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제나 바람처럼 Mar 28. 2024

인간의 폭력성에 대하여

 영화 <더 헌트>를 다시 보며


 

‘사람들을 감싸고 있는 공간, 집단, 그 속에 있는 개인,

각각의 관계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적대하고 환대하는가. 

적대와 환대는 어떤 속성을 지니는가. 

인간이 가진 어떤 욕망의 발현인가.’


 

비행기를 갈아타는 동안 영화 <더 헌트>를 다시 봤다. 여행도 새로운 공간 속으로 낯선 사람들 집단 속으로 홀로 투항하는 행위다. 그 과정에 적대와 환대를 만난다. 영화 속 남자는 왜 마을을 떠나지 않았을까. 자신을 배척하는 공동체에서 왜 끝까지 버텼을까. 자신이 결백함을, 그들의 행동이 무고한 폭력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들 눈에 씌워진 집단적 환각을 벗기기 위해 남자는 끝까지 마을에 남았다. 

 

남자에게 씌워진 혐의가 누명이고 결백함이 법적으로 입증됐어도 사람들은 한번 갖게 된 선입견을 쉬이 포기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자 믿음으로 확신으로 맹신으로 변했다. 마을 사람들은 심지어 어릴 적 친구들도 모두 한통속이 되어 남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사람들은 단순하다. 사실과 진실을 토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의 말을 믿었고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다고 일단 믿기 시작한 이후로는 어떤 반증이 확인되어도 믿음을 뒤집으려 하지 않았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사고가 마비된 채 모두가 집단 환각에 빠진 것 같았다. 

 

남자는 자신에게 공공연히 폭력이 자행되는 집단 폭력에 온몸으로 맞선다. 지금 21세기에 공공연히 그런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미개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폭력과 무질서가, 맹목적인 마녀사냥과 맹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너무도 쉽게 우상에 빠지고 오류를 범하며 오랑우탄 같은 집단행동을 보였다.

 

영화에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바로 이 공공연한 폭력성이다. 대낮에 마트에서 종업원이 손님을 내쫓고 고객의 권리를 주장하며 나가길 거부하는 손님을 무차별 폭행한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법과 도덕과 양심이 존재는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현대 사회에서 그런 미개한 행동이 버젓이 자행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는 자신에게 폭행과 린치를 가하는 공동체에서 추방하려고 해도 끝까지 버틴다. 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난 남자를 마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지만, 남자는 도망치지 않았다. 자신의 결백을 법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진정으로 인정받고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남자는 마트에서 얻어맞아 상처투성이가 된 얼굴로 말끔한 양복으로 갈아입은 후 교회로 간다. 교회에는 성탄절 예배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억울한 폭행과 누명에 대해 침묵으로 시위하듯 남자는 묵묵히 예배 순서를 따른다. 중간에 하나님 말씀을 하나씩 들을 때마다 남자는 끓어오르는 감정에 휩싸인다. 고개를 돌려 누명을 씌운 아이의 아빠이자 친구인 남자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바라보는 눈에는 쌓여있는 말 만큼이나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급기야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가 앉아있는 쪽으로 가더니 멱살을 잡고 분통을 터트린다. 똑바로 내 눈을 보라고 내 눈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날 그만 괴롭히라고 내버려 두라고 외친다. 다른 사람들에 이끌려 남자는 쫓겨나고 아이의 아빠인 친구는 순간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다. 친구도 남자가 결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날 밤 친구의 집에서는 성탄절 파티가 벌어졌고 화기애애한 가운데 친구는 갑자기 음식과 술을 챙겨 들고 남자의 집을 찾는다. 불을 끈 채 홀로 소파에 누워있는 남자에게 친구는 가져온 음식과 술을 내민다. 그 어떤 사과의 말도 없다. 단지 배고플 텐데 먹으라고 한다. 남자도 소파에서 일어나 음식을 한 조각 먹고는 맛있다고 한다. 사과와 용서의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는다.

 

일 년 후 남자는 자기 아들과 애인과 행복한 모습으로 교회에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이자 어릴 적 친구인 사람들은 남자를 반갑게 맞이하며 포옹한다. 마을 사람들과도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게 된다. 남자의 아들이 이제 사냥할 나이가 되어 친구의 집에서 축하 파티가 열린다. 모두 남자의 가족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느낀다.

 

어느 날 남자는 아들과 함께 사냥하러 마을 사람들 무리에 섞여 숲속에 들어간다. 어디선가 사슴을 향해 엽총이 발사되는데 총알이 남자의 머리를 스치듯 지나친다. 깜짝 놀란 남자는 순간 본능적으로 피했지만, 누군가 자신을 목표로 쏘려고 했음을 직감한다. 역광의 빛을 등지고 흐릿하게 보이는 실루엣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가 돌아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남자는 자신에 대한 불신의 망령이 아직 남아있음을 느낀다. 사라지지 않은 폭력과 위협이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남자는 섬뜩해한다.

 

영화에서 궁금한 건 남자와 친구들이었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적대감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 적대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한 편의 수채와 같은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