하기엔 조심스러웠다. 내가 공부한 페미니즘은 나에게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해도를 깊어지게 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검열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계속 고민했다. 계속 고민하고 고민하며 괴로워했다.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 다 ‘여성적’ 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해야되지? 여성됨을 동경하지만 여성이 될 수 없는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 수 없는가? 혼란스러웠고 괴로웠다. 물론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냥 꾸미는 남자 하면 안돼요? 그냥 치마입는 남자 하면 안돼요?” 이런 논리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으나 우선 덮어두겠다. 그때는 본격적으로 성별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자인게 싫었고, 남자로 불리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확실히 남자는 아니다’ 라고 나를 정체화했다.     

정체화를 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당연히 세상이 갑자기 천지개벽하지는 않는다.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은 여전히 철저하게도 성별이분법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어느 둘 중의 한 박스로 나를 욱여넣어야 했다. 나는 남자라는 상자로는 더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데, 여자가 아닌 이상 나는 계속 남자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했다.


사실 내가 느끼는 이 감각을 다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내가 쭉 말해왔던 성별화된 그런 것들- 말,행동,말투,태도,취향,관심사,외형,관계맺기 방식 등- 이 모든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은 다르게 사회화되어 왔고, 내가 지향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쭉 나열해보면 그것들이 다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긴 머리에 하얗고 매끈한 피부, 붉은 입술, 날씬한 몸, 여리여리한 옷차림,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말투와 태도, 감정과 분위기를 세심히 살피는 능력 등등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이 왜 여성의 영역이냐, 안 그런 여자도 많다. 그냥 네가 남자인 채로 그걸 추구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따져물을 사람도 있을거라는걸 안다.



당시 내가 추구하고 지향했던 모습.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이건 논리가 아닌 직관의 영역이라 하나하나 다 설명하고 납득시키기는 어렵다. 마치 시스젠더들에게 “당신은 언제, 왜 남자/여자라고 느꼈나요?” 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하는 것과 같은거다.

‘남성은 이래야 하고 여성은 이래야 한다’ 라는 당위적 명제로 결정하는게 아니라, 이미 사회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좀 더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것 뿐인데 사회에서는 ‘성별을 바꾸네?’ 라고 보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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