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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Jan 11.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44장: 직장생활

먹고살아야하니까

[44장: 직장생활]


트랜스젠더도 회사를 다니는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는 트랜스젠더인 사람이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정식으로 트랜스젠더인권증진협회에 등록할 수 있는데, 매 달 호르몬투약 확인서를 협회에 제출하면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비가 꽤 든든하게 나오기 때문에 굳이 힘들게 회사를 다닐 필요가 없이, 그 돈으로 화장품도 사고 성형도 할 수 있다.     


...물론 뻥이다. 그럴 리가 있겠나? 트랜스젠더가 한국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건 혐오와 차별밖에 없다. 트랜스어쩌고 협회같은 것도 없다.

다시, 트랜스젠더도 회사를 다니는가? 단연코 그렇다. 트랜스젠더인 사람도 당연히 생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들은 다 술집이나 유흥업소 같은 곳에서만 일한다고 생각하고 불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에 대해 우선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해두고 싶은 것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하던지 동등하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음지’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모욕할 권리는 당신에게 없다.

술집이나 유흥업소가 아닌 일터에서도 트랜스젠더는 존재한다. 몰랐다면, 못봤다면 그저 당신이 알아채지 못했을 뿐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도 존재한다. 트랜스젠더도 보통의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자고 공부하고 노동한다.


예..트젠들도 먹고살 걱정 많이해요..당신들보다 더요.


나같은 경우는 장애인과 관련된 한 사회복지기관에서 근무를 했었다. 입사할 때는 남자로 들어가서 남자가 하는 업무(남성장애인을 돌보는 업무)를 맡았었는데, 트랜지션을 시작하고 나니까 고민이 되었다. 남성이 하는 업무를 하고있는 내가 커밍아웃을 하게되면 나는 이 곳을 더 못 다니게 되지 않을까? 기관 입장에서도 껄끄러운 일 만들기 싫어서 그냥 나를 재계약 안 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게 되더라도 언제까지 나를 숨길수는 없었다.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다고 운을 띄우고는, 대표와 사무국장 앞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사실 그동안 병원 다녔던 것도 호르몬치료 때문이고, 앞으로 수술계획도 있다고. 담담하게 얘기하려고 했으나 말을 하고나니 울음이 터졌다. 내가 트랜스젠더가 아니었더라면 앞으로도 계속 남자로서 근무하면 되는건데, 괜히 내가 평범하지 못해서 직장에서도 골칫거리와 민폐가 되는 것 같았다.

‘평범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울먹이는 내 앞에서, 지체장애인이었던 대표는 말했다.


“연수씨, 평범하지 못해서 죄송할게 어딨어요. 그렇게치면 저도 장애인이라서 평범하지 못한데 뭐 어때요.”


그 한 마디로 마음이 놓였고, 나는 무사히 재계약도 되었다. 그렇게 나는 죄송하지 않을 권리를 배웠다.      

그 날 이후로 다른 직장동료들한테도 커밍아웃을 하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치마를 입고 출근하거나 여자화장실을 써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존중이라는건 항상 관심이나 배려의 형태로만 나타나는게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의 무관심으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하던 업무는 성별과 상관없는 다른 업무로 인사이동이 되었다. 나의 정체성을 드러내고도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이 마음의 안정감을 주었다.     


우리 사회 일터의 대부분이 성별이분법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만큼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직장은 아주아주 드물고 귀하다. 따라서 나에 대해 그만큼 수용했던 그 직장은 사회 평균에 비하면 꽤나 괜찮은 곳이었고 그것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냥 편했던 것은 아니다. 직장동료들 이외에 일을 하며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의 온갖 무례한 말들과 수군거림을 감당하는건 오로지 나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인권단체가 아닌 이상 그런 문제들에 있어 내가 보호받기를 바라는건 욕심일까 싶어서 혼자 꾹꾹 참고 넘겼다.

직장동료들 또한 아쉬운건 있었다. 여성직원들 같은 경우, 나를 여성으로 받아들이긴 했으나 그래서 그런지 나의 여셩성 수행을 종종 지적하고는 했었다. “연수씨 그 원피스는 안 어울린다”, “머리를 그렇게 묶으면 안 된다”, “치마입고 그렇게 성큼성큼 걸으니 남자가 여장한 것 같다” 등등. 솔직히 속으로는 매우 무례한 말들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여장 운운하는건 혐오발언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여자답게 걷는다는건 무엇인지? ‘여자 선배’로서 가르침을 주겠다는 의도로 던지는 말들이 나에게는 상처였다. 하지만 여자로서 사는걸 배워야 하는건 맞으니 선배들의 지적에 문제제기를 하지는 못했다. 그냥 알려줘서 감사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남성직원들 같은 경우, 종종 혹은 자주, 나를 여성으로 대하는 데에 실패했다. 여성 입장에서는 나를 그냥 ‘동성’으로서 조금 더 친근하게 대하면 되는 것일 수 있으나, 남성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나를 갑자기 ‘이성’으로 대해야 하니 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직원들은 나를 종종 남자로 지칭하거나 성별호칭을 써야할 때 얼버무린다던가 하는 실수를 나에게 저지르고는 했다. 그것 또한 역시 상처였지만 내가 입사할 때는 남성이었으니 어려웠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직장생활을 하며 감사했던 일 뿐 아니라 화나거나 힘들었던 일을 참 많이도 겪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어찌어찌 잘 견뎠다. 그리고 그것들을 견디게 해준 원동력은, 바로 나의 어떤 결심이다.

트랜스젠더도 당신들과 다를 바 없는 동등한 이웃이라는 것, 당신들과 똑같이 한 시민이자 국민으로서 노동하는 존재라는 것. 

사회복지기관의 한 직원으로 일하며 엄연히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내가 트랜스젠더의 대표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인생에서 내가 처음만난 트랜스젠더라면,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순간도, 이 땅에 숨쉬고 살아가는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이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노동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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