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

수영하며 번역하며

by 백지민

"사람이 왜 외롭냐. 운동을 해 봐라. 운동을 하고 기절하듯 잠에 곯아떨어져 보라고. 그리고 다음 날도 똑같이 운동해 봐라. 외로울 틈이 있나. 외로운 생각이 들면 운동을 덜 한 거다."

이것이 추석에 찾아뵈었을 때 우리 친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우리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는 모두 아흔이 넘으셨다. 그런데도 두 분 다 아주—같이 헬스장을 다니시는 다른 회원분들의 말에 의하면—작대기가 하나씩 걸어가는 듯이, 몸에 굽은 곳이 하나 없이 꼿꼿하시다. 그 비결이라 함은 우리 할머니는 30년간 수영을 하셨고, 우리 할아버지는 소싯적부터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등 구기종목을 석권하셨다. 그 덕에 운동을 하고 근육을 기르는 방법을 일찍부터 터득하셨고, 수영장 친구들 및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과 친목도 도모하면서 친구도 많아지셨다. 물론 아흔이 넘어가자 할머니는 수영 강습에서 젊은 사람들을 따라가기가 버거워졌다며—워낙 아가미가 달리신 분이라 20바퀴든 30바퀴든 계속 도시는 분이지만, 세월의 힘은 어쩔 수 없다며—정든 수영 강습을 뒤로 하셨고, 할아버지 역시 6.25 참전 당시 총알 파편이 박혔던 무릎이 점점 말썽이라 산에 올라가서 배드민턴을 하시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렇게 하던 운동을 못하게 되신 두 분의 해결책은 바로 헬스장이었다. 나이가 얼마나 많든지 간에 사람은 운동을 하고 손수 밥을 지어 먹고 살아야 한다며, 할아버지 할머니는 헬스장에서 GX에 참가하시며 당신들보다 30살은 어린 회원들이 하는 것을 못한다고 빼는 일 없이 그대로 따라하신다. 스쿼트, 팔굽혀펴기, 플랭크 등등. 이렇게 헬스장에서 최고령자이심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지시하면 그대로 따라 주니 선생님께도 예쁨을 받고 다른 회원들에게는 롤모델이 되었다는 훈훈한 소식마저 전해들었다. 형님, 나도 형님처럼 아흔 넘어서도 꼿꼿하게 허리 펴고 운동하러 다니는 게 소원이에요. 그런 할머니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식탁에 두 팔을 팔짱 끼고 올리시면 이두박근이 갈라지는 모양이 선명하다. 할머니는 거기다 요즘 근육 운동을 해서 근육만 1kg가 늘었다며, 덕분에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자라서 헐렁해서 못 입던 바지가 이제는 딱 맞는다며 자랑을 하셨다. 40대 이후에는 근육 감퇴 속도가 빠르다고 들어서 유지만 해도 감지덕지라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90대에도 근성장이 가능한 줄 미처 몰랐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건강한 것을 찾아 드시고 헬스장에 꾸준히 다니시며 운동하시는 모습을 보면 이건 거의 기네스북에 올라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할아버지 할머니의 비결은 바로 온고지신에 있다. 온고지신, 즉 옛 것을 지키면서 새것을 도입한다는 그 정신으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루틴을 지키시면서 의사나 신뢰할 만한 정보통이 통증에는 이 운동이 좋다더라, 하면 하던 운동에 새로운 것까지 더해 그대로 30년간 이행하신다(그러니 헬스장에 한번 가셨다 하면 1시간 30분간 운동을 하시는 것이렷다!). 일례로 의사가, 허리 통증에는 수영을 하셔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아마 이럴 것이다. 알죠, 아는데, 수영하려면 돈도 들고 일하고 시간도 없고 수영복 입는 것도 부담이고 수영장도 집 근처에 없고 어느 세월에 거기까지 가서 옷을 갈아입고 어휴. 하지만 이 모든 핑계는 우리 할머니에게 통하지 않는다. 허리가 낫고 싶으면 수영을 하라, 라는 것이 입력되면 우리 할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눈보라가 칠지라도 수영을 하신다. 비단 수영뿐만이 아니라,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다리 운동을 하나 알려줬다고 하면, 그 운동을 매일 매일 30년간 이행하신다. 나중에는 그렇게 하라고 한 의사조차 기억을 못할지라도. 또는 이렇게 말할지라도. 아니, 제가 말하긴 했는데, 정말 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통증이 사라지신 거구나. 아니 대부분 안 하던데... 그런 일화를 할머니는 집에 와서 전해주며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운동만이 살길이다. 운동해야 신체가 건강하고, 신체가 건강해야 정신도 맑아진다. 정신이 무너지는 게 가장 무서운 거다. 살려면 운동해야 한다.

요새 여자들도 철인3종에 도전하는 프로그램도 나오고, 러닝 및 마라톤 열풍도 불면서, 뭔가 끈기와 열정의 철인들이 많이 보이는 듯하다. 나도 그 열풍에 몸을 싣고 아쿠아슬론(5000m를 1시간 50분만에 수영하는 것)과 10km 러닝 대회를 신청해 놓은지라 막 훈련에 돌입한 참이다. 그러나 다양한 철인들이 있을지라도, 어쩌면 진정한 철인은, 무자비한 노화와 기력 감퇴를 가져다주는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에 맞서 싸우는, 우리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아닐까. 가장 강력한 시간의 흐름을 거역하듯이 오늘도 무게를 올려 근성장을 하는 아흔이 넘으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닐까. 나도 70살이 넘어도 나이키 컷아웃 수영복을 입고 갈라진 등 근육으로 멋지게 입수하여 경기에 임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는데, 그런 롤모델이 스스로 되어주시는 분들이 가까이 계시는 것은 또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추석을 맞이하여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