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며 번역하며
"그리고 지금보다 힘을 빼셔야 해요."
수영 훈련 중에 스컬링을 하다가, 팔꿈치가 빠진다, 왼팔 스트로크가 몸통 밖으로 나간다 등 디테일한 피드백을 받던 중에, 손과 어깨에 힘을 빼라는 피드백도 받았다. 그리하여 힘을 빼고 스컬링을 하는데, 오히려 팔도 덜 아프고 더 잘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물속에 고개를 넣고 나아가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돌아보면 힘을 주고만 살고 있지 않았나.
내 인생은 돌이켜 보면 '해야 돼,' '가야 돼'로 점철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외고에 가야 돼, 통번역대학원에 가야 돼, 번역서를 내야 돼. 취미 관련해서도 예외는 없었다. 수영 기록을 줄여야 돼, 10km를 뛰었으면 하프 마라톤에 나가야 돼. 물론 이런 성취 지향적인 성격 탓에 많은 걸 이룩해서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상하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의 부문들에서도 힘이 들어가는 나 자신을 때로 발견할 때가 있다. 오늘 화장실 청소를 해야만 해, 셔츠를 구김 없이 다려야만 해. 사실 셔츠가 구겨지면 또 어떻고 화장실 청소를 내일 모레 한들 뭐 어떤가. 하지만 오늘의 '해야 돼'를 완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늘이 미처 끝난 기분이 영 들지 않아서—왜냐면 내일은 내일의 '해야 돼'가 있으므로—휴일에도 스케줄표를 빡빡하게 짜서 움직이는 편이었던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MBTI 중 J 성향(계획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고, 표면적인 것만 본다면 '갓생(God생; 부지런한 인생을 일컫는 말)'이라고 칭할지도 모른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출근 전에 운동을 하다니! 그리고 야근까지 하다니! 휴일에도 늦잠을 자지 않고 일어나 시간대별로 집안일을 하다니! 그러나 실상을 보면 나는 계획이 어그러지면 기분이 나쁜 컨트롤 프릭(Control freak)에, 잠이 부족해도—심지어 야근으로 밤을 새우더라도—일단 아침 수영장에 출석하는, 몸의 소리에 귀기울일 줄 모르고 몸을 혹사하는 광기 어린 인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영어에서는 A와 B가 구분되기가 어렵게 비슷하다, 라고 할 때, '둘 사이에 있는 구분선이 얇다(There is a thin line between...)'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얘기에 적용해 보자면, 갓생과 자기 혹사 사이에 있는 구분선은 아주 얇다. 종잇장처럼 얇다. 자신이 갓생을 살고 있으며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실상은 건강을 깎아먹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던 운동들을 안 하고 아침에 잠만 잘 수도 없는 노릇이다—이미 루틴화되어 버린 아침 운동 시간을 날려 버리면 하루가 얼마나 찝찝한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이 부족하고 피곤한 날도 수영장에 가서 단 5분이라도 찬물에서 헤엄치고 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어떤 루틴을 영위할지는 선택의 문제이다. 휴식을 택할지, 운동을 택할지는 자기 몫이다. 그러나 내가 아주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운동—변명하지 마, '해야 돼'—를 택해 왔다면, 가끔은 몸의 소리도 들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힘을 빼서 팔을 저으면 오히려 더욱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갔듯이, 가끔씩 강박적으로 꽉 쥐었던 루틴에도 힘을 빼 주면, 휴식을 기반으로 더욱 탄성을 받아 앞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가끔은 휴식을 택한대도, 절대 주저앉는 것은 아니니 조바심을 내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끔 걸려 넘어져 쉬어도, 꾸준함만 있다면, 분명히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