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21)

액션 명가 본즈가 만들어 낸 수작.

by Erebus


우리는 책이든 영화든 무언가를 볼 때 자신만의 생각을 하면서 본다. 주인공들에게 몰입하기도 하고, 이야기에 빠져들어 가면서 보는 내내 어떤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서야 아, 그때 이랬었다면 이후 전개가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왓 이프)


지금도 수많은 영화 팬들과 영화인 그리고 평론가들이 명작 일본 영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작품이자, 2021년엔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들(2003)의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너무나 명확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의 현실의 한계를 보여줬던 영화는 오히려 그러한 가슴 시림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또렷이 각인이 된 영화였다.


그래서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나왔을 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용은 이미 보아 알고 있었고, 3D를 2D로 바꾼다고 해봐야 크게 달라질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에 생각이 나서 보게 되었는데 아니 이게 웬걸? 제목과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제외하면 원작 소설과 2003년작 영화와는 전혀 다른 싱그런 청춘물 하나가 나와버렸다. 그렇다. 아예 전혀 다른 별개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 기억으론 2003년 영화판에서의 남자 주인공 츠네오는 대학교 전공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 그냥 게임방에서 알바 열심히 하는 좀 껄렁껄렁하기도 한 캐릭터로 기억하고 있는 반면에, 애니메이션의 츠네오는 해양수산학과 쪽으로 추정되는 대학원생(!) 출신으로 자신의 꿈인 멕시코에서만 사는 물고기를 보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는 확실한 인생 목표를 가진 인물로 나온다.


조제는 역시나 캐릭터성이 영화와는 조금 다르지만, 장애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캐릭터에서 츠네오를 만나고 점차 자신의 꿈과 목표를 정해 나아가는 입체적 캐릭터로 나온다.


원작에서도 중요한 메타포로 등장했던 <호랑이>와 <물고기>도 당연히 나온다. 호랑이는 조제에게 있어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 바로 <세상>이라는 것이었고. 물고기는 갑갑한 방에서 자유롭게 나와 움직이고 싶던 조제와 동시에 물고기를 좋아하는 츠네오와의 연결고리로 나온다.


그리고 바다. 바다는 조제나 츠네오에게 모두 이상적인 공간으로 묘사되는 곳이다. 많은 작품에서 다뤄진 바다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들을 생각해보면 (무한에 가까운 드넓음과 자유로움 등.) 왜 두 사람이 바다를 동경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중요한 절정 부분의 전개를 보면, 조제를 지키려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일시적이지만 조제와 같은 휠체어 처지가 되어버린 츠네오의 모습이 있다.


원작 소설과 2003년 영화의 경우, 이런 묘사가 전혀 없지만 원래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특히,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로의 상상과 이성적인 이해의 영역에서는 가능한 것이지만 그것은 실제 현실은 아니기 때문에 온전한 이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츠네오는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사실 조제는 츠네오를 만나며 일말의 불안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츠네오와 함께 있는 시간은 너무나 좋지만, 나중에 츠네오가 떠나고 난 뒤의 상황을 두려워했다. 이를테면 츠네오는 조제에게 세상을 가르쳐 준 사람이지만 츠네오가 없어지고 나면 조제는 다시 세상과의 단절을 하게 될 것이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호랑이는 무섭지 않다는 걸 가르쳐주지 말지. 하는 그런 것들. 그리고 그것은 츠네오의 멕시코 유학이 결정됨으로 인해 언젠가는 벌어질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유학 일정이 틀어져 버린 상황에서 두 사람 사이의 헤어짐은 늦추어졌지만, 조제를 지키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기 때문에 조제는 츠네오의 꿈을 앗아간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게 본인의 진심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래서 조제는 언젠가 츠네오가 없이도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만의 준비를 하게 된다. 반면, 사고 전까진 착실하고 꿈을 위해 열정적이던 츠네오는 츠네오를 만나기 전 조제처럼, 조금씩 어두워지고 자신의 꿈마저 포기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게 된다.


이런 츠네오의 상황을 알게 된 조제가 츠네오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꿈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만든 구현 동화의 시연을 츠네오가 보러 옴으로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봉합되고 다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두 사람의 상황을 서로 반전시키는 전개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어떻게 보면 판타지 같은 전개가 나왔다고도 생각한다.


어찌 보면 2003년 영화를 봤거나 원작 소설을 본 사람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그 왓 이프가.


작화는 물론이고, 스토리, 음악, 성우들의 연기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게 좋은 애니메이션을 봐서 오랜만에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좋은 작품이었다. (또 하나 꼽자면 액션 씬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작품임에도 조지와 츠네오의 첫 만남에서의 휠체어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역시 액션 애니메이션의 명가인 본즈의 위엄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액션은 못 참지!)


영화와는 전혀 다른 작품성으로 혹평을 받기도 했다지만, 애니메이션 자체로만 평가하자면 오랜만에 정말 잘 만든 수작 애니메이션에 속해서 코시국 영화관을 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결론은 역시 사람은 편견을 가지면 안된다는 것.(응?!)


조제와 츠네오,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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