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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Oct 16.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1장: 어린 시절

기집애 같았던 남자아이



[1장: 어린 시절]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한다면 왠지 어린시절부터 해야될 것 같다.

트랜스젠더에 관한 정형화된 서사가 있지 않나. 어렸을때부터 파란색보다는 분홍색을 좋아했고, 로보트보다는 인형놀이를 좋아했으며, 엄마의 화장품이나 치마에 관심이 많았다 등등..

이런 클리셰가 계속하여 재생산되는 이유 중 하나는 트랜스젠더가 정신과 진단을 받을 때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 검사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관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어렸을때부터 성별불쾌감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므로,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여 진단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트랜스젠더임을 인정받기 위해 사회적 성 고정관념에 들어맞는 답변을 해야한다는 압박이 있다.


정신과 진단에 관한 이야기는 차차 자세히 하도록 하고, 우선 나의 어린시절부터 이야기해보겠다.     

어렸을 때의 나는 무척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나는 남자아이들 무리에서 자주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활발하고 짓궂은 또래 남아들 속에서 나는 너무 여리고 잘 우는, ‘기집애’ 같은 아이였으니까.

어느 정도였냐면 놀이터에서 놀다가 한 남자애가 갑자기 내 바지를 내린 적이 있다. 다른 아이들도 있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어지간히 만만했나보다.

나는 되돌려주지도, 화내지도 못했다. 그저 조용히 다시 바지를 올리는 것 외에는. 그땐 그냥 어떻게 화내야 되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놀림당하던 나는 “아 나는 남잔데 자꾸 여자애같다고 놀림받아서 너무 속상하다.”  

라고 일기에 적었다.

그런데 당시 담임선생이 그때의 내 일기를 반 아이들 다 있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읽어줘버렸다. 덕분에 나는 또다시 놀림거리가 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나의 어릴적 사진




학년이 올라갈수록 또래 무리는 더욱 더 성별화가 되어갔고, 나는 남자아이 무리와 어울리기 위해서, 남성집단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억지로 남성다움을 추구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여자애같다고 놀림받았던 모습이 좀 더 진정하고 자연스러운 나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엔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고민하지 못하였다. 그저 또래 남자애들과 잘 어울리고 싶었고 남자애들 중에서 힘세고 운동잘하고 ‘남자다운’ 애들을 동경했다. 멋지다고 생각했고 나도 닮고싶었다.

나는 남자애들 중에서는 체구가 작은 편이었고 힘이 세거나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격이 엄청 활발하거나 거칠고 대범하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스스로 콤플렉스를 느껴서 더욱더 억지로 남성성을 추구했고,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남자애들은 은근히 속으로 무시했다. 어떻게든 진정한 ‘남자’가 되고싶었다.     

아니 얼마나 여자가 되고싶었는지가 아니라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있으니 읽는 사람들은 조금 황당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먼 길을 돌고돌아 나를 찾았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 과정을 천천히 풀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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