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자신이 의지에 따라 이기적으로도 혹은 이타적으로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은 이타적인 사람에 의해 변해왔지만 세상에는 이타적인 사람보다는 이기적인 사람이 더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기적인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자괴감 때문에 옳지 않은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양심의 목소리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들에게 절망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키에르케고르가 쓴 '죽음에 이르는 병'은 그런 면에서 매우 좋은 교재입니다.
그가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권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병의 부제는 ‘건전한 덕과 각성을 위한 한 그리스도교적 심리학적 논술’입니다.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이 장의 주제와 상당 부분 유사합니다.
키에르케고르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바로 주체적인 삶, 즉 '실존'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가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소중한 진리를 발견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삶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떠올리도록 만듭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그다지 주체적인 편이 못됩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서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에 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아무런 희망 없이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삶의 목적을 둔다면 그 한순간 한순간 이 살아있는 시체로서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돈이 많고 적음 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하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낸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요. 키에르케고르가 주장한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살아 있는 채로 비참한 죽음을 기다리는 짓은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우리가 경험하게 될 절망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절망이 삶에서 도움이 되려면 우리는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병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동물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절망이란 최대의 불행이자 비참함일 뿐 아니라 타락인 것이다. 절망은 전적으로 변증법적이기 때문에 단 한 번이라고 여기에 걸리지 않는 것 또한 최대의 불행이다. 그러나 그 병에 걸렸더라도 치유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병은 또한 가장 위험한 병이 된다”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절망을 극복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과 양심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소리가 만약 윤리적으로 금이 없고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가 이에 따르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절망을 이겨낸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자신의 목표와 이를 이뤄내기 위한 힘 속에 스스로를 깊이 뿌리내리기 때문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이기는 일을 '그리스도의 지복을 회복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없는 분들을 위해서 이 말을 조금 바꿔보면 '절망을 이기는 일은 삶의 목적을 찾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굳건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일은 모든 분들이 절망을 이기고 삶의 목적을 찾으며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셨으면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졌을 때 세상은 더욱 살 맛나는 곳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