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며 번역하며
"드실 줄 알았어요."
20kg 원판을 끼운 철봉을 가지고 데드리프트를 하려다가, 어라 꿈쩍도 하지 않아요, 선생님, 하다가 코어에 힘을 주고 기어코 들어올리자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I knew it, 네가 해낼 줄 알았다는 그 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나의 한계치의 무게를 은근슬쩍 주문하신 것 같아 웃기면서도—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들 수 있어 보이는 한계까지 주문하시다니요, 선생님!—기어코 해낸 나에 대한 응원도 섞여 있는 것 같아 왠지 뿌듯하기까지 했다.
하체 운동 시간과 막상막하로 상체 운동 시간도 나의 한계까지 밀어붙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푸시업을 10개씩 5세트 하며 부들부들 떨며 올라온 나에게 선생님은, 풀업과 푸시업 중 뭐가 더 힘든가요? 하고 물으셨다. 그 질문에 나는 둘 다 힘들기야 하지만, 아무래도 푸시업이 더 힘든 것 같다고 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까. 풀업이야 누가 옆에서 손으로 받쳐 줄 수 있지만, 푸시업은 아무리 힘들어도 나 스스로 일어나야만 하니까. 선생님도 이 말에 동의하며, 그러니까 푸시업을 하는 법이란 스스로 단계별로 일어나는 수밖에는 없다고 하셨다.
운동 자세마다—아무리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고 옆에서 전문가가 지지해 준다고 해도—오로지 자기만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지만, 그중에서 오로지 혼자만 자신의 무게를 감당해서 올라와야 하는 운동은 푸시업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푸시업을 도와주기도 참 애매하다—어떻게 도와준단 말인가, 허리를 잡고 몸을 올려준단 말인가? 그것보다는 근력이 부족하면 양팔로 벽 밀기부터 시작해서, 책상에 기대어 양팔로 밀기, 그다음은 바닥에 무릎 꿇고 양팔로 푸시업, 그다음은 정자세로 푸시업까지 자세를 점차 발전시켜 가며 자신이 스스로 바닥을 밀고 일어나는 수밖에는 없다. 중력의 힘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부들부들 떨면서라도 기어코 정점에 올라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푸시업은 내면의 싸움과 닮아 있다. 사람들마다 자신만이 감당해야 할 몫을 지고 살아간다. 일견 완벽해 보이는 이 사람도, 편해 보이는 저 사람도, 남에게 쉽사리 기댈 수도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문제들을 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문제들을 하나 하나 감당해 내다 보면, 혼자의 힘으로 올라오다 보면,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올라오다 보면, 어느새 근육이 성장하여 그 다음 문제는 비교적 쉽게 뛰어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멀쩡한 어른들이지만, 속으로는 아직—어쩌면 영원히—어린이들인 우리는 각자의 내면 아이를 잘 가꾸면서도, 내면의 상처를 보듬어 근성장을 해나가는 단계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