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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르마이 Sep 23. 2023

3-1. 쌓이면 폭발하고 고이면 늪이 된다

물줄기 / 발산 / 고립 / 폭발

네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폭발할 지경이라도, 사람들은 너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있던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_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명상록)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를 상상해 보라. 솟아오르는 물줄기는 막힘없이 지표면을 뚫고 올라와 힘차게 분출한다. 수원이 되어 실개천이 된다. 실개천은 강으로, 강에 모인 물은 바다에 이른다.


만약 분출하는 물줄기 위에 바위가 얹혀 있으면 어떻게 될까? 압력이 쌓여서 결국은 바위를 큰 힘으로 밀어내거나, 밀어내지 못하면 우회로를 찾아서 약한 곳을 뚫어서 분출한다.


적절한 분출구를 찾지 못하면, 물줄기 주위의 지반을 무르게 해서 어쩌면 지반이 무너지거나 흐르지 못하고 고여서 늪지대되기도 한다,

 

감정은 분출해야 한다

 

감정도 이런 물줄기와 같다. 적절한 순간에 적절하게 분출되어야 한다. 적절하게 분출한 경험이 없다면, 분출하기 위한 압력을 잃어버려서 분출을 못하거나, 분출이 제어되지 않아 원하지 않는 순간에 갑자기 분출하는 문제가 생긴다. 


유년기에는 감정표현을 억압당한다. "왜 울어?", "뚝 그쳐!", "계속 징징대면 혼난다!" 아이가 감표출을 자제하지 않으면 체벌을 받기도 한다. 심하면 감정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된다. 

 

물줄기 위에 놓인 바위처럼, 우리 감정 위에 바위가 놓인다. 감정은 엉뚱한 우회로를 찾거나, 억눌린 감정이 지속되면 우울감이라는 늪지를 만든다. 

 

감정은 호르몬의 작용이다. 신호를 전달하는 호르몬이 신경계를 자극하거나 긴장상태를 만들어서 신체가 반응하게 한다. 긴장 상태가 전달되기만 하고 해소되지 않는다면 땅속에서 솟아나는 물줄기가 막힌 것처럼 몸과 마음이 막히게 된다. 막힌 것은 어딘가에는 쌓인다. 

 

감정의 발산을 억압당해서 그 방법을 잃어버린 경우를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고 한다. 화나 분노처럼 참아서 좋은 감정이 있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지나치게 억압하다가는 기쁨, 슬픔, 즐거움과 같은 감정들까지 표현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감정 표현이 자유롭지 않은 삶은 건조하다. 의욕을 잃는다. 감정이 쌓이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폭발한다.

 



억압과 고립이 만든 감정의 독

 

감정표현은 유년기부터 적절하게 발산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혀야 한다. 유년기에 감정 표현의 상호작용을 하지 못했다면 감정을 쌓아두는 것이 습관이 된다.


감정이 쌓이면 폭발한다는 여러분에게 이해시키려면 내가 아는 감정에 대한 미천한 지식으로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낀다.

내가 설명할 유일한 방법은 지극히 편협적이지만 나의 사례를 들는 것이라는 결론은 내렸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내 느낌 내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힘들었다. 표현은 생각이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와 사적인 대화를 즐기지 못했다. 회사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잘하고 싶었다. 말을 잘하면 남들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친해지고 어울릴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스피치 학원에 다녔다. 책을 많이 읽으려고 무던히 애썼다. 독서 모임에 나가서 내 생각을 표현하려고 했다. 스피치 모임에서 억지로 말해야 하는 상황에 나를 밀어 넣었다. 그런데 좀처럼 나의 대화 실력은 늘지 않았다. 감정 문제를 제쳐두고 대화 스킬을 배워서는 소용없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반면 업무적인 대화는 논리를 세워서 어느 정도 해냈다. 한두 시간 강의도 충분히 준비만 하면 돼서 그럭저럭 해냈다. 강의는 말주변이 없어 힘겨웠지만, 강의 기회를 피하지는 않았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할 기회가 생기면 최대한 만들어 연습했다. 사적인 대화에서는 언제나 힘들었다. 어느 순간 나는 '혼자여도 괜찮다'라고 다독이며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앉았다.

 



감정이 폭발하다

 

어떤 순간에 감정이 분노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동안 일 중독자로 살았다. 회사라는 조직에서는 일 속으로 도피하기 좋았다.

능력은 부족했지만, 남들보다 1.5배나 2배 정도 일하는 시간을 더 투자하면 능력 부족은 만회가 되었다. 그 시간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그렇게 일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인정과 보상을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도 감정적 현실에서 도피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일 속으로 도피하고 있었다. 말수 없이 묵묵하게 일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일까지도 도맡아 처리해 주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 했다. 나는 감정을 표현할 수도 없었고 표현하지도 않았다. 누군가 일을 부탁하면 내 일보다 우선으로 처리해야 했다. 그렇게 감정을 억압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하곤 했다.

 

누군가가 나를 부당하게 대한다고 느낄 때 일시에 감정이 폭발해서 분노에 못 이겨 크게 화를 냈다. 다행히 그렇게 표출하는 것은 아주 드물었고 평소 내가 묵묵히 일한다는 걸 알기에 그런 사건은 별 탈 없이 넘어갔다.

 

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무시당한다는 감정 들었을 때 심각하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 횟수는 적었을지라도, 한 번 폭발할 땐 이성을 잃을 정도로 강렬했다. 아내와 아이들과는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 정도의 벽이 생겼다. 두세 번 그랬다. 그 횟수에 무관하게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 분노 표출은 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던 듯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다시 감정표현을 전혀 못 하는 또 그 로봇과 같은 생활로 돌아갔다. 집에서는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는 나사 풀린 로봇, 회사에서는 절대 실수하지 않으려는 오로지 업무적으로만 사람을 대하는 일하는 로봇이었다.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오면서 깨닫는다. 감정은 표현되어야 한다고. 나에겐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글로 표현하기' 아주 심각한 분노가 표출되려는 순간에 앉아서 종이 위에 그 감정을 심각하게 휘갈겨 쓴 경험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매일 새벽 일기 쓰기로, 또 가끔은 책을 읽은 느낌을 쓰는 것으로 내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표출되지 않은 감정은 반드시 쌓인다. 이것이 감정이 독성에 물든 한 가지 형태이다.

감정은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방법으로 발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분출하거나 폭발하게 된다. 것이 자연의 이치인 듯하다. 감정을 풀어보자.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방법으로.


노파심에 한마디 덧붙인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섣부른 기대는 삼가길 당부드린다.

감정을 발산하고 푸는 절대적인 방법은 없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각자의 몫이다. 유전자가 결정해 준 개인의 성향과 살아온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내가 겪은 감정적 문제와 극복한 경험에서 얻은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해서 여러분에게 약간의 힌트를 제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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