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덜리스(Rudderless).

삶의 방향키를 잃어버린 어느 아버지의 노래.

by Erebus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요트에서 생활하며, 직업은 페인트공이고, 또 동네 조그마한 바에서 노래도 부르는 사람. 투박하게 생긴 그이지만, 그의 노래는 어딘가 모르게 사람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 그런 그의 노래에 매료된 청년이 같이 밴드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밴드를 달성하게 된다.


밴드는 노래 힘입어 날로 승승장구했지만 남자에게는 비밀이 있다.


여기 한 아버지가 있다. 자신의 어린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며 기타를 가지고 노래도 만들고 같이 놀 줄도 알았던 아빠. 그러나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소원해진 탓에 아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아빠. 잘 나가는 워커홀릭이지만 일에 중독되어 가정을 잘 보살피지 못한 사람.


여기 음악이 있다. 사람을 잡아끄는 묘한 매력을 지닌 음악. 누구든 한 번 들으면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음악이. 그리고 그 음악을 부르는 페인트공이자 가정에 무심했던 그 사람은 동일인물이다.


그는 어쩌다가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일까.


영화 러덜리스는 일반적인 음악 영화와는 약간 그 궤를 달리한다. 예컨대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사랑스럽고 밝지 않고, 라라랜드처럼 달콤하거나 분위기 있지 않다. 위대한 쇼맨처럼 웅장하지도 않다. 대신 음악 영화에선 흔하게 쓰이지 않는 소재로 평범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음악을 만든 사람은 페인트공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아들은 그의 곁에 없다. 무슨 이유에선가 엇나가던 그들의 관계는 아들이 한 최악의 선택으로 인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에게 남은 것은 그저 아들의 노래를 부르는 일뿐이다.

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자신과 아들과의 유일한 연결고리가 아들이 남긴 노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는 아들과의 관계성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사람이 되어버린 아들의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그의 아들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음악을 만드는 재능이 있었지만, 결국 그 뿐이었다.


사실 영화의 주요 반전인 야기가 나왔을 때, 당연하게도 남자의 아들이 주요 사건에 휘말린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놓은 것인 줄 알았다. 예상과는 빗나간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영화가 모두 끝난 후 뭉클함이 밀려왔던 것은, 겨진 사람들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해당 사건만을 기억하고 바라본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사건 뒤에 남겨진 것들이다.


누구도 저 아버지의 진정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그저 어쭙잖게 추측할 뿐.


(+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영화의 제목에 탁 박수를 치게 될 것이다.)



Let the world go round without you.
if you're somewhere you can hear this song
sing along
(중략)
I wish you were hear to sing along
my son.
my son..
my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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