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이 아닌, 곡선, 점선도 선인걸

수영하며 번역하며

by 백지민

모름지기 이건 이래야지, 저건 저래야지, 하는 생각이 강했다. 모름지기 외국어를 잘한다면 통번역 대학원에는 합격해야지. 모름지기 공부를 한다면 장학금 정도는 받아야지. 모름지기 소설을 번역한다면 이 정도는 책을 읽어야지. 모름지기 밤을 새우더라도 최상의 결과물을 내야지. 돌이켜보면 상당히 자신에게 엄격한 편이었던 것 같다. 세상만사를 흑백 논리, 모 아니면 도로 생각하고, 어떤 일에 임할 때 자신을 하얗게 불태울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이것은 운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허리디스크 치료를 위해서 시작한 수영에도 예외는 없었다. 모름지기 운동을 하려면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말아야지. 모름지기 수영을 한다고 하면 이 정도 훈련량은 벅차더라도 따라가야지. 모름지기 이 정도 수영을 했으면 라이프가드도 따야지. 생체도 따야지. 돌이켜 보면 누가 칼을 들고 협박했나—혹자는 이것을 ‘누칼협’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싶은 일들이기는 하나, 어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일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 일에 절박해지고야 마는 자신이었던 것이다.

거기까지는 좋다, 이렇게 절박하리만치 노력해서 일군 것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이렇게,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면서 집착과 오기라고 부르는 편이 맞을 정도로 근근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에게 엄격하면, 그렇게 엄격한 만큼, 타인에게도 엄격해진다는 점이다.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너는 하지 않지? 왜 더욱 나은 자신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지? 왜 공부하지 않고 운동하지 않지? 나처럼 야근으로 밤을 새우고서라도 운동하면 되잖아. 왜 현재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자신을 방치하지? 왜 나아가지 않지? 끊임없는 상승 욕구에 사로잡혀 들불처럼 번지는 추진력을 마음에 품고 있는 나로서는 멈춰 있는—듯해 보이는—주변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성취해 내는 자신에 취해서 남들을 볼 때, 나름의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야 말았던 것이다. 운동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성격이 예민하겠어. 자기 발전이 없는 사람이구나, 배울 점이 없겠어, 하고 말이다.

이렇게 직선으로 목표를 향해 고속도로처럼 달려오는 나의 인생이었기에, 직선이 아닌 선은 선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일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뱅 돌아가는 곡선이라든가—나는 출판 번역을 하고 싶은데 일단 돈을 벌어야 해서 취직했어, 근육을 늘리고 싶은데 본격적으로 운동하기는 뭐해서 그냥 산책만 해—드문드문 그 일을 목표하는 점선—나도 출판 번역을 하고 싶은데 그냥 취미 삼아 퇴근하고 잠깐씩 책을 읽고 있어, 나도 운동하고 싶은데 야근하느라 가끔 헬스장에 가다 말다 해—은 도저히 선처럼 보이지 않았다. 원하는데 왜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지? 사실은 정말로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어떤 일을 갈망하는 데에 있어서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서 자기 혼자서 그 일을 갈망할 수 있는 자격을 매기기도 했던 것이다.

하나 수영에 점점 빠지면서, 나 자신도 어깨를 다쳐서 3주간 한쪽 팔로만 수영해 봄으로써 직선으로 달리던 길에서 살짝 벗어나면서, 또 다양한 수영인들을 만나보면서, 그렇게 견고했던 나의 아집, 오만, 편견이—직선에 대한 집착이—점차 허물어져 감을 느꼈다. 임신해서 만삭이 된 몸으로도 수영을 놓지 않고 수영장에 출석하는 수영인, 항암 치료를 이겨내고 이전의 컨디션을 되찾기 위해 수영하는 수영인, 한쪽 팔이 없는데도 다른 한쪽 팔로 수영하는 장애인 수영 선수, 직장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오늘의 명상을 하기 위해 수영장으로 향하는 수영인, 어깨 부상으로 몇 달간 쉬었다가 다시 복귀한 수영인 등. 모두가 자신만의 자유형으로—생각해 보면 사실 자유형이라는 영법도 딱 하나의 영법으로 정해진 것이 없잖은가, 그냥 잘 나가기만 하면 어떤 자세든지 상관은 없는 것이다—자신의 리듬대로, 자신의 속도대로 헤엄쳐 나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곡선일지라도, 드문드문 임하는 점선일지라도, 자신만의 선의 궤적을 그리면서.

그리하여 이제는—물론 그런 오만과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완전히 벗어났다고 하는 것마저도 오만일 수 있기에—인생을 직선으로 살아가고 그 이외의 인생을 용납하지 않는 듯한 사람과 대화하면, 얼마 전의 자신을 보는 듯해지고는 한다. 아직 직선이구나. 그래, 좋다. 꺾이지 않는 직선도 너무나 아름답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내려서, 자전거를 타며 돌아가는 길에서는, 아니 어쩌면 쉬엄쉬엄 걸어가는 길에서는, 달리는 차에서는 보지 못했던 들꽃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로는 다시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를 타기도 하겠지만, 또 때로는 차량의 연료가 떨어져 인도로 빠져 걸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같이 걸어가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교류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삶이라는 길에서, 직선과 곡선과 점선이 만났다가 떨어졌다가 하며 그리는 이 궤적들이 모인 그림은 어쩌면, 멀리서 보면, 꽤나 아름다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