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죽어가는 과정은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요양병원에서 그럭저럭 지내던 엄마는 식사 도중 사레들려 며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폐렴과 패혈증이 왔고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호흡기내과 중환자실로 들어갔지만 여러 가지 검사 결과 심장이 더 위중한 상태라 심장외과 중환자실로 옮겨야 했다. 담당 의사는 여러 가지 설명을 하면서 현재 인공호흡기로 버티고 있지만 더 악화하면 기도삽관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며 가족들이 미리 결정해 두라고 당부했다. 폐렴은 다행히 치료가 되고 있었지만, 인공호흡기를 떼도 자연 호흡이 돌아오지 않으면 삽관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이런 결정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이상 모든 의학적 처치를 다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짧은 의사와의 면담 후 간호사에게 자세히 물어보니 기도삽관을 하면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제거하고 싶어도 의사가 판정해 주지 않으면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임종기에 접어들었다는 의사의 판정이 있어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제야 기도삽관이 연명치료의 한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거의 의식이 없는 채로 인공호흡기와 각종 기계에 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치료를 받았다. 거기 들어간 후로는 가족들 면회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30분 이내로밖에 허용되지 않았다. 각종 치료를 받았어도 엄마는 갈수록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빠져 갔다.
치료의 과정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요양원에서 그대로 편히 돌아가시게 하자던 형제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우겨서 대학병원으로 모신 터라 모든 결정은 내가 주가 되었다. 나는 희망을 버린 형제들이 원망스러웠고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렸다. 하지만 매 순간 선택하는 일이 너무도 힘들었다. 엄마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게 바로 나라도 된 듯 감당하기가 벅찼다. 할 수 없이 가족들 상의 끝에 더 이상 가망 없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로 서명했다. 담당 의사가 인공호흡기 관을 제거했고 그 후에도 엄마의 호흡은 며칠 이어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거칠고 힘겹던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우연히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었다. 최근 머릿속에 온통 죽음이라는 주제가 떠나질 않아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단숨에 빠져들었다. 이 책은 지금 내가 궁금해하는 모든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의사로서 여러 가지 측면으로 다루지만,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어떤 것이 최선인지 고민한다. 죽어가는 과정은 매 순간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의학이 발전할수록 치료법은 다양해지고 선택지는 늘어난다. 하지만 질병에 걸린 인간을 획기적으로 완벽하게 살려낼 단 하나의 의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치료법이든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득 보다 실이 큰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모든 의사가 환자에게 이를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성공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최신 치료법을 권할 때도 있다고 한다. 환자나 보호자가 비교하고 분석해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의사는 드물고, 과학이 전문화될수록 각 분야를 총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는 더욱 드물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노인학이나 노인 의료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해 한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무엇이 최선인지 조언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엄마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의사와 모든 치료 과정을 상의할 대표 보호자를 나로 지정했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너무 벅찼다. 이 치료법이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인지, 형제들 말대로 엄마를 편히 보내드리는 게 현명한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엄마는 하루하루 위중해졌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죽어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지, 환자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 어떤 것이 있는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존엄하게 살 권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