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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Nov 10.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20장: 수술 이후

회복되어가는 몸 

[20장: 수술 이후]


수술 후 2주차 즈음부터는 먹고 씻는 것과 근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는 것 까지는 조금 힘들어도 어찌어찌 할 수 있게 되었다. 상시적인 통증은 여전해서 그때까지도 아파서 밤 잠을 설치고는 했다. 가장 큰 제약은 앉는 자세였다. 앉으면 수술부위 부근이 닿으니까..도저히 앉을 수가 없었다. 

집에 있을 때는 주로 누워있었고 밥을 먹을 때는 서서 먹었다. 수술 후 3주 차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통원치료도 끝나가고 몸도 더 나아졌다. 당시 나는 회사에 병가를 내고 있었는데, 처음엔 2주로 신청했었다가 2주로는 도저히 안될거 같아서 1주일을 연장했다.  

그렇게 3주를 쉬고 다시 출근을 했다. 병원에서는 3개월은 쉬라고 했고 보통 몇 달 씩은 쉰다고 했는데 더 오래 쉬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내가 하던 일은 몸 쓰는 일이 아니라 사무직이었기에 그나마 가능한 일이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몸 회복이 다 안되었지만 약간 힘겨워하면서도 어찌어찌 출퇴근은 할 수 있었다. 청바지같은 몸에 붙는 하의는 못 입었고 한동안은 펑퍼짐한 치마만 입고 다녔다.

일할 때는 가운데가 뚫린 도넛 모양의 목베개를 방석삼아 의자에 깔아서 최대한 수술부위가 덜 닿게 하였다. 회사 사람들은 딱히 별다른 말이나 질문은 하지 않았다. 하긴 나 같아도 무언가 물어보기에도 좀 뭐했을 것 같다. 


2주는 너무 짧았다../ 그때 사용했던 목베개. 귀엽고 고마운 녀석.


수술 이후 1개월 차가 넘어가자 통증은 많이 사그라들게 되었다. 사실 통원치료를 다니면서 제일 고통스러웠던건 수술부위에 상처가 벌어지지 말라고 스테플러 심을 박는 것이었다. 다들 한 번 상상해보면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할 것이다. 박을 때도 아팠지만 박힌 채로 생활하는게 곤욕이었다. 심을 뺄 때까지는 아파서 잠을 잘 못 잤다. 그런데 수술 이후 1개월 차를 넘어가며 통원치료 가 끝나고 심도 다 빼게 되어서 너무 홀가분했다. 그렇게 2개월 차를 넘기게 되었고 그 때도 통증은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훨씬 견딜만하게 되었다. 아마 앉는 것도 그때쯤부터는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다만 몸이 회복중인 상태라 많이 움직일 수는 없었고, 조금이라도 무리한 날에는 통증이 심해졌다. 수술 후 3개월 차 까지도 조심조심 몸을 사렸다. 그 이후부터는 거의 다 회복되어 웬만한 일상생활은 문제가 없게 되었다. 수술 전후가 차이가 있다면, 몇 달간 밥을 잘 못 먹어서 체중이 줄었다는 것과, 체력적으로 몸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 하긴 워낙 큰 수술을 겪었으니 그럴만하다. 그렇게 큰 수술과 이후의 회복과정을 모두 잘 견뎌낸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수술 후 한동안은 통증에 시달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에게 성기는 성기가 아니라 수술부위에 불과했다. 아픈채로 병원에 누워있을 당시, 티비에서는 잔인한 성폭행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는데, 그게 굉장히 공포스러웠다. 여성기에 가해지는 무수한 폭력들이 이 사회에 존재하니까. 직접 그 몸을 갖게되고 나니 더 끔찍하게 다가왔다. 나도 이제 강간당할 수 있는 몸이 되었구나라는 감각.

원하는 몸을 갖게 되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게 좀 낯설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워낙 통증이 심하기도 했으니 더 그랬던 것 같다. 물론 내 성기이자 수술부위에 대한 의사의 폭력도 그 공포심을 강화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건 뒤에가서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서는 성취감과 뿌듯함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없애고 싶었던 부위를 없애게 되었으니. 용변볼 때나, 씻을 때나, 옷 입을 때나, 신경쓰이고 걸리적거리던 것이 없어져서 너무나 후련했다. 그 부분에 있어 디스포리아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더 이상 나는 남성의 대표적인 신체적 특성이라 여겨지는 부위를 갖고있지 않다’라는 해방감.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소소한 것이긴 하지만 앉아서 소변볼 때와 다리를 꼬울 때 더 편해졌다. 이 차이는 SRS를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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