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적응의 성장

수영하며 번역하며

by 백지민

“적응될만 하면 바꿔야 해요.”

겨우 턱걸이 1세트당 10개를 5번 반복하는 데에 익숙해졌더니, 어느 아침에는 선생님께서 다른 주문을 하셨더랬다. 턱걸이 10개에서 하나씩 횟수를 빼면서 내려가면서 10세트를 하여 총 55번을 하게 주문하시며, 운동에 몸이 적응될만 하면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맨날 똑같은 운동만 해서는 발전이 없고, 그래야만 근육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운동에 몸이 겨우 적응했는데 또다시 변화를 준다는 것은 결코 달갑지가 않은 일이다. 특히 새벽 5시에 일어나 지치고 졸린 몸을 끌고 도착한 헬스장에서 오늘도 낯설고 힘든 신종 고문(?)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달갑지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열심히 알려 주시는 선생님의 지도를 잘 따라갔더니, 어느 날은 반팔을 입은 나에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뭔가 팔이 굵어지고 말랑말랑한 느낌이 없어졌네.” 그 말을 들은 나는 갑자기 신이 나서, 요즘 헬스를 일주일에 세 번씩 하고 있으며 헬스 때마다 팔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근육 운동을 하고 있다며 그동안 애써 만든 (미약한) 팔 근육을 자랑해 보이기까지 했다.


변화란, 기존의 것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 기존의 것, 익숙한 것이란 얼마나 편하고 좋은 일인가. 때로는 최고가의 기능성 신발보다도 그냥 내가 오래도록 신던 이 낡은 신발이 더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 말이다. 매일 하던 운동, 매일 하던 습관, 내가 매일 하던 익숙한 것들. 이런 것들이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만일 지금보다 더욱 성장하고 싶다면—근육이든 정신이든 그 무엇이든—내가 시도해 보지 않은 것에 발을 들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오늘은 운동 세트의 횟수를 늘려 본다든가, 다른 기구를 사용해 운동해 본다든가, 일어나지 않았던 시간에 일어나 본다든가, 해보지 않았던 행동을 해본다든가. 익숙한 습관도 좋지만, 여기서 뭔가 변화하고 싶다면 기존의 습관을 깨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겠다.


그런 면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달픈 일인가. 마치 기존의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는 뱀처럼, 기존의 집이 비좁아져서 새로이 집을 지어야 하는 소라게처럼, 성장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찢어지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근육이든 정신이든 뭐가 됐든지 간에 그냥 자연스럽게 하던 것을 하다 보면 성장해주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때로는 피곤한 한숨이 나오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세상에 고통 없는 성장은 없는 모양이다. 먼저 무엇이든 찢어져야만—고통이든 마음이든—그 상처가 아물면서, 비 온 뒤 땅이 굳듯이 그렇게 더더욱 강하게 성장하니 말이다. 그러니 반대로 생각해 보면, 현재 상처가 난 상태라면 이 순간을 잘 넘기면 한층 더 성장한 자신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근육통으로 뻣뻣한 몸으로 침대에 눕는 밤에, 뜻대로 되지 않아 아린 가슴을 안고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이런 상처는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고, 그 뒤에는 몸에든 마음이든 조금이라도 더 근력이 붙은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굳이 이렇게 고통스럽게 성장해야만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냥 이대로도 괜찮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만이 진리라는 말이 맞는다면, 사람이 진공 상태로 그대로 변치 않고 있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사람은, 살아 있는 존재이므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쁘게든 좋든 변화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이때 나쁜 습관을 답습하면 나빠지는 행로를 따라가기에는 매우 쉽지만, 그간 하지 않았던 좋은 습관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거듭 새로이 한다면 좋아지는 행로는 가파를지언정 기꺼이 오를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굳이 변화를 한다면 뒤로 물러나는 쪽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쪽으로,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쪽으로 하는 것, 그것이 살면서 후회가 덜 남는 길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