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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르마이 Oct 08. 2023

10. (책임) 지켜봐야 할 때, 나서야 할 때

결정적인 순간인가

내가 만일 그런 상황이면 어떻게 행동할까?  _괴짜 경제학(스티븐 래빗) 


 

누구나 아버지로서 처음 맞는 순간이 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시행착오를 덜 겪으려면 앞서 그 길을 간 아버지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쌍둥이가 세 살 무렵, 그 당시 스타 PD였던 주철환 PD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의 주제는 "친구 같은 아버지"입니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아버지 모델'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엄하고 무뚝뚝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보다는 나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방법은 몰랐습니다. 제가 아는 아버지의 역할은 제가 겪은 아버지가 거의 전부였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물심양면으로 평생 제게 많은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아버지 상은 아닙니다.


제가 원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쌍둥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주철환 PD에게 배우려고 했습니다. 주철환 PD는 아들과 심지어 아들의 친구들과도 친구처럼 지낸다는 인상적인 강연을 했습니다. 제가 배우고 싶지만, 배울 수 없는 수준의 친근한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ㅣ 모른 척해야 할 때


그 강연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주철환 PD가 예로든 '아메리칸 파이'라는 미국 영화의 한 장면에 얽힌 에피소드입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청소년인 아들이 파이를 이용해서 난처한 행위를 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이럴 때 당신이라면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영화 속 아버지는 "나도 그랬지"라고 단 한마디를 하고 넘어갑니다.


성인인 아버지에게는 어린아이의 모든 것이 어리숙하게 보입니다. 때론 당황스럽고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버지는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조언, 잔소리 혹은 심한 질책을 합니다. 보호자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그런데 보호자가 과민하거나 강박적인 성향이라면 아이에게 큰 상처를 줍니다.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맞추고 싶어도 아직 어려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는 판단력이나 자제력이 성인에 훨씬 못 미치니 당연합니다.


인간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부모도 인간입니다. 아이의 입장보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를 대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나도 그랬지'는 이런 갈등을 줄이는 마법의 단어입니다. 아이에게 조언이나 잔소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먼저 이 말을 떠올려 보세요. 이 말은 당신이 아버지나 보호자로서가 아니라 아이의 수준에서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이 나이 때 어땠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당신도 그랬다면, 눈을 질끈 감고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말로 끝내세요. 당신은 그러지 않았다면, "넌 왜 그러니?" 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든지, "내가 바라는 네 모습은..."라고 말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방법으로는 'I-Sentence 어법'* 또는 '비폭력 대화 4단계'** 등이 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서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저는 미숙한 아버지로서 대화보다는 감정 폭발로 쌍둥이에게 상처를 주고 난 후에 반성하면서 알게 된 방법들입니다.


 지켜봐야 할 때


쌍둥이가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였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올라가는 부담이 컸던 듯했습니다. 아들은 중학교 내내 성적이 상위권이었습니다. 힘든 학원 수강도 잘 해냈습니다.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도전이 아들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아들은 게임에 몰두했습니다


PC는 거실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들은 거실의 중앙을 등지고 게임을 합니다. 가족들은 아들이 언제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모두 볼 수 있었다. 아들은 주로 친구들과 함께 팀으로 하는 온라인 게임을 합니다. 배틀그라운드나 레인보우 식스 같은 게임입니다.


저와 아내는 아들의 게임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공부 때문에 좋아하는 게임을 마음껏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심하다 싶은 정도로 하루 종일 게임을 해서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서야 할 때


어느 날 아들이 게임에 참여하는 친구를 기다리면서 포커 게임을 합니다. 아들은 의자를 약간 뒤로 젖히고 친구와 대화하면서 포커 게임을 능숙하게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나도 그랬지'에 해당하는 사항이지만 이건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포커는 도박입니다. 아이는 단순한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나중에 도박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걱정을 실어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건아, 그건 게임이 아니라 도박이라서 계속하면 곤란하겠는 걸."


지금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이런 취지로 말했습니다. 평소에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있던 제가 이런 심각한 말을 하는 걸 듣고, 아들은 꽤 충격받은 듯했습니다. 이 상황은 아들이 포커 게임을 멈추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아들과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평소에 편안하게 대화하지 못할 정도로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박 때문에 인생을 망친 친구 이야기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보냈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그 이후에 포커 게임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만 나서자


대화가 어려울 때 문자나 이메일 혹은 손 편지는 아이에게 부모 마음을 전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일방적일 수는 있지만, 대화를 안 하거나 아이가 심하게 위축되어 대화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렇게라도 부모의 마음을 전하는 게 좋습니다.


아버지는 결정적인 순간에만 나서는 존재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는 싫든 좋든 매일 마주 보고 대화하기 때문에 갈등이 있어도 풀게 됩니다. 물론 어머니도 조언이나 잔소리를 최소한으로 하는 게 현명합니다.


아버지가 직장에 나가고 있다면, 아이와 갈등이 생겼을 때 충분히 대화할 시간을 내기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대화로 갈등을 해소하고 싶어도, 아이가 회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갈등은 해소되지 않아 쌓이고 악화됩니다.


아버지는 아이와 갈등이 생기더라도 아내를 통해서 해결하는 게 낫습니다. 특히 아들은 아버지를 잠재적 경쟁자 혹은 적으로 생각하는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3~5세 사이 사내아이가 갖는 이런 심리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합니다.


아버지는 가능하다면 모른 척해야 하고, 지켜봐야 할 때와 나서야 할 때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아이와의 관계는 부서지기 쉬워도, 회복하기는 깨진 유리를 다시 붙이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다시 붙여도 상처는 남습니다. 관계가 부서질 수 있는 위기는 반드시 옵니다.


저는 그런 위기를 현명하게 넘기지 못해서 후회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저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랍니다. 



* ( I-Sentence 어법) 자신의 감정, 생각, 필요를 "나"라는 주어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I-Sentence 어법은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 생각, 필요를 표현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늦게 들어와서 화가 났어요"라는 말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이다. 하지만 "늦게 들어오니까 불안하고 걱정되네요"라는 말은 자신의 감정과 필요를 표현하는 I-Sentence 어법이다.


** (비폭력 대화 4단계) I-Sentence 어법을 기반으로 한 의사소통 방법이다. 비폭력 대화 4단계는 관찰, 감정, 욕구, 요청의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관찰: 상대방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관찰합니다.  

감정: 상대방의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이야기합니다.  

욕구: 상대방의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요청: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청합니다.  


(관찰하는 말로 대화 열기) "우리 딸은 아빠에게 인사를 안 하네."

(느낌 표현하기) "아빠는 서운한데."

(내 안의 욕구 들여다보고 표현하기) "아빠는 서로 존중해 주길 원해요."

(요청은 명료하게 구체적으로) "귀가할 때 현관에서 인사할 수 있을까?"


# 이런 화법은 직장에서 상대를 배려해 가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적용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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