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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Jan 15.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45장: 가정생활

어떠냐고 물으신다면

[45장: 가정생활]



내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떠세요?” 이다.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약간의 긴장과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트랜스젠더인 사람이 가족과의 관계가 좋기는 어려울거라고 생각해서 그런것일테다. 물론 그건 사실이긴 하다. 자기 자식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는 잘 없을테니 말이다. 동성애자의 경우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밝히고 받아들여지는게 당연히 훨씬 편하겠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밝힐 필요는 없는거니까. 사실 이성애자들도 자기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누구랑 연애하는지 굳이 일일이 부모한테 허락받지는 않는것처럼 동성애자들도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런데 트랜스젠더는 상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왜냐고? 트랜지션을 시작하면 외형의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상황이야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mtf나 ftm은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외부적 변화가 크니까. 내가 27장에서 이야기했듯이 정체화 과정에서 부모와의 관계에 큰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일수도 있다. 트랜스젠더 중에서는 더 큰 폭력을 당하거나 의절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나쁘지는 않다고 대답한다. 커밍아웃을 하고 (의료적)트랜지션을 다 마쳤음에도 쫓겨나지 않고 여전히 같은 집에서 살고있긴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엄마와는 필요한 대화만 하고 아빠와는 아예 서로 없는사람 취급하기 때문에 사이가 딱히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가족관계라는건 원체 복잡해서 한 두가지 이슈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울 것이다. 나 역시도 트랜스젠더 이슈만으로는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얘기하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주요한 한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부친에게 당했던 가정폭력 이슈가 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언어적 학대를 당하며 자랐다. 내 기억속의 부친은 어쩐지 항상 화가 나있는 상태였고 항상 누군가를 욕하고 있었는데 주로 회사사람, 주변사람, 정치인, 아니면 거의 내 욕이었다. 학교성적 뿐만 아니라 부친은 나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마음에 안들어 했다. 라면을 처음 끓이던 날, 신발끈을 처음 묶어보던 날, 걸레를 처음 빨아보던 날, 당연히 서투를 수 밖에 없던 것들에 대해서도 부친은 나를 용납하지 못했고, 내가 무언가를 모르거나 잘 못할 때마다 알려주기는커녕 “병신같은게 이런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느냐”는 식으로 면박을 주었다. 부친은 매일같이 다른 아이들과 나를 비교하며 너는 대체 잘하는게 뭐냐는 둥, 걔가 100점이면 너는 0점이다 라는 둥의 말을 하였는데 당연히 그런말을 듣는 어린아이가 집에서는 표정이 밝을수가 없지 않은가. 근데 그러면 또 그런데로 욕을 먹었다. 애새끼가 싸가지가 없다, 부모가 쎄빠지게 일해서 지를 먹여살려주는데 고마움도 모르고 불평불만만 한다, 이런 새끼는 어디 고아원가서 두들겨 맞으면서 자라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심리검사결과에서도 부친에 대한 증오가 노골적으로 묻어나왔다.



어느 날은 가족끼리 어디 갈 일이 있어 집을 나섰는데, 부친이 내가 걷는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애가 걷는게 이상하다, 절뚝거리면서 걷는다”고 했다. 밖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고 엄마도 이상한걸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듣고나니 신경이 쓰였다. 내 걸음걸이가 어떤지를 떠나서, 부친이 나를 쳐다볼때는 이렇듯 좋은 말이 나온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는 부친이 항상 무섭고 같이 있으면 주눅이 들었다. 내가 들었던 가장 심한 말은  

 “애가 좀 모자라다”, “장애가 있는거 같다”, “애가 잘못된 거 같다”, “네가 내 자식인게 수치스럽다.” 는 말이었다. 최소 15년 이상 지난 일인데도 아직도 내 영혼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고 아마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든 부친한테서 들었던 이러한 말들의 기억이 따라다녔다. 내가 무언가를 잘 못하고 서투른 행동을 할 때마다 부친의 말이 떠오르며 ‘내가 정말 어디가 잘못되어서, 어디가 모자라서, 장애가 있어서 못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웠다. 실제로 나는 이해가 좀 느리거나 동작이 굼뜬 부분이 있는건 맞긴해서, 음식점 서빙알바를 했을때나 군대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을 때 잘 해내지 못해서 많이 혼나긴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보다 연장자나 상급자가 조금만 나를 지적해도, 설령 정당하고 부드러운 지적이라고 해도 부친의 트라우마가 살아나서 고통스러웠다. 내 행동이 지적받는게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이 트리거가 눌릴 때마다 나는 사회생활에서 큰 지장이 있었고,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둔 적도 있다. 돌이켜보면 상대가 남성, 특히 중년남성일 경우가 제일 치명적이었다. 가정에서 오는 경험이라는게 이렇게 평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것 같다.


여러 경험들과 심리상담으로 단단해진 나는 결국 부친과의 투쟁 끝에 사과를 받아내긴 했다. 그런다고 없던 일이 되는것은 아니지만 한바탕 욕지거리를 하니 속이 시원해지긴 했다.

물론 부친은 내가 트랜스젠더라는건 아마 평생 받아들이지 못할것이고 나도 그걸 바라지는 않는다.

지금의 부친은 나를 '잘못 키워서' 내가 '잘못됐다' 라고 굳게 믿고있다.

앞에는 맞지만 뒤에는 틀렸다. 그 모진 학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남았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잘못된게 아니다. 한때는 내 존재에 죄책감을 품었지만 이제는 그 죄책감이 내 몫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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