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단상>
사망 선고를 기다리는 심정이다. 처음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푹 꺼지는 듯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한 존재가 삶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연락받고 병원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수십 년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역 앞에서 서성였다.
중환자실에 다녀오면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해 생각한다. 치료는 의술의 영역이고 모든 결정은 보호자가 내려야 한다. 생명 선택권이 타인에게 있다니 삶이 모순 같다. 관계가 설령 부모 자식 사이라도.
문제는 자신이 받을 치료와 수명 연장 여부를 자신이 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치료는 선택의 여지 없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편 수명 연장이나 치료 과정 모두 자신이 선택하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나라에도 존엄사법이 시행되었다는데 내 일이 아니어서 그동안 관심 두지 못했다. 하지만 존엄사든 안락사든 이미 더 이상 의학적으로 회복할 가망이 없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사실은 이 단계에 이르기 전 치료 과정에도 수많은 선택의 문제가 있다.
죽음은 언제나 막연했고 삶에서는 금기된 단어였다. 하지만 죽음도 삶의 과정에 속한다. 죽음이 있어 삶은 아름다울 수 있고 오늘을 더 빛나게 한다.
죽음도 치료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의식이 있고 선택할 수 있을 때 삶을 마무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 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