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쓰여있는 문학 작품을 어떤 형태로든지 구현화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면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며 스스로만의 세계를 상상해서 작품을 읽게 되는데 그 상상하며 읽는 즐거움을 영화는 고스란히 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상상했던 장면이 실체화된다는 것을 기뻐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작가이자 살아있는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영상화되었다는 소식에 아 이건 못 참지! 하는 심정으로 냉큼 영화관을 달려간 것이었다.
장차 세 시간에 달하는 어마 무시한 러닝타임에 볼까 말까 망설임이 앞서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느낀 점은. 어쩌면 세 시간보다 더 되었다고 해도 괜찮았겠다 싶을 정도로 몰입감과 감독의 연출이 좋은 작품이었다.
국내외 평론가들과 영화감독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을 하기에 아니 뭐 아무리 그래도 영화가 영화지 어떻게 하나같이(이동진, 정성일, 박평식, 봉준호, 구로사와 기요시, 심지어는 그 신카이 마코토까지) 극찬 세례야. 하고 긴가민가 했는데, 정말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버릴 Scene이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은 영화였다. 어디 하나가 빠진다고 하면 아쉬울 정도로.
정성일 평론가의 평을 빌리자면. '최고의 장면을 보았다는 흥분에 가슴을 진정하고 있는데 더 훌륭한 장면이 시작되고 있었다. 정말 굉장하다.'
라는 표현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감상평이었다.
주연배우인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경우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좀 보았다 싶은 사람들이면 다 아는 일본의 연기파 배우였기에 연기는 걱정하지도 않았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인으로 나오는 박유림, 진대연, 안휘태 배우의 연기였다. 한국 배우임에도 잘 몰랐던 배우들인데 아마 이 영화를 기점으로 승승장구하지 않을까 싶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였으나 불안한 감정을 숨기고 일상을 살아가려던 남자가 급작스럽게 자신의 전부였던 아내를 잃고(외도의 이유는 묻지도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성장하는 이야기.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맡은 가후쿠 유스케의 수난기이자 성장기라고 볼 수 있다. 한 남자가 거대하고 깊은 어둠이 남긴 상처를 점점 치유해가는 이야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남자의 내면 깊숙한 곳을 관객이 몰래 들여다보고 나온 듯한 관음증적인 이야기.
세 시간에 걸친 러닝타임이 그것을 이야기하는데 엉덩이가 조금 아프고 결리는 것은 있었지만 영화 내내 눈을 떼지 못했을 정도로 그 몰입감과 핍진성이 대단했다.(심지어 극 중 공간 배경이 그렇게 넓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안아 부딪히는 일이라는 것을. 김민우의 노래 가사처럼 온몸으로 부딪혀 느끼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게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결국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
뭐랄까.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따로 해석을 할 여지가 없이 그저 세 시간을 투자만 하면 그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