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 뒤로 가기하시길 바랍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든 단어들은 톨스토이의 명작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인간의 존엄 같은 것들이었다.
조금 괴팍하지만, 잔정 많은 소위 츤데레의 정석인 전직 목수 다니엘과 그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결코 가볍게 볼 내용의 영화가 아니다.
많은 예술영화들이, 그렇듯 예술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 가슴속에서 울컥하거나 뭉글뭉글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데, 예술영화들이 보통 현실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고 비참하고 아픈 것들을 보여준다. 소설이 곧 현실이듯 영화도 곧 현실이 된다.
주인공은 위에도 설명했듯, 영국 유캐슬에 사는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할아버지인데, 영화는 치매를 앓던 부인을 간병하던 이 할아버지가 부인과 사별한 후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더 이상 목수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구직 센터를 드나들며, '실업수당 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함에서 시작한다. 전형적인 아날로그 세대인 다니엘에게 컴퓨터를 다루는 것은 어렵고도 힘든 일이었다. 여기서 첫 번째 고구마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공무원들의 한심한 일처리 능력이다.(공무원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서의 묘사가 그렇다.) 어찌 그리 관료적이고 매뉴얼 FM 식인지 노후 세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옆집 젊은이의 도움을 받아가며, 겨우 겨우 신청서를 제출한 그였지만, 다시 일자리를 찾는 것은 20세기의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해왔던 일들은 기계로 대치되거나 더 이상 사람을 뽑지 않았다. 또한 의사의 도움으로 심장병으로 인한 질병 수당도 신청했으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실업수당을 꾸준히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구직활동에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일종의 어필을 해야 하는데, 그것 또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화를 안 낼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결국 그는 센터의 벽에 그라피티를 그려서 항의를 하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결과적으로 질병 수당 자격심사에 대한 최종변론을 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로 나오는 미혼모 케이티도 있다. 그녀는 딸아이 데이지와 아들 딜런을 키우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당찬 여성이지만 집이 너무 낡아 집주인에게 항의를 했다가 집주인의 나가!라는 한 마디에 뉴캐슬로 쫓겨난 불쌍한 여인이다. 뉴캐슬에 얻은 집은 전에 살던 집보다 더 열약한 환경의 집이었고, 당장 일자리가 없어 촛불로 집을 밝혀놓기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일자리를 얻으려 구직센터에 신청서를 냈으나 지리를 몰라 헤매던 와중에 상담시간에 늦어 복지 제재 대상에 포함되어 그마저도 엉망이 되었다. 그때 마침 센터에 들른 다니엘과 마주하게 된다.
비슷한 처지였던 둘은 순식간에 친해지게 된다. 어느 날, 식료품 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먹일 통조림을 훔치다가 그것이 걸리게 되어 도둑으로 몰리게 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 있던 그녀는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매춘에까지 손을 대고 만다. 그러다 다니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게 되고, 계속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 결국 복지 신청 대상자에서 자신을 제외할 것을 부탁했으나 센터로부터 거절당한 다니엘을 돕게 된다.
이 둘이 처한 상황은 도저히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문제의 것들이다. 결국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것들인데, 그렇다고 개인인 이들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개인이 노력하였으나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간격이 그 사이에 존재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마지막 장면엔 이런 대사가 존재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사실 이 대사에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다니엘이 주장하고자 한 것은 자신도 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으로의 존엄을 주장하고 권리를 원한다는 것. 실업수당 신청을 위해서 반드시 인터넷을 이용해야 하고,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 꼭 스마트 폰을 써야 할 필요는 없다. 단지 시스템상의 편의를 위한 것. 할 수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들. 그러나 블레이크는 그로 인해서 자신의 권리를 부정당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각종 요금 연체료가 쌓였고, 그것을 갚기 위해 자신의 집 가구를 모두 팔아야만 했다. 지병이 있어 일자리 후보에서 제외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단지 전자기기를 잘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말년의 삶 전체가 지장을 받았다. 그에겐 글을 쓸 수 있는 두 손과 연필이 있었음에도 쓸 수 없었다. 세계(시스템)에서 밀려난 사람, 외부의 사람. 신문물에 적응하지 못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았다. 과연 다니엘 블레이크는 잘못된 사람인 걸까? 단순한 꼰대이기만 한 것일까?
영화는 묻는다.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지, 인간의 권리보다 시스템이 더 위에 있어야 하는지. 무엇보다 현재 진행형인 이 문제에 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