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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 바람처럼 Apr 22. 2024

고통이 나를 통과할 때, 영화《해피 어게인》을 보고

<영화 감상>

        


아버지와 아들이 각자 슬픔을 안고 고통을 견디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갑작스럽게 아내와 엄마를 잃은 부자는 저마다 슬픔에 빠져 있다. 그러다가 무작정 낯선 도시로 이사를 떠난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고통을 내색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속으로 깊이 아프다. 아버지는 정신과 상담과 치료도 받지만, 우울증이 심해진다.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지켜보던 아들은 급기야 폭발한다.   

  

“그만 포기하는 게 어때요

죽는 거요

아빠는 죽어가고 있어요

......


엄마가 죽고 나서 우린 그냥 떠나버렸어요

갑자기 정든 집을 떠나왔다고요

근데 엄마가 이렇게 살길 바랄 것 같아요?

하루라도 한순간도 안 보고 싶은 줄 알아요?

잘 들어요 아빠, 엄마는 죽었어요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않아요!

......


앞으로 나 혼자 살아야 한다면 지금 말해요

아빠가 죽을 거면 나도 죽을래요

삶은 원래 이런 거잖아요

죽기 위해 사는 거죠

살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얼른 결정해요

살기 싫은 거면 그냥 확 죽어버리라고요!”   


  

아들의 울부짖음에 아빠는 깊이 각성한다. 

그러고는 아내의 기억이 담긴 물건들을 전부 정리한다.  

   

그 사이 아들은 크로스컨트리 대회에 나간다.

아들은 고통스럽게 달리면서 전에 코치가 해준 말을 기억한다. 

    

“크로스컨트리는 고통스러운 운동이야

고통은 거부할 수도 없는 척도 못해

하지만 고통이 뭔지 제대로 인지하고

그걸 이겨나갈 방법을 찾는 운동이지”    


아들은 사력을 다해 달리고 1위로 피니시 라인을 끊는다.

그때 저쪽에서 아빠가 다가오고 부자는 부둥켜안고 서로 사과한다.

아빠는 경기를 놓쳐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다신 안 놓치겠다고 다짐한다.  

   

아들과 아버지는 그렇게 다시 희망을 일군다.

사람은 결국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다.     


     



요양병원에서 위중해진 엄마를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기려 할 때 친족이 말했다.

어차피 돌아가실 것 같은데 옮겨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나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었고 끝내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3주를 사투한 끝에 모친은 결국 떠나셨다.   

  

그 3주는 어떤 의미일까.

엄마가 이 세상에 살아있었다.

내게 희망이 존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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