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며 번역하며
"이제 6km 지났어! 현재 5분 54초 페이스!"
"파이팅!"
생활스포츠지도사 수영 2급을 같이 딴 친구가, 자격증을 딴 뒤로 운동 권태기에 빠졌다며 하루는 철인3종 코스를 하루에 해 보자고 제안해 왔다. 그래서 주말에 하루 날을 잡아서 수영 1.5km, 자전거 10km(원래 철인3종이라면 40km이겠지만 내가 자전거 타기에 서투른 탓에 이날은 자전거에 적응하면서 맛만 봤다), 러닝 10km를 장장 3시간에 걸쳐 시도해보았다.
실전에서 수영은 오픈워터에서 하겠지만 이날은 시야가 확보되고 물살이 잠잠한 실내 수영장에서 했기에 문제가 아니었지만, 진짜 승부는 그 다음부터였다. 자전거를 빨리—그래 봐야 자전거 초보인지라 속도가 20km 언저리였지만—타다 보니 허벅지가 터지는 듯해 왔고, 자전거에서 내려 10km 러닝을 하자니 폐가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옆에서 친구가 뛰니까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그러나 왜 뒤처지면 안 되는가? 왜 우리는 이걸 하고 있는가? 잠깐씩 도파민에 절여진 뇌가 정신을 차릴 때면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만 그 대답은 언제나 알 수 없다, 우리는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르는 것이었다—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뛰었더니 결국 10km를 완주했다. 완주하자마자 친구는 주차금지 팻말에 기대려다가 팻말과 함께 아스팔트에 나동그라졌고, 나 역시 아스팔트 바닥에 아무렇게나 대자로 누워 폐에 들어간 날카로운 찬바람을 기침으로 뱉어냈다. "됐어—우린 해냈어! 이제 우린 10km를 뛸 수 있는 몸이 된 거야!" (그러나 여전히 왜 10km를 뛸 수 있는 몸이 되어야만 하는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항상 왜 이렇게 되는가?—가 나와 친구의 머릿속에 항상 떠도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무도 '아니'를 외치는 사람이 없다. 내가 유산소를 하고 싶으니 함께 러닝할래, 하고 물으면 친구는 그래 좋다, 한다. 그런 뒤 친구는 거기에 하나 더 보태서, 요즘 수영도 권태로워졌는데 함께 해볼까, 한다. 나는 말한다, 그래 좋다. 그러다 친구는 말한다, 여기에 자전거만 붙이면 철인3종 완성이다. 나는 말한다, 그래 좋다. (뭐가 자꾸 좋다는 말인가.) 이렇게 좋다 좋다가 반복되다 보면 일명 "보태 보태 병"—이 가격이면 몇 만원만 보태면 이걸 살 수 있는데, 아니 그 가격이면 다시 몇 만원만 보태면 이걸 살 수 있는데, 하면서 점점 비싼 제품을 사게 되는 병이라고 한다—에 걸린 우리는 아무도 시키지도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괴롭다는 철인3종 훈련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 출전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렇게 올해부터 천천히 철인3종 훈련을 해보자고 친구와 나는 결의를 다졌다. 아무래도 동성인 친구가 옆에서 해내고 있으면 이상하게 나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아니 해내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허세와 오기와 압박감과 그런 감정들이 들어 멈출 수가 없게 된다. 이상한 비유이지만 아사다 마오 선수를 보는 김연아 선수가, 또 김연아 선수를 보는 아사다 마오 선수가 그랬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볼 뿐이다. 네가 한다면 나도 할 수 있어. 아니, 나도 해내고야 말 거야. 그렇게 동년배의 동성의 스포츠인이 옆에서 이를 악물고 있으면 나 역시도 이를 악물게 되며,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보며 성장하는 것이리라.
달리다가 폐가 터질 것 같을 때 옆에서 보조를 맞추어 달리던 친구는 말했다. "아, 행복해!" 누군가는—특히 내 주변의 비운동인들은—광기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운동하는 중에는 뇌가 도파민에 절여져서 괴롭다는 느낌과 동시에 행복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렇게 같이 힘겨움과 행복감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보조를 맞추어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크나큰 행복인가. "저기 봐, 호수에 달빛이 비쳤어!" 그렇다, 친구와 함께이기에 비로소 그렇게 땀 범벅이 되어 다리가 터질 것 같은 와중에서도 호수에 비친 달빛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