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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바람처럼 Mar 29. 2024

음식이 만드는 기적!

영화 <바베트의 만찬>을 보고

인간이 결국 삶에서 원하는 것은 잘 먹고 잘사는 것 아닐까. 먹는 즐거움만큼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바베트는 음식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적을 행한다. 

 

덴마크의 바닷가 작은 마을, 그곳에는 목사의 딸인 두 자매가 기독교 교리 아래 헌신과 봉사로 노인이 대부분인 마을 사람들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오직 주 만 섬기며 청초하게 늙어가는 이 자매는 날마다 딱딱한 빵을 끓여 수프를 만들고 털실로 뜨개질을 해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가져다 준다. 마을에는 청교도적인 청빈함과 금욕적 분위기 속에 생기라고는 없는 옅은 우울과 회의, 무기력한 기운이 퍼져 있었다.

 

영화 속 대사에는 인생에서 찾으려 했던 의미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덤 뿐, 

떠날 때 가지고 갈수 있는 것은 남에게 준 것 뿐.’

 

비바람이 몹시 치던 어느 날 밤 바베트라는 프랑스 여인이 이 마을에 도착한다. 가족을 모두 잃고 오갈 데 없는 여자는 한 때 이 자매와 연이 있었던 음악가의 소개로 이 집에 가정부로 오게 된다. 딱한 사연을 들은 자매는 보수를 줄 수는 없지만 함께 살아도 좋다고 허락한다.

 

요리사였던 바베트는 타고는 부지런함과 근면함으로 자매를 봉양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자매들을 대신해 헌신한다. 또한 적은 돈으로도 맛있는 수프를 끓이고 입맛 당기는 음식으로 마을 노인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그런 소소한 행복도 잠시 시간이 흘러가면서 마을 사람들은 서로 반목하고 갈등한다. 사소한 일에도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게 된다. 

 

한편 바베트는 프랑스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바베트의 복권을 맡아 계속 바꿔주고 있었다. 드디어 어느 날 복권당첨 소식이 도착하고 바베트는 거액의 돈을 받게 된다.

 

바베트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커다란 계획을 세운다. 돌아가신 목사님의 100번째 생신 기념일에 마을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만찬을 준비하는 것이다. 두 자매에게 계획을 말하고 동의를 구하고는 복권으로 받은 거액의 돈을 몽땅 털어 최고의 식재료와 와인, 식기 등을 프랑스에서부터 주문해 들여온다. 살아있는 거북이, 메추라기, 와인을 시원하게 할 얼음까지 철저히 준비한다. 며칠에 걸쳐 음식을 다듬고 손질하고 최고의 맛을 내는 포도주와 샴페인, 거북이 스프, 메추라기 구이, 열대 과일 등 완벽한 프랑스식 코스 요리를 준비한다.

 

드디어 만찬의 날 마을 사람들이 한 사람씩 자매의 집에 도착한다. 젊을 때 자매 중 하나와 서로 사랑했지만 아버지인 목사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장군도 초대된다. 사람들은 식탁에 앉으며 화려하게 놓인 식기들과 촛불 등 식탁의 분위기에 압도된다. 

 

음식이 순서대로 나오고 하나씩 맛볼 때마다 사람들의 눈이 반짝이고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한 가지씩 서빙이 될 때마다 사람들의 입맛은 신세계를 경험한다.

 

몇 가지의 음식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음식 맛에 이미 넋을 빼앗긴다. 누구랄 것도 눈치도 보지 않고 음식 맛에 푹 빠져든다. 접시에 담긴 국물까지 싹싹 먹으며 곁들여 나오는 샴페인과 포도주로 입맛을 다신다.

 

이 맛있는 음식 앞에 선한 본성으로 돌아가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음식은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고 정신을 고양시킨다. 이 아름다운 저녁 식사에 모든 이의 마음에 천사가 찾아온다. 사람들은 혀부터 시작된 기쁨이 마음으로 영혼으로 번졌고 자신들의 오늘 하루의 삶이, 일생이 기쁘고 행복했다. 

 

맛있는 음식으로 미각을 깨우는 맛의 향연이 이어지며 예술가가 작품을 완성하듯 차려진 최고의 음식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맛에 감동한 혀는 뇌와 심장을 자극한다. 만족한 정신은 충만해지고 마음속에 품었던 서로에 대한 원망과 미움, 갈등이 봄눈 녹듯 스르르 풀려버린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된다. 

 

그날 밤 이들은 더 이상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무덤에 갈 날만 기다리며 일상을 반복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즐거웠고 행복했고 기뻤다. 교리로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 이웃을 서로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바베트의 성찬을 함께 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고 기쁨에 차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돌아간다. 마을 골목길에는 화합과 기쁨의 찬양이 절로 터져 나오고 그날 밤 별은 더욱 반짝인다. 

 

자신을 아무 대가 없이 받아들여준 마을 사람들에게 바베트는 최고의 맛으로 보답한 것이다. 최고의 음식은 마을 사람들을 기쁨으로 충만 하게 감동시켰고 모두 회개하고 찬양하며 서로를 용서하고 축복했다. 맛있는 음식이 기적을 행했다.

 

영화는 물리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먹는 행위에 대한 심미적, 사회적, 철학적 고찰을 담는다.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목숨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고귀하고 그 어떤 종교보다 신성하다. 인간 사회에서 음식을 나누는 일은 화합과 소통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음식은 몸을 구하고 마음을 구하고 영혼을 구한다.

 

육체에 의탁해 기거하는 영혼은 몸의 명령에 지배받는다. 맛있는 음식의 추구라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강력한 이 욕구는 기적 같은 힘을 발휘한다. 인간의 정신도 마음도 영혼도 변화시킨다. 

 

바베트는 음식이라는 달란트들 가지고 마을에 온 선지자였다. 음식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교화시켰다. 맛있는 음식은 곧 구원이요 생명이었다. 

 

그날 저녁 사람들 마음에는 다시 희망이 살아났고 이 아름다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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