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수 Mar 11.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53장: 여성의 날을 맞이하며

여성노동자, 여/성노동자, 트랜스/여성노동자

[53장: 여성의 날을 맞이하며]



매년 3월 8일은 국제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의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노동자를 기리며 시위를 벌인 데서 시작한 것으로, 여성의 날의 상징인 빵과 장미는 각각 생존권과 참정권을 의미한다. 연마다 세계적으로 기념하고 있는 중요한 날이며, 특히나 여성운동에서는 그 상징성이 매우 크다. 국가마다 정도나 특성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만큼 여성의 날의 정신은 계승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비장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성의 날은 ‘페미니스트들의 명절’ 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즐거운 날이기도 하다. 해마다 여성단체들이 모여서 행사를 준비하고, 부스를 차려 단체를 홍보하고, 활동가들끼리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투쟁심과 연대감에 고양되기도 한다. 364일이 남자들의 날이니까, 하루 정도는 이런 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24년 여성의 날에는 여성파업 결의대회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아주 극심한 나라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정당한 노동권을 주장하다가 해고를 당한다. 거기에 더해 여성노동자는 노동자라는 위치와 여성이라는 위치가 교차하여 복합적인 억압을 겪고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극심하고, 일터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과 성폭력도 심각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동안 여성노동자 상담은 총 3,037건이 있었는데, 그 중 직장 내 성희롱이 31.6%(957건)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애인 유무나 결혼 계획 등을 묻는 성차별적 면접이나 상사의 지위를 이용하여 교제를 요구하는 이른바 ‘구애 갑질’, 그리고 가사노동자나 돌봄노동자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과 열악한 처우 등 여성노동자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노동권 문제들이 많다.      

남성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노동현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계속하여 싸워왔다. 이번 여성파업 결의대회도 그 투쟁의 연장선이자, 그 운동의 역량이 결집된 결과일 것이었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로 대표되던 노동에 대한 관념을 넘어서서, 주변화되고 평가절하되던 여성들의 노동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자리에 발언을 요청받았다. 성별이분법에 반대하며, 다양한 성별정체성을 부정하는 가부장제에 저항하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노동(자)에 대한 목소리도 듣고싶다는 취지였다. 나는 기꺼이 수락하며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발언을 준비해갔다.

트랜스젠더 노동자 뿐 아니라 성노동자에 대한 지지발언도 하고싶었다.      

발언문 전체를 공유한다.  



<2024 여성파업 결의대회> 현장 사진


안녕하세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인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연수라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여가부를 폐지하겠다' 라는 말을 하며 여성폭력 피해지원 예산 삭감과 고용평등상담실 예산 삭감을 일삼으며 여성노동자를 더욱더 벼랑끝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노동자는 남성만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노동자가 남성인게 너무나 당연했고 여성은 노동하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성들은 어디서나 노동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싸워왔습니다. 노동자 중에 여성도 있다는 것을, 여성도 노동을 한다는 것을 여성노동자들이 피가 터지도록 외쳐와서 지금의 여성파업 결의대회에 이르렀습니다.   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하는 노동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여성노동자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간 질문을 해야합니다. 여성이란 무엇인가요? 우리는 누구를 여성이라 부르고 있나요?

저는 태어났을때 남성으로 지정받았지만 지금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회에서는 저같은 사람을 트랜스젠더라고 부릅니다. 여성 중에는 저와같은 트랜스여성도 있는 것입니다.     
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것처럼, 트랜스여성은 끊임없이 여성의 범주에서 배제되고, 탈락되며,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도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숨쉬고, 밥먹고, 잠자고, 노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들의 일터에도 트랜스여성이, 트랜스남성이, 그리고 논바이너리인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부장제 사회는,  아직도 일터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낡은 기준을 들이대며 트랜스젠더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박탈시키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도 살고싶습니다. 트랜스젠더도 살기위해 노동을 합니다. 수술비를 벌기위해, 생활비를 벌기위해 , 혹은 더 나은 조건의 삶을 살기 위해 '음지' 라고 불리는 일터에서 성노동을 하기도 합니다.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들이 이래서 더럽다고 욕을 합니다. 하지만 성노동은 더러운 일이 아닙니다. 유흥업소라고 불리는 곳도, 집결지라고 불리는 곳도 누군가에겐 삶을 지탱하고 있는 일터입니다. 함부로 더럽다고 욕하지 마십시오.

노동운동에서는 노동자는 하나다. 노동자는 단결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합니다. 여성노동자 뿐만 아니라 성별이분법에서 배제된 트랜스젠더 노동자와,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는, 용주골에서 쫓겨나고 있는 성노동자들과도 우리는 함께 가야 합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노동을 하는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 지금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저는 한 명의 페미니스트로서,  그리고 트랜스여성으로서 앞으로도 모든 여성노동자와 억압받는 소수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연대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해방을 위해 앞으로도 함께 투쟁합시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트랜지션 일기> 52장: '성전환'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