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며 번역하며
"오기, 체력은 되는데 이제 그걸 받쳐줄 지구력만 있으면 될 것 같아요."
내가 내년 3월에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겠다고 말하자,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의 입에서 나와 운동한 사람들이 어김없이 입에서 꺼내는 말이 나와서 신기했다. 오기. 악바리. 끈기. 승부욕. 어떤 친구는, 너는 보면 운동신경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장점인 끈기로 승부하는 타입 같다며, 내가 너의 승부욕의 반절만 있었더라도 운동 선수가 되었을 거라고 하는데, 나는 항상 그런 내 모습이 도대체 어디서 보이는지 신기했더랬다. 도대체 내가 어디서 오기를 부렸단 말인가? 어디서 승부욕이 있었단 말인가? 그런 단어를 입 밖으로 낸 적이 없는데. 이런 말을 들은 운동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너의 모든 순간 모든 면에서 오기가 보인다"고.
그렇다, 사실은 이 오기 덕분에 어깨를 다쳐 가면서도 생체에 합격했더랬고, 빙판길에 넘어져 광대뼈를 아스팔트에 찧고서도 훈련에 임한 끝에 라이프가드를 땄더랬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하는 나로서도 끊임없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누가 하라고 시켰나? 누가 칼을 들고 협박했나?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 아닌가? 이렇게 매번—동생의 말에 따르면—쓸모없는 쇳덩어리인 메달을 늘리면서 누칼협 인생과 스불재 인생을 살아오는 것이 나인 것이었다.
그야말로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무도 등을 떠밀지 않았다. 스스로가 돈을 내고서라도 이런 고생을 사서 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주변인들은 말한다. 아무리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도대체 그걸 왜 그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그러면서 제발 아프지만 말라는 당부도 이어진다.
나 자신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산을 보면 올라가고 싶은지(비유적인 표현이다, 등산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물을 보면 뛰어들어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지. 왜 어제의 자신보다 발전하고 싶은지. 왜 그냥 누워 있지를 못하는지.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이렇게 프로그래밍되어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런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번역에서든 수영에서든 오기로 끈기로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운동 신경이 떨어져서 모든 운동에서 실격일지라도, 오기만은 합격으로, 오기 하나만으로 시간을 들여 다른 것들을 커버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