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서는 힘

수영하며 번역하며

by 백지민

어쩐 일인지—아무래도 수영을 덜 했던가—최근의 수영 경기에서 빽초(Back초: 본인 평소 기록보다 나쁜 기록이 나오는 현상)가 나오고야 말았다. 배영을 할 때도 포기하지 말자고 되뇌며 근육통이 올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생체를 딸 때보다 4초나 기록이 늘어 버리다니! 이에 괜히 우울해져서는 방에 틀어박혀 오늘은 광란의 밤을 보내겠어! 하고 각오를 하고는 맛있는 삼겹살과 제로맥주—우울한 와중에도 식단을 하겠다고 제로를 골라버린 것이다—로 홀로 맛있는 시간을 보내다가 어김없이 루틴의 힘으로 10시에 아주 바람직하게 잠들어 버렸다. (겨울에 뜨끈하게 예열해둔 전기장판의 유혹은 뿌리칠 수 없다. 그곳에 발이라도 들였다가는 그대로 수마에 잠식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멈춰 있을 내가 아니었다. 수영 기록은 늘었을지언정 나는 여전히 내년 3월에 하프 마라톤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라 주말에는 훈련에 임해야 하며 하루하루 해야 하는 루틴적인 운동이 있다. 이런 바람직하고 건전한 광란의 밤(?)을 보낸 다음날, 잠을 자고 나니 우울함이 조금은 가셨지만 여전히 우울감의 찌꺼기가 남아 있던 내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You know what to do."

그래, 난 이럴 때 뭘 해야 하는지 안다. 어떤 수영인은 스트레스, 우울감 등 가라앉는 감정들은 수용성이라고 했더랬다. 샤워를 해도 되고, 수영을 해도 되고, 땀을 흘려도 된다. 이에 러닝 복장을 차려입고 러닝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날의 훈련은 점프 스쿼트, 점프 백 런지, 피치(제자리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 버피 테스트 등의 활동으로 구성된 서킷 트레이닝이었는데, 일례로 버피 테스트를 40초간 한 다음에는, 운동장 반대편으로 달려가서 또 점프 스쿼트를 40초간 하고, 또 운동장 반대편으로 달려가서 점프 백 런지를 40초간 하고, 모든 운동이 끝나면 운동장을 한 바퀴 질주하는 것이 1세트였다. 세트간 휴식은 3분이고, 이것을 3세트간 반복했다. 1세트에서 벌써 다리가 후들거리더니, 2세트가 넘어가자 토할 것 같았다. 3세트 중에는 다들 너무 힘든지, 옆의 어느 중년 남성은 "이것만 하면 쉴 수 있어, 이것만 하면... 이것만 하면..." 하고 중얼거렸고, 저 반대편에서 어떤 청년은 밤하늘에 대고 "즐겁다! 즐겁다악! 아아악!" 하고 고함을 쳤다. 영하의 날씨에 반팔을 입고 훈련하는데도 아스팔트에 땀이 후두둑 떨어져서 자기 땀으로 아스팔트가 미끈거렸다. 그래도 달려야만 했다. 버피 테스트를 마치고 비틀거리는 내 등 뒤에 누군가가 "가야 돼! 가야 돼! 해야 돼!" 하고 외쳤다. (대체 왜 해야 하고 가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에 비틀비틀 달리며 20명에 달하는 훈련팀의 뒤꽁무니를 좇았다. 그러나 누가 우리에게 이 짓을 하라고 시켰는가? 아무도 우리에게 시키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스스로 불러온 재앙, 즉 단체 스불재의 현장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로 훈련하고 땀을 흘리고 나니 머릿속이 상쾌해졌음은 물론이다. 인생을 살면서 수영 기록인 초가 늘었다는 것은 사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연히 생체 딸 때보다 수영에 들인 시간이 덜하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래도 정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쁘다면, 이제부터 더 노력해보면 될 일이다. (이에 수영 훈련팀에도 추가로 합류해 두었다.) 어떤 일이 안 될때, 의기소침했을 때, 우울감에 잠식될 것 같을 때.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고 있다. 각자만의 루틴이 있을 것이지만, 나의 경우에는 잘 먹고 잘 자고 땀 흘릴 정도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힘든 순간에도 오늘의 할일을 해냈다는 생각에,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샤워하고 거울에 근육도 자랑해 보고, 거울 속에 엄지를 날려 주면, 그렇게 자기애가 100프로 충전된 채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일어서는 힘—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 힘은, 의기소침한 순간에 우리가 정해둔 루틴을 해내고자 하는 그 의지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