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가와 애서가
장서가와 애서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둘 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속에 내포된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의 두 단어를 모두 좋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단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장서가는 책을 수집하는 사람이고 애서가는 책에 있는 지식을 수집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의 지식수준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반만 맞는 말입니다.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이라는 책을 보면 위에서 언급한 장서가와 애서가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저자인 톰 라비는 지독한 장서가였고 그렇기에 책을 사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았습니다. 똑같은 전집을 3-4세트나 사고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책을 사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이 사람의 책에 대한 집착은 놀라운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 얘기하는 책 중독자는 명품 쇼핑족에 가깝습니다. 명품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카드 할부를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사고 보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책 중독자는 단지 중독 대상이 명품에서 책이라는 차이점밖에는 없습니다. 책 판매량이 적은 한국에서는 사실 이런 사람들이 많지 않겠지만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은 한 번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지식을 축적하여 삶에서 써먹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저는 주변에서 책을 사기만 하고 보지도 않았는데도 지식이 생겼다고 믿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참 애석한 일입니다. 책을 많이 사지 않더라도 제대로 읽은 책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런 경우 사람을 바꾼 원동력은 책의 수량이 아니라 책 안에 담긴 좋은 내용입니다. 어느 순간 읽은 책의 한 문장으로 인해 인생의 목적이 생기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죠.
제가 즐기는 취미인 악기 연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사실 악기를 만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개인의 실력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악기의 성능을 탓합니다. 연주를 잘하는 사람들은 악기가 좋지 않아도 그 가운데서 최고의 소리를 뽑아낼 수 있죠. 이 사례를 앞서 말씀드렸던 책에 비교한다면 이해가 쉬우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순히 좋은 책을 모으는 것보다는 책을 읽으며 나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과거의 유산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 자신을 위한 투자에 인색한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책 사는 돈을 아까워하고 겉을 꾸미는데 들이는 돈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꾸미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겉만 아름답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움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겉과 속이 모두 꽉 차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존재로 자신을 어필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쓰임 받을 곳이 줄어든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나이가 많던 많지 않던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조합해내는 창조력까지 갖춘다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무기 하나를 더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장서가가 되지 말고 애서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습니다. 다만 우리의 눈에 띄지 않은 책이 있을 뿐입니다. 그걸 발견하는 일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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