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제나 바람처럼 Nov 08. 2024

사랑은 관계 노동

청소 도구를 바꾼 날

 

오늘은 아침부터 욕실 청소 도구를 바꿨다. 수세미, 바닥 솔, 샤워 타올, 칫솔 등등.


일하다가 작업 하나를 끝내면 잠시 숨을 고른다. 그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 청소.  

어제 아침 다이소로 가서 욕실 청소에 필요한 것들을 한보따리 사다 놓았다.     


남편은 무척 깔끔한 사람이다. 정리 정돈은 그야말로 박사다. 물건을 대충 쑤셔 넣는 건 늘 나다. 보다 못한 남편은 내 책상 정리까지 한다. 나는 책을 여러가지 펼쳐 놓고 작업한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생각나면 바로 찾을 수 있게 눈앞에 다 있어야 한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도 여러 과목을 한꺼번에 펴놓고 하는 편이었다. 무엇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야 할 지 전체적으로 의식하면서 세부로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내 책상 주변은 늘 어지럽다. 책, 노트, 자료, 포스트 잇, 다이어리, 휴대폰 충전기 등등.  

    

하지만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욕실 만은 깨끗해야 한다. 로망인지 강박인지, 먹는 곳, 잠자는 곳보다 씻는 곳이 더 중요하다. 말끔한 욕실에서 시선 닿는 곳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며 개운하게 씻고 나오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


그런 날 보고 남편은 결벽증이라고 타박한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다.      


어제 책을 읽다가 사랑에 관한 명언을 발견했다.  

    

‘사랑은 관계 노동’이다.     


전에 읽었던 <과학을 읽다> 저자가 쓴 <내 생의 중력에 맞서>의 한 꼭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저자는 과학 저술가로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과학책에서 건져 올린 인문학적 통찰을 공유하는 작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상대의 비위를 맞추고 사느라 엄청난 감정노동과 수고로움이 들어가는 사랑을 ‘관계 노동’이라고 언급하며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면서 더욱 고단해지는 힘든 사랑을 우리가 되풀이하는 건 생존과 번식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뇌에 작용해서 우리 행동을 주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에서 이 꼭지는 래리 영의  <끌림의 과학>에 관한 이야기다. 과학에서 사랑은 첫눈에 반하는 신화 같은 미스터리가 아니라고 한다. <끌림의 과학>은 신경과학 관점에서 사랑을 하나의 뇌 활동으로 보고 설명한다.  래리 영은 인간의 복잡한 사랑이 유전적, 환경적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고, 특히 살아가는 동안 뇌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신경회로를 만들 때 신경전달물질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며, 신경전달물질은 ‘물질’이며, 고로 사랑이 물질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은 날아오거나 날아가지 않는다. 사랑의 감정과 더불어 나타나는 복잡한 행동들은 우리 뇌 속의 몇 가지 화학물질이 유도한 것이다.’      


오늘 아침 어제 사다 놓은 물건들로 청소를 마치고 개운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는다.  욕실 결벽증이 있는 나는 오늘도 정리정돈 박사와의 관계 노동을 기꺼이 감수한다. 내 뇌가 계속 신경물질을 분비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도 나이를 좀 더 먹은 남자일 뿐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