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을 보고
29년 결혼생활 끝에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편에게 결별을 통보받은 아내, 자신이 줄 수 없는 것을 원하는 아내에게 지쳐 떠나는 남편, 두 사람의 파국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는 아들, 세 사람은 각자의 시선으로 부서진 관계를 바라보며 사랑과 삶의 의미를 다시 해석한다. 그리고 마침내 현실을 인정하고 상처와 고통을 극복한다.
아내 그레이스는 시를 엮어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 직설적인 성격으로 늘 남편의 소극적인 태도를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남편을 사랑하고, 결혼은 서로 맞춰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으며, 관계가 지속되기를 원한다. 남편 에드워드는 역사 교사로 진중하고 조용한 성격이다. 아내를 사랑하고 평생 아내에게 맞춰 살아왔지만, 지나치게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맞추려는 아내에게 지쳐 버린다. 결국 자신만의 행복과 안식을 찾아 집을 떠난다.
영화는 갑작스러운 결별 선언에 혼란과 고통을 겪는 그레이스와 부모의 깨진 관계를 보며 상처받고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제이미의 심경 변화를 섬세하게 그린다. 떠나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사랑, 고통받는 엄마를 향한 아들의 사랑, 남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 이 사랑은 삼각구도를 이루며 저마다 다른 색채를 띠고 긴장을 고조시킨다.
아이가 어리던 젊은 시절 두 사람은 분명 사랑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사랑은 빛을 잃는다. 갈수록 관계의 틈은 벌어지고 서로 원하는 것은 엇갈리기만 한다. 급기야 관계는 누군가에게는 억압이 되고 사랑하면서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그런 관계를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다.
아들 제이미는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위로하고 싶지만, 아버지처럼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자신 역시 상처받고 힘들어하지만 결국 벼랑 끝에 선 엄마를 구한다.
아들은 엄마에게 말한다.
“제가 이해한다는 걸 알아주세요
각자 삶의 짐을 지고 살아가지만
엄마는 일종의 탐험가예요, 아주 먼 길을 가셨죠
만약 엄마가 멈춘다면 전 깨닫게 될 거예요
그 길이 너무 힘들고 길다는 걸요
전 결국 불행이 이긴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엄마가 멈추지 않고 버티면서
끔찍한 길을 간다면
그럼 전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엄마가 해냈으니까”
그리고 죄책감을 느끼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인생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아빠에게 비난할 게 있다면 그거예요
맞춰주고 잘해주면서 행복하다고 착각하게 한 거요
아빠가 떠날 때까지 엄마는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이건 복잡한 문제야
상대방을 사랑하면서도
떠나고 싶을 수 있어 ……”
죽음까지 생각하던 그레이스는 아들의 말에 극적으로 마음이 돌아선다. 그리고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살아가야 할 의미를 찾는다. 그레이스는 시를 모아 아들의 도움으로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한다. 마음에 위로가 되는 시를 읽을 수 있는 사이트다. 한 줄의 시는 누군가에게 공감되고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사랑은 고통의 원인이면서도 또 한편 고통을 극복하는 무기가 된다. 생의 구원은 역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