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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Oct 19.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4장: 군대 시절

그런 남자는 없다

[4장: 군대 시절]


한창 남성성 덕질을 하던 시절의 나는 ‘남자들만의 무엇’ 에 굉장히 환상이 심했다. 그러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면 과묵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사소한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말보단 행동으로 큰 일에 앞장서며 약자를 보호하는?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성을 동경했다. 그리고 군대는 그런 남자들끼리 모여서 고된 훈련과 고난을 겪으며 같이 성장하고 전우애가 싹트는..뭐.. 아 이렇게 적고보니까 굉장히 오글거린다. 소년만화에 너무 심취해있었나? 하긴 만화중에서 <드래곤볼>을 제일 좋아하긴 했다. 등장인물들이 사소한 친목이나 사리사욕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더 강해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전투나 수련에 매진하는게 멋져보였다. 나도 현실에서 그런걸 원했나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산악부에서 나의 한계와 마주했듯, 군복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5주간의 훈련소 과정부터가 버거웠다. 체력적인 부분이야 어찌어찌 따라갔지만, 군대가 요구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새로운 무언가를 알려줄 때 소위 ‘빠릿빠릿’ 하게 알아듣고 움직여야 하는데 불행히도 난 그렇지 못했다. 이거는 젠더와는 조금 다른 얘기지만 나는 원래부터가 이해가 느리고 동작도 느린 사람이라 서빙알바 같은걸 하면 혼나고 짤리기 일쑤였다. 그런 사람이 군대를 갔으니 적응을 못하지. 훈련소에서는 고문관 취급을 받았다.     



군대 시절에 썼던 일기장. 많은 내용이 적혀있는데 차마 다시 읽어보기가 조금 겁난다.



훈련소 기간이 끝난후 자대생활, 그러니까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내가 좀전에 말했던 ‘남자들만의 무엇’ 이라는 환상은 이 기간을 보내며 와장창 아주 산산조각 먼지가 되어서 저 머나먼 나메크 별로 날아갔다. 군생활이 힘들것이라는건 당연히 각오한 바, 그 힘든 와중에도 무언가가 있을줄 알았다. 가장 크게 실망한 것은, 내가 동경해왔던 과묵하고 무게감있는 남자들이 없었다. 어쩜 그렇게 다들 여자에 미쳐있는지. 여자얘기를 안하는 남자가 없었다. 그것도 아주 가볍고 천박한 방식으로. 나는 자기 일 묵묵히 하고 여자에 관심없는 (만화 원피스의) 조로 같은 남자를 원했단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도 이미 퀴어의 싹이 있었나(?)

또 한 가지 크게 실망한 점은, 이것도 비슷한 결일수 있는데, 다들 결코 과묵하지 않고 결코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열이 있다보니 윗사람은 아랫사람 갈구는거 좋아하고, 근데 앞에서 갈구는 거로 끝나는것도 아니고 뒤에서도 엄청 얘기한다. 후임 중에 누구는 A급(잘하는 후임)이고 누구는 폐급(못하는 후임)이라느니 하며 엄청 씹어돌린다. 나는 남자들끼리는 앞에서 시원하게 털고 뒷끝은 없는줄 알았지 뭐람. 정말 오만가지 정치질이 난무했다.     


뭐 실망 정도면 좋을텐데, 많은 남성들이 그렇듯 나도 군 내에서 많은 부조리와 폭력을 겪었다.

욕설이나 인신모독성 발언같은거야 워낙 일상적이니 그렇다치고, 나같은 경우는 선임을 고발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군생활이 고달파졌다. 어떤 한 선임의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부조리한 언행이 있었고, 생활관의 다른 선임들도 다들 시달리고 있었기에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조리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다른 선임들은 빠지고 어찌어찌 나만 찌른 격이 되어버렸다. 고발대상이 된 선임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게됐고 이 소문이 퍼져서 나는 ‘고자질쟁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남은 군생활동안 나는 ‘그렇게 쉽게 찌르는 사람 아닙니다’ 라는걸 증명하기 위해 짬이 높아져도 이병취급을 받는 것을 다 감수해야 했다. 선임이 시키면 언제든 티비에 나오는 걸그룹 댄스를 따라춘다던지, 자고있는 나를 라이터불로 다리털을 지져서 깨우는것도 참는다던지 등등. 뭐 당한거야 한두가지겠는가. 그 경험들은 한때 ‘남성’이 되고자 했던 나의 지위를 추락시켰다. 남성집단에서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줬다. 나는 그때 비(非)남성, 혹은 여성의 위치에 놓여있었다. 그 때의 경험이 향후 내가 페미니즘에 다가서는 데에 큰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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