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클레어 키건의 원작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아일랜드의 어려운 가정에서 엄마가 동생을 출산하는 동안 낯선 친척 집에 맡겨진 한 소녀의 이야기다. 아이들은 안온한 가정에 있어도 언제나 태어나 처음 맞는 상황에 부딪힌다. 매 순간 낯설고 당혹스럽고, 불안하고 두렵다. 소녀의 아빠는 아무 설명도 없이 아이를 내던지듯 내려놓고 돌아서 가버린다.
아이는 어떤 말도 할 수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새롭게 내던져진 낯선 상황에서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내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아주머니는 이것저것 묻지 않고 묵묵히 아이에게 시선을 맞추며 다정하게 대해주려고 애쓴다. 아이를 목욕시켜 주고 비록 입던 옷이지만 새 남자아이 옷으로 갈아입힌다.
아저씨도 아이만큼이나 말이 없다. 이 세 인물의 묵언 같은 대화가 전편에 흐른다. 차츰 아이와 아저씨는 무언의 소통을 하고 아이는 아저씨의 목장 일을 돕는다.
그러다 우연히 아주머니가 그동안 자신에게 죽은 아들의 옷을 입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이는 걸쳤던 스웨터를 벗어던진다. 그날 밤 아저씨는 아이에게 겉옷을 걸쳐주며 바닷가로 데리고 가서 모래사장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말이 없는 아이에게 아저씨는 말한다.
“아무 말 안 해도 돼
언제나 그걸 기억하렴
......
많은 사람이 침묵할 기회를 놓쳐서
많은 걸 잃었단다.”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눈앞에는 검은 바다 위로 작은 불빛 두 개가 반짝인다.
대화를 마친 아저씨와 아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가는 도중 아저씨가 옷자락을 여며주는 동안 아이는 문득 검은 바다를 다시 바라본다. 그때 바다 저편에는 자그마한 불빛 세 개가 반짝인다. 아이는 불빛이 세 개가 됐다고 환하게 말한다.
이윽고 엄마가 동생을 출산했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아이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주머니와 아저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이 더 생경한 아이는 불안하다. 아주머니와 아저씨 부부는 다시 차를 타고 출발한다.
그때 식탁에 앉아 있던 아이가 뒤쫓아 뛰어간다. 차가 집 어귀에 서고 아저씨가 대문을 닫는 모습을 보며 전력을 다해 달려간다.
이를 본 아저씨가 아이를 번쩍 들어 끌어안는다.
품에 안겨 흐느끼는 아이가 고개를 들자 뒤따라온 아빠가 보인다.
“아빠!!”
그리고 아이는 다시 아저씨 어깨에 고개를 파묻으며 부른다.
“아빠......”
영화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법을 보여준다. 영화 속 아저씨를 보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펄롱이 생각난다. 키건의 작품들 속에서는 여리고 상처 입은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느껴진다.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